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마당]손학규·최형우·양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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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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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입’ 장담한 손학규 선봉에 서서 험한 말싸움

여야가 정면으로 맞설 때마다 가장 볼 만한 싸움은 대변인 간의 치열한 설전이다. 이 말싸움에서 입심 독하기로 소문난 정객은 단연 국민회의 박지원 대변인이다. 그와 맞상대했던 민자당 박범진 전 대변인은 오죽했으면 ‘더러운 말 어록’을 만들겠다고까지 했을까. 고심 끝에 민자당은 차별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세운 ‘새로운 입’이 참신한 이미지를 지닌 정치학자 출신 손학규 의원이었다. 민자당은 손대변인을 임명하면서 “온갖 추악한 말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합리적이고 깨끗한 ‘입’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겠다”고 장담했다. 재야 소장학자 출신인 손대변인은 현 정권의 개혁 이미지와 세대 교체 전략에도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손대변인은 험악한 말은 될 수 있는 대로 자제했다. 정 독한 소리를 뱉어야 할 때는 부대변인에게 일을 넘기는 기지도 나름대로 발휘했다.

그런 손대변인이 요즘 변해도 한참 변했다는 평을 듣는다. 성명이나 논평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의 험한 말투는 도저히 학자 출신답지 않다는 얘기다. 11월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야당 의원을 향해 맞고함을 쳐 여당 돌격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기도 했다.

손대변인은 강삼재 총장과 함께 ‘DJ 죽이기’의 선봉장으로 꼽힌다. 여당 정치인으로 확실하게 변신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동교동 몫으로 공천을 받았던 강총장과 진보적인 재야 정치학자 출신인 손대변인. 과거 ‘가장 야당적’으로 투쟁했던 두 사람이 세월이 변해 ‘가장 여당적’으로 대야 투쟁에 나서고 있는 모습은 정가의 또 다른 얘깃거리다.

양김 목숨 걸린 백병전에 강삼재 펄펄, 조순형 조용

민자당 강삼재 사무총장은 직선적이고 다혈질이다. 젊은 패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래 성격이 그렇다. 뒷짐 지고 점잔 빼는 체질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비자금 정국에서도 집권당 사무총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공격의 총대를 메고 나섰다. 총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그런 강총장인 만큼 상대 진영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11월17일 국회 본회의를 잠깐 정회했을 때 일이다. 일부 국민회의 의원들은 ‘벼르던’ 참에 강총장과 복도에서 마주치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우리 총재를 그렇게 음해할 수 있느냐”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다혈질인 강총장도 물러서거나 피해 가지 않았다. 그 바람에 양쪽이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갈 뻔했다.

‘적과 내통한 부도덕한 지도자는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발언을 한 뒤부터 강총장의 집에는 연일 전화가 걸려온다. 점잖은 항의부터 ‘목숨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느냐’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공갈까지 다양하다. 강총장은 이런 전화에 가끔 맞대응하기도 한다. “야당은 근거 없는 이야기로 연일 공세를 퍼붓는데 여당이라고 해서 체면만 차릴 수는 없다”는 것이 강총장의 주장이다.

반면 국민회의 조순형 사무총장은 민자당과 국민회의의 사활을 건 백병전과 난타전 속에서도 전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딱 한번 원론적인 문제 제기를 했을 뿐이다. 조총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전형적인 선비 체질이다.

과거 틀과는 다른 양당 사무총장의 대조적인 스타일을 두고 양당 주변에서는 여야 사무총장이 바뀐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최형우, 3김 정치 맹비난 ‘간 큰 남자’가 막 간다?

“몰라 몰라, 나같은 흑사리 껍데기가 뭘 알겠어.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 김영삼 정권 출범 초기 실세 중의 실세였던 최형우 의원은 비자금 정국 내내 입을 꼭 다물었다. 보도진이 논평을 구하거나 전망을 물어보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곤 했다. 그런 최의원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11월17일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초청 강연에서 “우리 정치의 당면 과제는 ‘3김 시대’라고 불리는 1인 중심의 보스 정치를 청산하는 것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3김 시대에 대한 비판 강도도 예사롭지 않았다. 여권 인사들이 야당의 양김씨를 비판하고 세대 교체를 촉구하기 위한 전제로 ‘3김 시대 종식’을 들고나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최의원의 3김 시대 비판은 양김 퇴진론을 위한 논리적 전제의 수준을 넘어섰다.

그는 “3김 시대 구조에서는 총재 외에는 국회의원이든 정당인이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다. 조금만 반발해도 선거 자금은커녕 공천도 주지 않는 3김 구조야말로 후진 정치”라고 주장했다. 정가에서는 최의원의 발언을 야당의 양김씨는 물론 그의 보스인 김영삼 대통령까지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자연히 민자당 주변에서는 ‘간 큰 남자’ ‘최의원이 너무 막 가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최의원은 자기에게 부산·경남 지역 관리권을 주지 않는 김대통령에게 오래전부터 불만을 품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과 박관용 전 청와대 정치특보가 조직책을 맡아 부산 지역을 누비면서부터 최의원의 불만은 더 가중됐다는 후문이다. 정가에서는 최의원이 이번 비자금 정국을 계기로 3김 이후를 대비하는 ‘독자적인 이미지 쌓기’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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