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마지막 믿을 것은 상원 표결과 국민 여론
  •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
  • 승인 1998.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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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의 탄핵 결의로 궁지 몰려… 상원 표결과 국민 여론이 최종 변수
“국민 여러분께 거짓말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결국 자신을 구할 수도 있었던 이 한마디 말을 끝까지 꺼내지 못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연방 하원의 탄핵을 받았다. 하원은 이틀 간의 토론을 거쳐 12월19일 오후 클린턴에 대해 네 가지 탄핵 사항 중 첫 번째 조항인 ‘위증죄’(찬성 228표, 반대 206표)와 세 번째 조항인 ‘사법방해죄’(찬성 221표, 반대 212표)를 결의했다. 그러나 폴라 존스 성희롱 사건과 관련된 위증죄 조항과 직권남용죄 등 나머지 두 조항은 기각되었다. 이로써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1868년 2월 앤드루 존슨 대통령에 이어 1백30년 만에 하원에서 탄핵된 두 번째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다.

무소속 1명을 포함해 재적 의원 4백35명 가운데 과반수인 2백18명 찬성이면 탄핵안이 통과하게 되어 있던 이날 표결에서 공화당(2백23명)은 거의 전원이 ‘위증죄’와 ‘사법방해죄’에 찬성표를 던졌다. 특히 공화당은 민주당(2백11명)이 표결 직전에 발의한 ‘비난 결의안’을 표결로 거부했다.

앤드루 존슨 이어 미국 대통령 중 두 번째 불명예

클린턴 대통령은 이 날 탄핵 결의안이 하원에서 가결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다소 상기된 얼굴로 공화당의 당략적 투표 행위를 강력히 비난하고, 상원에서의 ‘공정한 심판’을 촉구했다. 부인 힐러리 여사와 앨 고어 부통령, 딕 게파트 민주당 원내총무와 민주당 의원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공화당의 사임 요구를 일축하고 나머지 임기를 계속 수행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물론 그가 나머지 2년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여부는 전적으로 상원에 달려 있다. 1백30년 전 존슨 대통령은 애드윈 스탠튼 전쟁장관을 불법으로 해임한 혐의로 하원에서 찬성 1백46표 대 반대 47표라는 압도적 표 차로 탄핵을 받았지만, 상원에서는 단 한 표 차로 살아남았었다. 과연 클린턴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올 것인가. 아니면 닉슨처럼 중도에 자진 사임해야 하는 외길로 몰릴 것인가.

사실 ‘클린턴 드라마’는 간단했다. 지난 1월 하순 전 백악관 인턴 사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가 처음 세상에 알려졌을 때 솔직히 이를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그것으로 일찌감치 끝낼 수 있는 문제였다.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그것을 원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그러지 못했다. 결국 지난 8월 연방 대배심에 나와서도 그는 성관계를 끝까지 부인했고, 그 바람에 꼼짝없이 위증죄로 걸렸다. 르윈스키와 오럴 섹스는 했지만, 이른바 ‘직접 섹스’는 하지 않았다는 구차한 변명을 믿어 줄 사람은 별로 없었다.
물론 클린턴은 당시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우선 성관계를 시인할 경우 당파적 이해로 똘똘 뭉쳐 자신의 탄핵에 열을 올린 공화당측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퇴임 후 형사 소추당할 가능성도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그가 그 정도까지 생각했다면 문제는 쉽게 풀릴 수도 있었다. 공화당내 일부 온건파 의원들이 그의 그런 고백을 믿고 어느 정도는 그의 편에 설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한 데는 본질적으로 그의 성격 탓이 크다. 그는 지난 70년대 아칸소 주지사로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한 이래 치부가 드러나면 이를 끝까지 숨기고 부인하거나, 정치적 승부수에 의존해 버텨 왔다.

이같은 스타일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전가의 보도’처럼 효용 가치가 있어 보였다. 사실상 자신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띤 지난 11월3일 하원의원 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민주당이 5석을 늘리는 이변을 낳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는 또 한번 자신의 정치적 승부수가 통한 것으로 판단했다.

