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동 ‘날 샌 올빼미’ 되는가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6.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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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이 기소… 민주당 “정치 보복 가능성 높다”
‘비자금 스타’ 박계동. 박계동 이름 석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15대 당선은 받아놓은 밥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박씨는 국회의원은커녕 잘못하면 정치 생명이 단축될 위기에 처해 있다.

검찰은 지난 9월30일 박씨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현역 의원 기소 여부에 몰린 틈을 타 슬그머니 기소해 버린 것이다.

박씨는 민주당 ‘희망물결본부’ 본부장으로, 법정 선거 운동 개시일 이전에 이동식 연단을 세우고 시국강연회를 여는 등 10여 차례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벌금 백만원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5년 동안 공직 선거에 나설 수 없고, 집행유예를 포함해 징역형을 선고 받게 되면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정치인으로서는 사형 선고를 받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권 인사들은 대부분 설마 그렇게까지 가겠느냐는 반응이다. 사안이 경미하므로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리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죄질이 더한 현역 의원들의 금권 선거는 무혐의 처리하면서 그보다 훨씬 사안이 가벼운 낙선 의원에게는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한 것이나, 시국강연회가 당 차원의 행사인데도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박 전의원이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면서 당시 청와대 수석 몇 사람을 거론했다. 그들은 박 전의원에게 자기들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는데, 그들이 검찰 기소 과정에서 압력을 넣지 않았나 싶다”라며 ‘정치 보복’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폭로 당시 박 전의원은 몇몇 청와대 수석들이 비자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고, 그 당사자가 이번 15대 국회에 처음 진출한 홍인길(당시 총무수석)·한이헌(당시 경제수석) 의원과 김영수(당시 민정수석) 문화체육부장관이다.

이부영 의원은 지난 10월25일 대정부 질문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검찰의 편파성과 정치 보복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수성 총리는 “정치 보복을 위한 수사권 남용은 있을 수 없다”라며 원칙에 충실한 답변만 내놓았다. 민주당측의 우려가 기우인지 사실인지는 박씨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현재 미국 미주리 대학에서 1년 간의 객원 연구원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비자금 폭로 1주년을 맞은 지난 10월19일 잠시 귀국해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가 주관한 ‘내부고발자 보호법 제정’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당시 결정적인 자료와 증언을 제공한 하종욱(첫 제보자), 김신섭(당시 신한은행 차장) 씨가 그 뒤 얼마나 불이익을 당했는지를 설명하고 내부고발자 보호법을 제정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세미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박씨의 처지를 더 안타까워했다. 아무리 의정 활동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더라도 막상 배지 떨어지고 나면 끈 떨어진 망건 신세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냉혹한 현실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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