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 감도는 아프간 국경 현지 취재
  • 파키스탄 페샤와르·김진화 편집위원 (chinwkim@e-sisa.co.kr)
  • 승인 2001.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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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앞에 어른대는 '소련의 실패'/
반군 도움, 군사 작전 성공할 듯…복병은 '빈 라덴 신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사이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시사저널〉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 집중〉팀과 공동으로 김진화 편집위원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대에 급파했다.


1961년 합동통신사 외신부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김진화 편집위원은 이집트 카이로 대학과 레바논 베이루트 대학에서 수학해 아랍어에 능통하고, 미국 〈비즈니스 뉴스〉 등 세계 유수 언론의 중동 특파원 및 KBS 순회 특파원을 지낸 국제 문제 대기자이다. 중동 및 동남아 각국의 최고위급 인사들과 폭넓은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1987년과 1988년 두 차례에 걸쳐 지아 울 하크 파키스탄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하기도 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광적이며 배타적인 나라.' 미국 국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1930년에 아프가니스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2001년 오늘에도, 이 나라에 들어간 미군은 똑 같은 푸념을 할지도 모른다.


아프가니스탄은 불청객에게 사나운 땅이다. 해발 2000∼3000m 고산준령과 물살 빠른 강, 변덕스런 날씨, 살을 에는 겨울 바람, 형편없는 돌밭길이 외래인을 질리게 한다. 게다가 수많은 종족·씨족으로 구성된 이 땅의 주인들은 크고 작은 전쟁과 내란으로 싸움에 이골이 난 억척스런 사람들이다.


미군이 육·해·공 대작전으로 수도 카불에 입성하고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를 점령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이미 아프가니스탄은 텅 빈 나라다.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충복들은 벌써 ‘금단의 산' 속으로 들어갔고, 탈레반 들은 산골짜기로 흩어졌다. 국민은 이웃 나라로 피난했고, 나머지는 시골로 내려갔다.


미군이 베트남전 때 밀림 속에서 보이지 않는 베트공을 찾아 헤맸다면, 이 나라에서는 험한 돌산 계곡과 동굴을 찾아 유격전을 벌여야 한다. 그것도 2000∼3000m 고원에서.




"부상해 아프간 평원에 내버려졌다가 여인들이 나타나 너의 나머지를 자르려 하면, 몸을 굴려 총을 잡아 네 머리를 쏘아라. 그리고 진정한 군인처럼 전사하라…"


19세기 영국군도 세 차례 실패


영국의 계관 시인 키플링이 묘사한 이 ‘죽음의 땅'은 19세기 영국군의 침입을 세 차례나 거부했다. 그 후 1세기 만에 옛 소련군이 이 땅에 들어섰으나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안고'(고르바쵸프의 말) 물러났다.


1978년 옛 소련은 중앙아시아의 전략 요충지인 아프가니스탄에 사회주의 정권을 세웠다. 사회주의 이념과 정반대인 이슬람의 지도자들은 곧 봉기했다. 소련은 허수아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처음에는 소규모 병력과 군사고문단을 투입했다. 그러나 일단 발을 들여놓은 후, 베트남전의 미국 꼴이 되어 갔다. 1년도 못되어 소련이 대규모 병력으로 침공했지만, 전쟁은 10년을 끌었다. 소련군은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도시와 마을을 손쉽게 장악했다. 그러나 산 속의 무자히딘 게릴라들은 수시로 마을로 내려와 소련군을 죽이고 양식을 훔쳐 도망쳤다. 탱크와 장갑차는 험한 돌산 지형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소련군은 우물과 식수원을 파괴하고, 마을을 초토화해 게릴라들의 식량 조달을 차단하려 했다. 아프가니스탄 국경 도시 페샤와르에서 만난 50대 무자히딘 출신 사이드 아흐메드는 이렇게 회상한다.


"아프가니스탄 시골 사람들은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신을 부정하는 소련군에 협조하지 않았다. 심지어 부녀자가 도끼를 들고 잠자는 소련 군인의 머리를 쳐 죽이기도 했다. 우리의 승리는 신앙심 깊은 국민 덕분이었다."


막강한 소련군에 대항해 끈질기게 싸우던 1980년대 무자히딘에게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라크·리비아·이란·미국으로부터 연 평균 10억 달러의 군자금이 들어왔다. 이즈음 오사마 빈 라덴 역시 돈과 무기와 자원병들을 이끌고 이곳에 왔다. 다국적 무자히딘은 산악전에 편리한 스팅어 미사일과 클레이머 지뢰, 대인 지뢰, 이동식 지대공 미사일을 동원해 소련군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다. 사이드 아흐메드는 계속 말한다.