선거 후 대부분의 주요 언론도 그가 정치적 위기를 넘겼다고 판단했다. 특히 선거 전까지도 클린턴 탄핵에 앞장서 온 대표적 여론지 <뉴욕 타임스>는 선거 결과가 나오자 ‘민의를 수렴하고 헌정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의회에 대해 탄핵이 아닌 비난 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주문했다.

또 탄핵에 열을 올리다 역공을 당한 공화당 지도부도 충격적인 선거 결과에 각성하는 듯했다.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이 전격 사임했고, 일부 지도부 개편도 뒤따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골수 보수파로 짜인 하원 법사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오히려 ‘전의’를 더 불태웠다.

헨리 하이드 법사위원장을 필두로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파적 이해에 따라 행동했다. 의회 전문 케이블 텔레비전인 C-SPAN을 통해 생중계되는 법사위 탄핵 심사 과정에서 이들은 철저히 ‘클린턴 탄핵’이라는 목표를 미리 세워 놓고 움직였다. 탄핵 자체의 적법성을 따지는 모습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예로 탄핵 선봉 역인 공화당의 봅 바 의원은 탄핵의 위헌성을 제기한 한 하버드 대학 법대 교수를 물고늘어져 빈축을 샀다. 법사위에 출석한 내로라 하는 헌법학자 19명 가운데 무려 14명이 탄핵의 위헌성을 따졌지만, 이미 ‘목표’를 정한 공화당 의원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어찌 보면 클린턴이 탄핵을 받은 것은 자업자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당파적 이해 관계의 소산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원 법사위에서 증언한 대다수 헌법학자들은 클린턴의 행위가 위증죄에는 해당하지만, 헌법에 명시된 탄핵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즉 그의 성 추문은 국기를 뒤흔들 만한 ‘수뢰와 반역, 기타 중대 범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견해에 여론도 동조했다. 그러나 법사위 소속 공화당 의원들에게 이들의 증언은 탄핵 심사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

미국이 여론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이들 법사위 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탄핵 심사 기간 내내 여론의 동향과는 철저히 담을 쌓고 지냈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0∼70%가 탄핵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공화당 지도부는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를 필두로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도 정쟁을 멈추고 의회 차원의 비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것으로 클린턴 성 추문 문제를 끝내라고 촉구했지만, 공화당측은 막무가내였다.

공화당이 이번 탄핵 문제를 얼마나 당파적 계산에서 다루고 있는가는 지난 12월17일 하원 본회의장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바로 전날 클린턴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 결정을 내려 이 날 탄핵 절차에 들어가지 못한 공화당은 ‘전쟁이 터지든 말든,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한다’며 탄핵 강행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데 그를 강제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공습을 중단할 때까지 최소 며칠만이라도 탄핵 절차를 미루어 달라고 요청했다.
공화당, 당파 이해 따라 일사불란 탄핵몰이

전통적으로 미국 정가에서는 ‘정치는 물가에서 끝난다’는 말이 불문율로 통했다. 아무리 공화·민주 양당이 당파적 이해에 치우쳐 싸우다가도, 전쟁 같은 비상 상황이 닥치면 정쟁을 즉시 그치고 대통령을 중심으로 일치 단결한다는 말을 두고 한 표현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 상태에 돌입했는데도 공화당측은 오히려 국군 통수권자인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이를 두고 <뉴욕 타임스>는 ‘국민이 반대하는 탄핵 절차를 강행하는 의회의 처사는 생전에 보기 드문 일’이라고 꼬집었다. CNN 뉴스 진행자도 ‘참으로 유별난 일’이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공화당은 왜 이처럼 클린턴 탄핵에 매달렸는가. 단순히 그의 죄가 미워서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워싱턴 정치 분석가들의 설명이다. 60%가 넘는 국민이 탄핵을 반대하는 데다, 보수 언론인 <월 스트리트 저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주요 매체들이 탄핵보다는 비난 결의안을 촉구하고 있는데도 공화당측은 이같은 여론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9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지낸 봅 돌이나 공화당 출신인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이 절충 방안으로 비난 결의안 채택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는데도 공화당 지도부는 그것을 외면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12월18일자 사설에서 ‘도대체 공화당이 지난 중간 선거 결과를 뒤집는 일을 벌이는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고 ‘공화당 지도부가 헌법의 탄핵 조항을 악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3권 분립의 균형을 깨고 있다’고 비난했다.

