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봉급이 얼마이기에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3.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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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전환’ 보도 후 편법 인상 논란 일어…연봉 4천만원 이하가 다수
"여러분 중 일부는 기자들과 나가서 술 마시고 헛소리하고 나가서는 안되는 정보를 내보내고…정말 배신감을 느꼈다.” “(그 보도를 접한) 순간 마음이 상해서 화를 벌컥 냈다.” 3월29일 청와대 비서실 워크숍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전직원에게 날린 직격탄이다.

얼굴이 울퉁불퉁해질 정도로 노대통령을 ‘열 받게’ 만든 보도는 청와대 직원들의 월급과 관련한 내용이다. 일부 언론이 ‘청와대가 3급 이하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바꾸어 급여를 편법으로 올리려 한다’고 보도한 것을 두고, ‘나가서는 안되는 정보가 나갔다’ ‘계약직으로 전환하려는 이유가 잘못 알려졌다’며 화를 낸 것이다. 최도술 총무비서관 역시 “계약직은 여러분의 보수를 현실화하기 위한 것인데, 기사가 나가는 바람에 시행이 보류될 위기에 처했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도대체 청와대 월급이 얼마나 되기에 이런 ‘편법 인상’ 논란이 나오는 것일까.

별정직 공무원이 대다수인 청와대 비서진의 직급은 장관급(비서실장·정책실장·국가안보보좌관)과 차관급(각 수석), 1급과 2급 비서관, 3∼5급 행정관, 6∼9급 직원으로 구분된다. 장관급 연봉은 8천만원, 차관급 연봉은 7천1백만원으로 경력에 관계없이 똑같고, 1급 아래부터는 같은 급수라도 경력에 따라 호봉이 달라진다(봉급표 참조). 이를테면 경력 10년을 인정받은 3급 행정관의 경우 한달 기본급이 1백85만8천1백원이다. 여기에 각종 수당과 복리후생비를 합하면 연봉이 4천5백만원 정도가 된다. 일반 회사에서 40대 초·중반이 받는 연봉에 비하면 다소 처지는 수준이다.

문제는 청와대 안에 이 정도 월급을 받는 사람이 그리 흔치 않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은 직급보다 호봉에 따라 월급 차이가 많이 나는데, 청와대 호봉이 상당히 야박한 탓이다.

한 예로 국회 보좌관 출신 ㅅ행정관(39)은 직급이 4급에서 3급으로 올랐는데도 연봉은 천만원 이상 떨어졌다. 국회 보좌관(4급)은 경력에 관계없이 모두 21호봉(기본급 2백12만1천6백원)을 받기 때문에 연봉이 5천만원이 훌쩍 넘었으나, 청와대에 가서는 보좌관 경력 5년만 인정받아 3급 5호봉(기본급 1백55만4천1백원)에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4급은 21호봉, 5급은 24호봉으로 무조건 단일 호봉을 매기는 국회에 비해 에누리 없이 경력을 따지는 행정부의 ‘짠’ 월급 체계를 실감한 것이다.

그나마 국회 출신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공직 경력이 전혀 없는 민간 기업이나 시민단체 출신은 아예 1호봉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현재 청와대 직원의 호봉은 당사자가 제출한 경력 관련 서류를 기초로 중앙인사위원회와 협의해 산정한다. 일반적으로 군 경력과 공무원 경력은 100%, 정당이나 언론 경력은 80%를 인정받는다. 또 준 공무원 대우를 받는 각종 위원회 출신이나 교사·변호사·공인회계사 같은 국가 공인 자격증 소지자도 경력의 80%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민간 기업에서 일한 경력은 전혀 인정이 안된다. 시민단체 출신들도 대부분 경력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

정당 출신이라도 당에서 공식 직함을 가지고 있었던 기간만 인정이 되고, 선출직인 시·도 의회 의원 경력 등은 아예 무시된다. 이에 따라 사기업에서 10년 일한 후 청와대 3급으로 들어간 사람이, 정당 경력 10년차인 5급 행정관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벤처 회사에서 7천만∼8천만원 연봉을 받다가 3급으로 영입된 ㄱ 행정관(40)은 “연봉이 절반으로 줄었다. 기본급 자체가 적은데 경력까지 제대로 쳐주지 않아 죽을 맛이다”라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연봉 3천만원 정도를 받게 된다는 5급 행정관 ㅎ씨(37)는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2시까지 일하는 날이 부지기수다. 남들은 청와대 다닌다고 대단한 줄 아는데, 박봉에 노동 강도만 무지 세다”라고 툴툴거렸다.

청와대가 3급 이하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 데는 이런 불합리성을 고쳐보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청와대측은 당초 3급 이하 직원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려고 검토한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정권교체기마다 불거지는 ‘보직 대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노대통령 참모들은 청와대 진용을 짜면서 DJ 정부 때 직원들을 처리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남겠다고 버티면 보내줄 자리를 구할 때까지 함부로 자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근로기준법상의 정리해고 개념을 적용해 3개월치 월급을 지급하는 선에서 매듭을 지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현재 일도 하지 않는 전임 직원 수십 명분의 월급이 5월까지 지급되는 셈이다. “노대통령은 파견 공무원을 제외한 청와대 참모는 모두 대통령과 함께 들어갔다가 대통령과 함께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비서들을 계약직으로 바꾸면 자동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다.” 김만수 보도지원 비서관의 설명이다. 두 번째 이유는,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기 위해서다. 4백명이 넘는 청와대 직원들부터 중간 평가에 따라 수시로 교체가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조직은 태어나면서부터 개혁하는 것이다. 3개월, 6개월마다 청와대 보직을 점검하고 필요하면 과감하게 재조정해야 한다”라고 역설한 것도 공무원 조직에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세 번째가 월급 현실화다. 개방형 공무원제가 활성화하려면 외부에서 유능한 인재가 많이 들어와야 하고, 그러려면 연봉제 계약을 도입하는 등 공무원 봉급 체계부터 개방형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비서실장실 소문상 행정관은 “원래 첫째, 둘째 이유가 더 절실했고, 월급 현실화는 부차 문제였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 ‘월급 인상’만 부각하는 바람에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언론 보도에 정도 이상으로 화를 낸 것도 ‘본질이 흐려진 데 대한 분노’라는 얘기다.

청와대 직원들의 ‘월급 현실화’ 논란을 지켜보는 세간의 시각은 엇갈린다. “일하는 양과 질이 다른 만큼 일반 공무원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 “충분히 줘야 딴 데 손벌리지 않을 것이다” 하는 옹호론이 있는가 하면, “청와대 직원들은 사명감으로 살아야 한다” “행정고시 합격하고 20~30년 걸려야 받을 수 있는 월급을 30~40대 청와대 직원들이 한꺼번에 보상받으려 한다면 위화감이 극심해질 것이다” 하는 반대론도 있다. 4월10일 첫 월급을 받는 청와대 직원들에게 가인 김병로 선생의 얘기 한 토막을 전하면 너무 가혹하려나? “국록을 받는 사람은 불평을 하거나 돈을 탐해서는 안 된다.”(1957년12월 대법원장 정년퇴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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