아프간군 잔혹성에 소련군 전의 상실




"소련은 연방의 일원인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출신 무슬림 병사들을 투입했으나, 당해낼 수 없었다. 소련군 포로의 목을 자르고, 내장을 긁어내고, 입을 찢어 버리는 산악 민족의 잔인함에 질려버린 소련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산악으로 올라가기를 꺼렸다. 우리는 소련군의 머리를 잘라 산 아래 동네로 힘껏 던져 그들을 질리게 했다."


무자히딘의 주장에 따르면, 소련군은 사망자 4만∼5만명(소련은 1만5천명이라고 주장)과 부상자 47만명(참전 군인의 73%)을 내고 1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그로부터 12년 만에 이 땅에 들어선 미군은 어떤 적을 만날까? 미군은 옛 소련군과는 전혀 다른 여건에서 싸우게 될 것이라고, 이곳 일간지 〈돈(Dawn)〉(여명)의 군사 평론가 제메미 칸은 분석한다. "미군의 육·해·공 작전은 파키스탄 정보기관의 협조를 얻어 이루어질 것이다. 파키스탄 요원이 미군을 동행하고, 항공 정찰에도 동승하지 않으면 안된다. 파키스탄 정보망은 아프가니스탄의 지형, 탈레반의 조직·명령 체계·행동 양식·약점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국내와 난민촌 안에도 첩보망을 갖고 있다. 미군은 소련군과 달리 다국적 우방군의 지원을 받고 있다. 군사 작전에 관한 한 미군은 파죽지세로 점령할 것이다. 탈레반은 고립무원이다. 외부 지원은 고사하고, 국민 대부분이 피난해, 소련과의 전투에서처럼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탈레반의 치명적 약점이다."


탈레반은 이 나라 북부에 진을 치고 있는 ‘반탈레반 북부 연합군'의 협공으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제메미 칸은 분석한다. 소련군을 내쫓고 집권한 무자히딘은 내분을 거듭한 끝에 탈레반에게 권력을 내주고 북부로 후퇴했다.


타지키스탄 국경 주변 마자레쉐리프를 근거로 삼아 국토의 20%를 지배하고 있는 북부연합군은 지난 5년간 탈레반과 전투를 계속해 왔다. 그들은 이미 미국에 협력하자고 제안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지형과 텔레반의 작전에 익숙한 그들은 ‘모진 겨울 바람이 불기 전에' 탈레반을 소탕하자고 미국에 촉구했다.


이슬람 신학생들 아프간행




군사 작전에 관한 한 미군은 소련군이 겪은 수모를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위험은 다른 곳에 있다. 지난주 파키스탄 서남부 샤만 근처의 한 이슬람 신학교 학생과 교사 3백여명은, 성전(聖戰)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갔다. 밖으로 나오는 피난민 행렬로 먼지길이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가운데, 무슬림들이 메카를 순례할 때 걸치는 흰 천을 몸에 두른 그들이 조국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 장면은 많은 젊은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들은 "빈 라덴"과 "지하드"를 번갈아 외치며 ‘죽음의 땅'으로 향했다.


빈 라덴은 이미 이슬람 세계에서 신화로 남아 있다. ‘오사마'라는 첫 이름을 딴 남자아이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빈 라덴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든, 사살되어 그 시체가 천하에 공개되든, 그가 남긴 신화는 수많은 무슬림 젊은이들을 ‘성전'으로 이끌 것이라고 한 이맘(무슬림 성직자)은 주장한다. "더구나 걸프전 후 미군이 계속 사우디아라비아를 점령하고 있듯이,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요새 아프가니스탄에 계속 주둔하려 한다면, 미군은 소련군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이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이 테러리스트의 뿌리를 뽑는 계기가 될지, 수많은 빈 라덴 분신들에게 테러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주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 미국에게 승리란 빈 라덴을 체포하고 탈레반 정권을 제거해 테러 조직을 뿌리 뽑는 일이다.


오사마 빈 라덴에게 승리란 아프가니스탄의 가장 험준한 산 속으로 들어가 피신하는 것이다. 미국에게는 어려운 일이고, 오사마에게는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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