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술 ‘부산 자금줄’은 누구였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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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회장·이영로씨 외에 사업가 2명 ‘주목’…청와대 오찬 참석한 기업인들도 ‘구설’
부산 초량동에 있는 국제종합토건.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김성철씨가 운영하는 회사이다. 대검 수사관들은 지난 11월6일 이 회사와 김씨의 서울 서초동 자택을 전격 압수 수색해 회계 장부 등 사과 상자 13개 분량의 서류를 가져갔다. 김씨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씨는 “용돈조로 100만원을 최씨에게 준 것이 전부이다”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이미 김씨와 관련해 단순한 혐의 이상의 구체적인 위법 사항을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산 지역 정·재계의 긴장감이 높아가고 있다. 부산 지역 기업 다수가 최씨에게 돈을 주었다는 소문이 커지고 있는 데다, 최씨로부터 2억3천만원을 받은 노대통령의 친구이자 운전기사였던 선봉술씨가 조사를 받는 등 검찰 수사가 급류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박 진 대변인은 지난 11월7일 논평을 내고 “노무현 대통령 영남 사조직의 자금 흐름을 수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성철 회장, 지난 3월 이후 청와대 세 차례 방문
검찰은 부인하고 있지만 주변에서는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부산 지역 선거대책위원회 계좌에 대해 검찰이 이미 추적 작업을 시작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부산 선대위 계좌는 당시 이상수 사무총장이 관리했던 당 공식 계좌에서 빠져 있어 여차하면 ‘사조직 모금설’로 번질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의원은 중앙당과 서울·인천·경기·제주 후원회 등 모두 13개의 계좌를 운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까지 노대통령의 ‘부산 자금’과 관련한 열쇠를 풀어줄 수 있는 인물은 다섯 사람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부산 선대위 회계 책임자였던 최도술씨, 한나라당이 자금 모금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는 김성철 회장, 최씨와 SK 손길승 회장을 연결한 것으로 알려진 이영로씨, 그리고 손회장·이영로씨와 친한 것으로 알려진 사업가 ㅊ씨와 지역 건설업체 대표 ㅇ씨가 그들이다.

우선 국제종합토건 김회장에 대한 조사는 검찰의 향후 수사 방향과 강도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인사들과 두루 친분이 두터운 김씨는 지난 3월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선거에서 세운철강 신정택 대표를 누르고 회장에 당선된 부산 지역 거물 인사이다. 한나라당을 후원하면서도 진작부터 노대통령에게도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에 대한 수사는 노대통령에게까지 바로 여파가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폭발력을 갖고 있다.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선거 당시부터 최도술씨 등 노대통령 측근들이 김씨를 민다는 소문이 지역에 무성했던 것이 그런 반증이다.

김씨가 본격적으로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10월23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부산 지역 건설업체들이 3백억원을 모아 최도술씨에게 전달하는 과정에 김씨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면서부터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씨의 잦은 청와대 방문은 눈길을 끌어왔다. 그는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이 된 이후에만 청와대를 세 번 방문해, 문재인 민정수석과 노대통령 등을 만났다.

특히 9월 말, 부산 지역 경제인 20여명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해 노대통령과 오찬을 했을 때는 청와대가 이 사실을 공개하지 말라고 요구해 주목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정가에는 이권을 바라고 최씨에게 돈을 준 부산 기업들이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해 불만을 토로하자 최씨가 무마 차원에서 청와대를 방문토록 했다는 소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부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부산 지역 경제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자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국제종합토건 건물이 유달리 노대통령 캠프와 관계가 깊은 것도 김씨가 구설에 오르게 된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최도술 사건이 터지고 검찰의 압수 수색이 이루어지면서 급하게 옮기기는 했지만, 이 건물 3층에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통합신당 주비위(공동위원장 김정길·조성래)가 입주해 있었다. 사실상 열린우리당 부산시지부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 이전에도 민주당 부산시장 선거대책본부, 민주당 부산시 선거대책본부가 이 건물 3층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해부터 ‘노무현 캠프’가 이 건물을 전용해 온 셈이다. 민주당도 이런 점을 들어 김회장과 최도술씨 간에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11월7일 민주당 김성순 대변인은 “최씨와 열린우리당은 돈 수수 의혹이 있는 기업의 사옥에 신당 사무실이 입주한 배경을 해명하라”는 논평을 냈다.

