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국회 정치 신인/①법조계 22명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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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초선만 22명 등원…신한국당 검사·국민회의 변호사 출신 ‘풍년’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새내기 바람이 불고 있다. 15대 총선 당선자 가운데 국회에 첫발을 내딛는 초선 의원은 지역구 1백6명, 전국구 31명 등 모두 1백37명. 의원 총수(2백99명)의 46.5%에 해당하는 막강한 세력이다. 이 수치는 14대 의원 초선 비율 39.1%보다 7.4%나 높은 것이다. 15대 국회 신인들의 면면을 출신 분야 별로 묶어 차례로 소개한다.

15대 국회에 법조인이 많이 등원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각당은 앞다투어 변호사 출신 여성 부대변인을 기용했고, 이름이 알려졌다 싶은 검사나 변호사는 예외없이 각당의 공천자 명단에 올랐다. 법조 출신 정치 지망생들은 지난 총선에서 1백4명이 출마해 41명이 당선되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22명이 초선이다. 전체 신인 당선자의 16%를 차지하는 높은 비율이다. 단일 직업군으로만 따진다면 단연 으뜸이다. 이 가운데는 신인 같지 않은 신인도 있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 당선자와 법무부장관 출신 김기춘 당선자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거물’이다.

법사위보다 다른 상임위서 활약 원해

법조 출신들의 대거 진출에 대해 정가에서는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이도 있다. 전문성도 좋지만, 직업 분포에서 지나치게 대표자가 많은 ‘과대 대표’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 출신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회의 기본 업무가 입법 활동이니 법조인들의 국회 진출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인 한 초선 의원은 지금까지 우리 정치가 파행을 거듭한 것이 법에 무지한 정치 낭인들이 국회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그는 의원의 70%가 변호사 자격을 지니고 있는 미국을 예로 들며 “한국도 변호사 자격을 가진 의원이 최소한 30%는 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신기남 당선자는 법조 출신 의원이 더 늘어나야 하는 이유로 ‘Legal Mind(법 정신)’를 꼽는다. 법조인들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법의 신성함을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부패를 해도 덜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율사가 대거 등원함에 따라 15대 국회에서는 상임위 별로 법률 개폐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조 출신이라면 보통 법사위를 떠올린다. 따라서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는 ‘법사위에 배정할 의원은 차고 넘치는 것 아니냐’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법조 출신 초선 의원 가운데 법사위를 지망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실정이다. 나름의 ‘노리는’ 분야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의 추미애 당선자는 선거전에서 탁아시설 확충과 여성의 사회진출 보장,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지원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추씨는 보건복지위에 배정되기를 원하고 있다. 신한국당의 홍준표 당선자는 법사위에서 해야 할 일은 검사 재직 때 다 했다고 말한다. 이제는 명검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도시 행정과 남북문제에 정통한 전문가가 되겠다는 것이 그의 새로운 야심이다.

건설교통위나 보건복지위가 인기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권자들의 이해와 맞닿은 부분이 많아 공약을 실천하기 쉽고 의정 활동 결과가 단박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울과 부천을 연결하는 지하철 공사 착공’‘부천 시내 고등학교 증설’ 등을 공약으로 내건 이사철 당선자는 “공약을 못 지키면 정치를 더 이상 안하겠다”라는 약속까지 한 터라, 상임위 배정에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다.

