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선 침투, 경계 '이상 무', 처벌은 '이상 유'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8.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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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등은 ‘작전 실패’ 문책, 최종 보고 소홀히 한 고위층은 무사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 오래 전부터 군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작전에는 상대가 있고 변수도 많기 때문에 계획이 어긋날 수 있다. 그러나 경계는 원칙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에 근무 태만이 아닌 한 실수가 일어날 수 없어, 이런 말이 생겨났다.

지난 11월19일 저녁은 음력 10월 초하루로 달빛이 없어 칠흑같이 어두웠다. 20일로 날짜가 넘어간 0시55분께, TOD(야간 감시 장비)로 강화도 장곶 해안을 살피던 해병대 2사단 53대대의 두 초병(상병과 이병)이 이상한 배를 발견했다. 초병들은 북한의 반(半)잠수정에 대해 교육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반잠수정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고 있었다.

3월부터 11월까지는 강화도 어민들이 장곶 해안에서 새우잡이를 할 때이다. 문민 정부 들어 해병대는 적접(敵接) 지역 주민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일출 후 귀항’ 조건으로 야간 조업을 허가했다. 단서를 붙인 것은, 야간에 귀항하는 어선 사이에 간첩선이 섞여 침투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민들은 새우를 일찍 내다 팔아야 이득이 크므로 갖가지 핑계를 대고 야간에도 배를 해안에 접근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반잠수정은 밀폐된 구조이나, 이 배는 어선처럼 위쪽이 터져 있어 갑판을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가 보였다. 초병들은 이상 선박 출현 사실을 소대·중대·대대에 알리고, TOD로 이 선박의 움직임을 낱낱이 추적·녹화했다. 그러나 53대대장이 어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연대에 보고하지 않아, 상급 부대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후방 지역에 주둔하고 있다가 유사시 적지로 상륙하는 ‘국가 기동 전략군’인 해병대가 이 지역 방어 임무를 맡게 된 것은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다. 한국전쟁 당시 해병대의 전과에 고무된 이대통령은 종전 후 서울에서 가까운 김포 반도와 강화도 일대의 방어 임무를 해병대 2여단에 맡겼는데, 이것이 해병대 2사단이 김포와 강화도를 경계하게 된 ‘부적절한 조처’의 시작이었다.

즉시 보고한 천용택 장관도 질책받아

92년 이선실 사건이 터졌을 때 간첩들은 강화도 해안으로 들락거린 것으로 조사되었다. 지금까지도 강화도 해안에는 철책이 없다. 해병대와 국방부는 ‘철책을 쳐 달라’ ‘공기 부양정을 달라’는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수년 전 해병대 사령부는 해병대 2사단을 후방으로 빼내 ‘상륙군’ 본래의 임무로 돌리고 이 지역 경계를 육군에게 맡긴다는 ‘비룡 계획’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육군 3개 사단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되어 비룡 계획은 무기 연기되었다. 결국 해병대 53대대는 적은 병력으로 철책도 없는 해안을 계속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음력 10월 초하룻날 밤 이상 선박을 발견했으니 ‘경계’만은 원칙대로 선 것이 분명했다.

이상 선박 출현 보고를 받은 53대대장은 망설임 끝에 박격포로 조명탄을 쏘아올리라고 지시했다. 조명탄이 터지자 이상 선박은 고속으로 내빼기 시작했다. 53대대장은 아차 싶었지만, 배가 없는 해병대 대대로서는 달리 취할 조처가 없었다. 해군 2함대가 연락을 받고 고속정을 파견했으나, 이상 선박은 고속정이 항해할 수 없는 낮은 바다를 통해 빠져 나갔다. 얼마 후 한국군 해안 레이더는 이 선박이 북방 한계선(NLL)을 넘어 북한으로 귀환하는 것을 추적해 간첩선임을 확인했다.

합동심문조의 조사 결과, 53대대장이 간첩선인지 어선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시간을 끈 것 빼고는 이 사건은 지체없이 보고된 것으로 밝혀졌다. 천용택 국방부장관 역시 에이펙(APEC) 회담 참석 후 홍콩에 가 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급전을 보냈다. 그러나 이 급전은 임동원 외교안보수석 선에서 몇 시간 지체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상황이 종료해서 그랬다’고 변명하고 있다.

간첩선 사건이 정치 쟁점이 되자 천용택 장관이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여러 명의 장교가 보직 해임되는 등 ‘찬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경계는 군인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를 책임진 사람들도 제대로 해야 한다. 해병대 53대대장 등은 경계는 잘했으나 작전을 제대로 하지 못해 처벌되었다. 천장관은 보고를 제대로 했는데도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그러나 ‘경계(보고 임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임동원 수석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래서 ‘유권 무죄(有權無罪) 무권 유죄’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권력)에게 가까이 있는 정도에 따라 처벌이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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