11월8일 이곳을 찾았을 때는 실무자 2명만 있는 썰렁한 분위기였다. 사무실 옆에는 10월10일 ‘국민 참여 통합신당을 위한 발기인 소집 부산 지역 설명회’가 이곳에서 열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국제토건 건물 밖에 걸려 있던 통합신당 주비위 명의의 플래카드는 ‘커넥션 의혹’이 불거진 뒤 치워졌다. 통합신당 주비위 관계자는 사무실이 무슨 큰 의혹이나 있는 것처럼 주목되고 있어 곤혹스럽다며 언론 보도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사무실 위치가 좋아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고 입주했을 뿐인데 무슨 의혹이 있느냐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하고 지난 11월8일 귀국한 김회장은 이 사무실에 대해 “당시 노후보의 사정이 어려워 공짜로 잠시 사용하게 해주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편의를 봐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김씨는 돈을 걷어 최씨에게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당시는 내가 상공회의소 회장이 아닐 때여서 그럴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라고 부인했다.

김씨와 함께 주목되는 사람은 최씨와 부산 기업인들을 연결한 것으로 알려진 이영로씨이다.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영로씨가 노대통령 부산 자금줄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다. 그를 본격 수사해야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이미 최도술은 죽을 만큼 죽었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돈이 거쳐가는 창구에 불과했을 뿐, 배후에 이영로씨가 있다는 것이다. 부산 지역 재계의 한 고위 인사 또한 “이씨가 모사꾼이다. 그가 있어야 백일하에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그가 모든 열쇠를 쥐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미 은밀하게 이영로씨 주변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이씨가 자기 명의로는 재산이 한푼도 없는 등 워낙 드러나지 않게 움직여왔기 때문에 흔적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씨는 현재 뇌경색으로 부산 서구 아미동 부산대병원에 입원해 있다. 9월 초 쓰러진 이씨는 그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10월30일 일반 병실로 옮기기는 했지만, 아직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치료를 맡고 있는 부산대병원 신경외과 최창화 주임교수는 “기관지를 절개해 질의 응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하는 말의 의미는 알아들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라고 말했다.

현재 독방을 쓰고 있는 이씨의 병실 앞에는 가족들이 지켜서 출입을 막고 있다. 검찰에서는 한때 이씨가 쓰러진 시기가 최도술씨의 비리 소문이 여권 내부에서 나돌기 시작한 때와 비슷해 이씨의 ‘꾀병설’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꾀병은 아닌 것으로 결론 난 상태이다. 현재 상태라면 이씨에 대한 조사는 상당 기간 이루어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선 전만 해도 노무현 캠프에서 이씨는 드러난 사람이 아니었다. 대선 직후 이씨가 사람들을 만나 노대통령과 친분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다니면서부터 ‘이영로가 누구냐’는 말이 측근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노대통령의 386 측근인 열린우리당 정윤재 사상구 추진위원장은 “나는 아직도 이씨 얼굴을 모른다. 그의 이름도 지난 8월에야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 전후에 이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부산 기장의 ‘백양농원’에서 부산상고 동창회가 열렸고, 한때 노대통령 또한 이 농원을 방문하려고 했었다는 점에서 볼 때 이씨가 남모르게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새롭게 주목되는 것은 ㄱ건설사이다. 지역 신문인 <국제신문>은 ‘최도술씨가 부산지역 기업인들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영로씨 외에도 ㄱ건설사 대표가 또 다른 창구 역할을 했다는 첩보에 따라 이 인사의 지난 대선 후 행적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노대통령과 중학교 동기인 그가 평소 이 사실을 과시해 왔으며, 지난 9월 부산 기업인들이 청와대를 방문한 과정에도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SK 손길승 회장과 진주고 동창으로 알려진 ㅊ씨도 주목되고 있다. 손회장과 친한 그는 평소 이영로씨와도 자주 어울려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실도 같은 건물에 있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최도술씨와 손길승 회장이 연결된 과정에 ㅊ씨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 ㄷ·ㅂ 기업 등 부산 지역 업체 4∼5곳이 최씨에게 수천만원대 금품을 준 사실을 파악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인사는 이미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최씨에게 돈을 준 부산 기업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9월 청와대 오찬에 부산상공회의소 회장단과 별개로 참석한 기업이 12개에 달한다는 것이 그 반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주장한 ‘3백억원 모금설’에 대해서는 누구랄 것 없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반박하고 있다. 부산 지역 재계의 한 인사는 “3억원이라면 몰라도…. 부산에서 그 정도 돈이 움직이면 금방 드러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의원은 “금액에 다소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사실 자체는 분명하다”라고 주장했다.

주목되는 것은 부산 지역 업체들 외에 SK와 같은 대기업이 최씨에게 금품을 건넨 또 다른 경우가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 지역의 한 정보통은 부산에 지사를 둔 대기업들도 최씨에게 돈을 주었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부산 선대위 계좌를 추적하거나 이영로씨 등의 통화 기록을 추적하다 보면 노대통령의 불법 대선 자금과 관련한 꼬리를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지역 업체의 95%가 한나라당에 줄을 대고 있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1억원을 주었다면 한나라당에 5억원은 주었을 것이다. 검찰이 철저히 수사하면 할수록 결과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는 것은 한나라당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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