국가보안법에 손해배상 청구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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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교육>지 사건 김진경씨 등 19명, 국보법 조항 관련 첫 손해배상 청구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우선 불법 연행·장기 구금·고문이라는 수사 절차의 위법성이다. 이러한 위법한 수사 절차는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여 조작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즉, 수사 절차의 위법성이 실체적 허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박원순 지음 <국가보안법 연구 2>)

나라 안팎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 법의 일부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오른쪽 상자기사 참조)에 근거해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원고 김진경씨(<민중교육>지 사건 관련자·당시 교사) 등 19명은 소송 대리인(김창국 변호사 외 4명)을 통해 4월3일 서울지방법원에 낸 소장에서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에 근거한 수사기관과 법원의 위법한 구속 기간 연장 행위로 인해 입은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하며, 정부를 상대로 각 1천만원(총 1억9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원고들은 85~91년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 위반으로 구속된 후 같은 법 제19조의 구속 기간 연장 특례 규정에 의해 각 1~2차에 걸쳐 적게는 10일부터 많게는 20일까지 구속 기간이 더 연장되어 수사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92년 4월 이 특례 규정에 대해 “현행 형사소송법이 수사 단계에서의 구속 기간을 경찰에서 10일, 검찰에서 20일 등 모두 30일을 넘길 수 없게 하는 것은 헌법상의 무죄추정 원칙에 따른 불구속 수사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설정된 것”이라며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국보법 개폐 논의 활성화 계기될듯

현행 형사소송법은 형법상의 내란·외환죄의 경우에도 수사기관의 구속 기간은 30일을 넘길 수 없고,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보다 더 ‘조직적’이라 할 수 있는 마약사범이나 조직폭력사범의 경우에도 구속 기간이 30일을 초과할 수 없게 돼 있다. 따라서 이른바 이적표현물을 단순 소지 또는 탐독한 혐의만으로도 구속 수사 기간을 ‘덤으로’ 20일이나 더 연장할 수 있게 한 이 규정은 위헌성 및 연장 기간 중의 고문 시비에 휘말려 왔다.

이 위헌 조항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의 수효는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왼쪽 표에서 보듯 89년 9월~90년 8월에 입건된 국가보안법 위반자 7백59명 중 이 법 제7조(이적표현물 제작·반포·소지 및 찬양·고무·동조) 위반자가 5백91명으로 78%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개소 이래 현재까지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법률 규정은 모두 73건으로 헌법 불합치 (5건), 일부위헌(8건), 한정위헌(6건) 등을 포함해 위헌성이 있다고 판정한 사례는 모두 92건에 이른다.

따라서 원고측이 소의 청구 원인에서 밝힌 대로, 이번 소송은 위헌적인 법률이 제정되고 그 법률의 적용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있을 경우 국가가 그 피해를 배상토록 해 국가로 하여금 내부적으로 그 책임을 묻게 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번 소송은 원인이 된 위헌 조항이 헌법적인 근거를 갖지 못한 국보위 입법회의에서 전면 개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5공 탄생기의 입법자 과실 행위에 대한 책임 지우기라는 측면이 강하다. 또 이 소송 원고들은 대부분 ‘덤으로’ 강요당한 구속 기간에 수사기관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호소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고문 근절 의지를 시험하고 나아가 국보법 개폐 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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