물론 이런 악감정말고도 공화당 지도부는 탄핵안을 연말까지 통과시키지 못하고 내년으로 넘길 경우 자칫 탄핵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탄핵 표결을 앞두고 전의을 다지던 상황에서 ‘결행일’이 차일피일 늦추어질 경우 최고 30명에 이르는 온건파 의원들이 이탈할 가능성도 있었다. 게다가 탄핵 절차를 연말까지 끝내지 못할 경우 내년 1월6일 개원하는 새 의회에서 지난 11월 중간 선거 결과에 따라 공화당 의석(현재 2백23석)이 5석 줄어드는 대신 민주당 의석(2백11석)은 5석이 늘어나는 상황도 부담스러웠다.

또 하나, 설령 하원이 탄핵안을 가결한다 해도 상원에 가면 통과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점도 공화당 지도부를 자극한 요인이다. 공화 55석, 민주 45석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상원 의석 분포로는, 민주당 의원들이 합세하지 않는 한 공화당은 탄핵안 통과에 필요한 67석을 확보할 수 없다. 공화당 의원 모두 탄핵에 찬성하고, 여기에 민주당 의원 12명 이상이 가세해야만 탄핵이 이루어질 수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클린턴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열쇠는 상원이 쥔 셈이다. 상원은 하원으로부터 탄핵 처리안을 접수하는 대로 당일 오후 1시에 회의를 열어야 한다. 따라서 내년 1월 초 새 의회가 개원하면 제일 먼저 상원이 해야 할 임무는 대통령 탄핵안이다. 하원과 달리 상원은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이 사회를 맡고, 하원 법사위 헨리 하이드 위원장이 일종의 검사 역을 맡아 탄핵 재판을 연다. 탄핵 재판 자체가 고통스런 과정임을 감안해, 상원의원들은 육성이 아닌 서면으로 렌퀴스트 대법원장에게 질의해야 한다. 또 최종 심판을 내릴 때 이들은 투표하지 않고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육성을 통해 ‘유죄’ ‘무죄’를 밝혀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상원의원 누구라도 탄핵 논의를 중지하자는 제안을 발의하고 이에 대해 단순 과반수가 찬성할 경우 논의 자체가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재적 의원 3분의 2가 찬성할 경우 탄핵 규칙을 바꿔서 탄핵 재판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어디까지나 클린턴 대통령측의 ‘희망 사항’일 뿐, 현실 세계에서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 사회 분열’ 큰 상처 남겨

현재 의석 분포에 비추어 만일 상원에서도 하원처럼 당파적 이해에 따라 찬반이 이루어질 경우 클린턴이 탄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우선 당파적 이해에 치우친 하원의원들에 비해 상원의원들은 비교적 초당적으로 국사를 논의해 왔다. 따라서 공화당 의원 가운데 탄핵에 반대할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민주당 의원 가운데서도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백악관은 우려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공화당 의원 전부가 탄핵에 찬성하고 여기에 민주당 의원까지 일부 가담할 경우 클린턴은 자진 사임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올 한 해 이 문제로 사실상 국사가 마비되다시피 한 만큼 적어도 상원에서는 하원 표결의 재판(再版)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오히려 상원은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비난 결의안을 하원과 공동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의 트렌트 로트 원내총무는 일단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면 원칙대로 상원에서 탄핵 재판을 진행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재판을 열지도 않고 타협책을 논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 여론이다. 만일 국민 대다수가 상원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클린턴 대통령이 사임하기를 원한다면,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조차 이를 의식해 탄핵 찬성 쪽으로 기울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처럼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이 60%대를 유지할 경우 클린턴은 상원에서 살아 남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경우 대안은 상원의 비난 결의안이 될 것 같다.

결국 클린턴은 어찌 보면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하원의 심판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클린턴 탄핵을 계기로 미국 사회는 큰 상처를 입었다. 무엇보다 탄핵 문제처럼 초당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안을 놓고 미국 사회가 철저히 양분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화당 지도부는 미국민 60% 이상이 원한 비난 결의안 채택을 끝까지 거부했을 뿐 아니라, 자파 소속 의원들에게는 ‘탄핵이냐 아니냐’식의 양자 택일을 강요함으로써 양심에 따른 선택을 박탈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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