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마당]김근태·이승윤·한이현·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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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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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행 막차’ 탄 김근태 힘 없는 재야의 서글픔 절감

민주당 김근태 부총재는 이제 재야 인사가 아니라 정치인이다. 그가 오랜 낭인 생활을 청산하고 제도 정치권에 진입한 것도 재야 시절의 열정을 ‘정치’로 풀어보자는 뜻이었지 ‘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2월 민주당과의 야권 통합을 통해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김부총재의 의욕은 남달랐다.

그러나 5개월 남짓 제도 정치권에 몸담은 김부총재는 ‘정치 수업료’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우선 세상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정치권은 그에게 끊임없이 줄서기를 강요했다. 그래서 민주당 구당 모임에서 당을 봉합하려고 뛰던 그는 활동을 정리하고 신당인 ‘새정치 국민회의’에 가담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흔쾌한 거취 표명은 아니었다. 김부총재는 민주당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신당에 가는 심정은 70~80년대 감옥에 갈 때보다 더 처참하다”고 고민의 일단을 털어놓았다.

구당 모임에서는 그를 나무라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김부총재의 신당행을 용인하는 분위기이다. 먼 장래를 위한 배려이다. 김부총재의 평소 지론은 ‘현 정국은 수구 세력과 민주대연합 세력 간의 대결 국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당으로 몸을 싣는 김부총재는 자신의 거취를 “민주대연합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는 차원으로 봐 달라”고 주문한다. 즉 지금도 여전히 DJ의 상대적 진보성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분석이다.

그러나 김부총재의 주장은 다소 궁색하다. 정가에서는 DJ 집권 전략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를 ‘구여권 끌어안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현 정국을 수구세력 대 민주대연합 세력의 대결 국면으로 파악하는 김부총재의 논리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그래서 김부총재도 “DJ가 과거 집권 세력의 테크너크랫을 흡수하는 차원이 아니라 세력 대 세력의 결합으로 나아갈 경우에는, 나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고 단서를 달기는 했다.

그는 신당행 막차에 올라타면서도 찜찜한 마음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실명제와 토지실명제 등 정부의 개혁 정책을 보완하는 문제를 둘러싼 당정 갈등에는 이승윤 정책위의장과 한이헌 청와대 경제수석 간의 악연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당정 갈등 부추기는 이승윤·한이헌의 ‘악연’

90년 이의장이 노태우 대통령 밑에서 경제 부총리를 맡았을 때 한수석은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이었다. 당시 일부 경제 관료와 학자 들은 이부총리가 증시 부양을 비롯한 경기부양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집값이 폭등하는 등 거품 경제를 불러 왔다고 비난했는데, 그 선두 주자가 한수석이었다. 한수석은 결국 이부총리와의 관계가 껄끄럽게 돼 자의반 타의반 민자당 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는데, 거기서 김영삼 대통령의 눈에 들어 청와대 경제수석 자리에까지 올랐다.

두 사람의 갈등은 이씨가 민자당 정책위의장에 취임하면서 제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이의장이 한수석이 주도해온 경제 개혁 정책을 건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난하는 발언을 한 뒤 선경그룹이 세무조사를 받자 재계에서는 “두 사람의 싸움이 다시 불붙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최회장은 이의장과는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의장이 개혁 보완 작업에 민자당측 대표 주자로 나섬으로써 두 사람의 싸움은 이제 3라운드로 접어든 양상이다. 두 사람의 관계로 볼 때 개혁 보완을 둘러싼 당정 간의 매듭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이회창 전 총리 인기 여전 여·야 모셔가기 전쟁

이회창 전 총리의 인기가 사그라들 줄 모른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려고 안달했던 여야 정치권이 요즘도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여기 저기서 ‘모셔 가기’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DJ가 민주당을 깨고 신당 창당 작업에 돌입하면서부터 이씨에 대한 수요는 부쩍 늘었다.

현재 그를 모셔가겠다고 벼르는 정치 세력은 크게 두 부류다. 3김 정치 청산과 지역할거 구도 타파를 외치는 ‘정치개혁시민연합’과 민주당 구당 모임이다. 최근 들어서는 당직 개편을 앞둔 민자당도 수석 부총재 자리에 그를 앉히려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처럼 정치권의 빗발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씨는 “정치할 생각이 없다”며 모든 제안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를 영입하려는 각 정파는, 겉으로 표명하는 말과 이씨의 속마음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치권 각 정파들이 이씨를 자기네 얼굴로 내세우겠다는 속셈은 뻔하다. 신 3김 시대를 맞이한 현 국면에서 3김의 영향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이회창이라는 것이다.

특히 정치개혁시민연합과 민주당 구당 모임은 이씨를 등에 업고 그 위세로 3김 구도에 도전해 보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흘리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씨의 결심뿐이다. 물론 정치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정치권에서 “정치할 생각이 없다”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어쨌거나 이 전총리는 자리를 챙기지 못해 야단법석인 정치권의 시각으로 보면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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