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災 관련법 ‘완전 보수’ 급하다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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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 삼풍 관련자 살인죄 적용 한계… ‘뇌물 관행’ 뿌리뽑을 조항도 필요
이번에는 엄정한 법 적용이 이루어질 것인가.

청주 우암아파트 붕괴, 부산 구포역 열차 전복, 서해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서울 아현동 및 대구 가스 폭발 등 최근 몇년 사이 일어난 대형참사 5건과 관련해 구속기소된 54명 중 무려 81%인 44명이 무죄·집행유예·벌금 등으로 풀려나고 10명만이 실형(그것도 3년 이하의 금고형)을 선고 받은 상황에서 ‘삼풍’ 참사는 터졌다.

7월10일 현재 삼풍 사고와 관련해 구속된 사람은 모두 6명이다. 삼풍백화점 이 준 회장(73)과 이한상 사장(42), 이영길 시설담당 이사(52) 등 백화점 간부 3명과 건물의 구조설계 및 안전진단을 담당한 ‘한 건축구조연구소’의 구조기술사 이학수씨(46)가 사고 직후 구속되었고, 그 뒤 백화점 준공·설계변경 승인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전 서초구청장 이충우씨(60)와 전 건축과 직원 정지환씨(39)가 구속되었다.

이외에도 서초구청 도시정비국장 이승구 씨 등 공무원 4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돼 있는 상태이며, 10여 명은 소환 대상에 올라 있다. 서울시 또한 내인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삼풍에 건축 허가를 내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서울시 공무원의 뇌물 수수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등 삼풍 수사는 말단 공무원에서 고위 공무원으로, 서초 구청에서 서울시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본부장 신광옥 서울지검 2차장검사)가 비리 사슬을 어디까지 캐낼 수 있을지는 수사를 좀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이번만은 시공회사뿐 아니라 행정기관의 책임, 나아가 이들의 ‘비리 커넥션’까지 한점 의혹 없이 투명하게 밝혀내야만 한다는 것이 국민 일반의 여론이다.

검찰, 외국 사례도 폭넓게 검토

문제는 검찰이 기소에 ‘성공’한다 해도 이들에 대한 처벌이 또다시 ‘너무나도 관대한’ 수준에 그치리라는 우려이다. 이전의 대형 참사 관련자들에게 적용된 ‘업무상 과실치사상’ 죄로는 5년 이하 금고형이 법정 최고형이기 때문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이 준 회장을 비롯한 삼풍 간부들에 대한 살인죄 적용 여부이다. 대한변협과 경실련,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삼풍 간부들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이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하라고 줄곧 주장해 왔다. 미필적 고의를 입증하려면 ‘결과 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종전 판결이다. 건물 붕괴 위험을 인식했다 하더라도 ‘고객과 직원이 죽어도 좋다’(미필적 고의)와 ‘설마 죽을지는 몰랐다’(인식 있는 과실)의 사이를 까다롭게 넘나들던 이 논쟁에서 무게추는 일단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쪽으로 기우는 추세이다.

지난 7월8일 임시국회에서 안우만 법무부장관이 ‘삼풍 관련자들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을 검찰이 적극 검토중’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검찰은 미국과 독일의 사례를 폭넓게 수집해, ‘미필적 고의’에 대한 판례 변경까지 목표로 하여 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법 감정을 적극 수용하려는 정부의 이같은 자세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검찰이 인민재판식 여론몰이에 밀려 죄형법정주의의 기본 원칙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법조계 일각의 주장 또한 여전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가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직후부터 ‘업주나 공무원에게 포괄적인 사고 책임을 물어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의 필요성이 줄기차게 제기되었음에도 아현동·대구·삼풍에 이르러서야 늑장 입안에 나선 정부의 무사 안일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번 임시국회 회기에 정부는 각종 건축 관련 법령에 대한 개정안을 상정해, 대형 사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엄중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건축주·공사업자뿐 아니라 정례화된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관행 또한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덧붙여야 한다고 지적하는 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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