국회에서의 역할을 놓고 볼 때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역시 김기춘·김도언·정형근·이건개 등 검찰 고위직 출신 초선 의원들이다. 서울 법대 동기인 김기춘·김도언 두 당선자는 모두 검찰의 수장인 검찰총장을 지냈다. 초대 임기제 검찰총장으로 법무부장관까지 지낸 김기춘 당선자는 92년 대선 당시 정가를 뒤흔든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의 주인공이다. 불구속 기소되었다가 사실상 무죄 판결을 받은 그는 지난 2월 김대통령의 고향이자 자신의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았다. “행정부에서는 할 만큼 했다. 이제는 고향에 봉사한다는 자세로 일하겠다”라고 말한 그는 신한국당 내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76.5%)을 얻었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정계 입문을 놓고 야당과 검찰 내부로부터 서로 다른 성격의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야당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은 그가 어떻게 정계에 입문할 수 있는지, 그‘정당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 수장까지 지낸 그와 김도언 당선자의 총선 출마에 대해 ‘검찰의 자존심과 모양새를 구기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 판사 출신인 황우여 당선자는 “한국 사회는 ‘자리’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지나치다. 대통령을 지내고도 주일학교 선생을 할 수 있고 장관을 끝내고 국장을 할 수도 있다”라면서, 두 사람이 경험을 잘 살려 활발히 의정 활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두둔한다.
엘리트 의식 강하나 정치력 ‘미지수’

정형근 당선자는 안기부 출신이라는 전력 때문에 눈길을 끈다. 사노맹 사건·이선실 간첩 사건 등 굵직굵직한 공안 사건을 담당했던 그는 안기부 1차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2월, 안기부의 지자제 선거 연기 검토 문건 파문으로 김 덕 안기부장과 함께 공직에서 물러났다. “솔직히 안기부 출신이라는 이유로 많이 시달렸다. ‘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불편한 심정을 털어놓는 그는, 안기부의 위상에 대해서는 ‘국가 정보기관은 여전히 힘이 있어야 한다’라고 평소의 소신을 밝힌다. 대북·통일·해외 업무 등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지나치게 약해진 안기부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안기부 경험 13년을 살려 통일·안보 전문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검찰 출신 초선 의원 10명 가운데 유일하게 야당 의원인 이건개 당선자는 자민련에 입당한 계기부터가 흥미롭다. 이씨는 대전 고검장으로 근무하던 93년, 슬롯 머신 사건에 연루되어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은둔하다시피한 그가 자민련 전국구 3번으로 등원하게 된 것은 JP와의 오랜 인연 때문이다. 그의 선친 이용문 장군은 6·25 때 군 정보국장을 지냈고,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JP는 이 장군의 부하로 복무했다. 3공화국 때 이씨가 서른 한살에 서울 시경국장으로 발탁된 것이나 박대통령의 총애를 받은 것이 바로 이러한 인연 때문이라고 알려진다. 이씨가 시경국장일 때 JP는 총리였다.

이씨처럼 초선이면서도 총재와의 각별한 인연 덕분에 당내 역할에 기대를 모으는 또 한 인물이 있다. 국민회의 유재건 당선자다.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교포 청년 이철수 사건을 맡아 6년간 법정 투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유씨는 이철수씨가 석방되던 날 DJ를 만났다. 83년 당시 DJ는 전두환 정권에 밀려 망명길에 오른 터였다. 그 후 유씨가 귀국해 토론 프로그램 사회자로 명성을 날릴 때도 서로 소식만을 전해 듣던 두 사람은 국민회의 창당 과정에서 다시 만났다. ‘훈수꾼’이던 방송인 유재건이 DJ의 권유로 정치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민주당의 이철 후보를 당당히 누르고 당선된 유씨는 국민회의 중진들이 대거 탈락한 와중에서 DJ를 대신할 ‘수석 부총재’로 거론될 정도로 당내 위상이 급상승했다.

한편, 이번에 등원한 법조 출신 초선 의원 가운데는 법조계 조직 특성상 기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홍준표 당선자와 이건개 당선자다. 검찰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후배인 홍씨가 선배인 이씨를 구속하면서 악연을 맺었다. 이 사건에는 3선인 박철언 의원도 연루되어 있다. 이씨와 홍씨는 모두 서로 갈 길이 다르다며 함께 거론되는 것 자체를 회피한다. 그러나 세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15대 국회에서 부딪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출신이 악연을 맺은 데 반해 변호사 출신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공조 체제를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중학교부터 같은 길을 걸어온 국민회의의 천정배·유선호 당선자는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다. 같은 당의 신기남 ·이성재·이기문 당선자도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필요한 경우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과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변론으로 유명한 신한국당 안상수 당선자와도 공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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