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마당] 박상천·이규택·박 홍
  • ()
  • 승인 1996.05.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민회의 박상천 총무“耳順에 일복 터져 행복”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애초 구상과 달리 ‘호남 원내총무’가 탄생했다. 지난 4월25일 국민회의 총무 경선에서 박상천 의원(전남 고흥)은 신기하 현 총무와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제1 야당 총무 자리를 거머쥐었다. 그는 경선 전날 밤 동료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한 표를 부탁하느라 두 시간밖에 잠을 못잤을 정도로 원내 사령탑 자리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박의원은 13, 14대 국회에서 지방자치법·통합선거법·안기부법·정치개혁입법과 5·18 특별법 제정을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고생도 많이 했다. 이번 경선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말대로 ‘복도에서 서성거리는 신세’를 면했다. 후보 정견 발표 때 그는 “지난 국회에서 총무회담이 열리면 복도에서 기다리며 대여 협상을 했다. 나이 예순에 또다시 복도에서 서성거려서야 되겠느냐”라며 애타게 지지를 호소했었다.

지금 그의 앞에는 태산 같은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어정쩡한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권 공조를 끌어내야 하고, 국회가 소집되면 15대 총선 선거부정 문제를 밝혀내야 한다. 박의원은 나이 육십에 일복이 터졌지만, 그래도 즐거운 듯 함박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작은 KT’ 이규택 의원‘큰 KT’ 이기택 버리나

정치권에는 닮은꼴이 많다. 민주당 이규택(경기도 여주) 의원도 그런 경우이다. 그는 이기택 민주당 상임 고문과 이름부터 비슷한 데다, 90년 `‘꼬마 민주당’ 창당 때부터 줄곧 이고문과 정치 행보를 함께해 왔다. 이고문 역시 당직 개편 때마다 계보원인 이의원을 열심히 챙기곤 했다.

그러나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녔던 `‘큰 KT와 `작은 KT’의 이별이 머지 않은 것 같다. 정가에서는 이의원의 신한국당 입당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그가 신한국당에 입당하리라는 소문은 총선 직후부터 파다하게 나돌았다. 대변인 직을 다시 맡아 달라는 당의 요청을 극력 사양한 것부터가 수상쩍다는 것이다. 얼마전 그는 `‘지역구민들 80% 이상이 여당에 들어가라고 한다’라고 운을 떼었다.

작은 KT가 민주당 탈당을 감행한다면, 큰 KT는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된다. `‘닮은꼴’ 측근조차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시달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달라지는 국회 상징하는 법제예산실 안내 책자

화려한 색상과 세련된 디자인, 요점만 간략하게 정리해 컴퓨터 자료방을 연상시키는 정보 전달 방식. 눈 씻고 보아도 한자는 한 글자도 찾아낼 수 없다. 국회 사무처가 15대 당선자들에게 보내려고 준비한 법제예산실 안내 책자 모습이다.

요즘 세상에 그게 무엇이 대단한 일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국회가 발간한 공식 자료집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국회 발간 자료집 중 두 가지 색(흑백) 이상으로 제본된 책자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웠다. 내용도 토씨 빼놓고는 모두 한자로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각당 기자실에서 국회 간행물은 언제나 두터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신세였다. 그러니 법제예산실 안내 책자가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국회는 분명 달라지고 있다.
“남북 대학총장 회담 열자”박 홍 총장 ‘오랜 침묵’ 깨다

대학 총장 가운데 서강대 박 홍 총장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람은 드물다. 그는 89년 12월 총장에 취임한 뒤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마다 ‘극우성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키고는 했다. 91년 5월 분신 정국 때 “죽음을 조종하는 배후 세력이 있다”라고 한 말과, 94년 후반기를 온통 공안 정국으로 몰아넣은 주사파 발언은 그 백미로 꼽힌다. 그러나 박총장은 때때로 ‘극좌의 길’을 달리기도 했다. 그는 89년 평양 청년학생 축전에 우리 대학생들이 참가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는가 하면, 93년에는 전대협 동우회에 참석해 ‘주사파’들을 격려했다.

그런 박총장이 1년 동안의 ‘오랜’ 침묵을 깨고 또다시 ‘좌파적 건의’를 내놓았다. 4월26일 전국 대학총장 모임에서 남북 대학총장 회담을 북한에 제의하고 나선 것이다. 좌와 우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그를 두고 세인의 평가는 ‘양심적 지식인’과 ‘원칙 없는 극우주의자’로 크게 엇갈린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