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옥을 숨겨라” 한나라당 엄호 작전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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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노출 막기 안간힘…민주당은 ‘한인옥 들추기’ 별러
7월4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전철역 부근에 있는 한 중국 음식점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부인인 한인옥 여사가 나타났다. 의원 부인들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온 한여사는 이날 한나라당 중앙당 여성 당직자 30여명과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6월26일과 7월2일에 이은 세 번째 모임이었다. 한여사는 이 모임을 통해 여성 당직자 100여명을 만나 지방 선거 과정에서 헌신한 것에 감사를 표했고, 여성 당직자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이들을 위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여사가 이처럼 대규모로 당직자들을 챙긴 것은 전에 없는 일이다. 특히 최근 들어 활동을 자제해 온 점에 비추어 볼 때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여사측은 정치적인 의미는 전혀 없다며 모임을 가진 사실이 알려지는 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얼마 전 한여사가 신병 치료차 입원한 한 여성 당직자를 위문하러 간 일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여성 당직자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등 어려움이 많으니 격려해 달라는 건의를 받고 모임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당 내부에서도 한때 ‘한여사 비판’ 소리 높아


한나라당은 왜 이처럼 한여사의 동정이 알려지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한여사와 관련한 한나라당의 최근 전략은 ‘한인옥을 숨겨라’이다. 그런데 한여사가 움직이는 모습이 외부에 자꾸 노출되면 너무 나선다거나 당무에 개입한다는 말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대선 전략 차원에서 ‘한인옥 흠집 내기’를 벼른다고 보고 있다.


올 초까지 한나라당에서 ‘한인옥 숨기기’라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한여사가 대중으로부터 좋은 이미지를 얻고 있어 이회창 후보의 딱딱한 이미지를 보완할 수 있다는 논리가 우세했다. 실제로 1997년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여사의 ‘상품성’은 항상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성 중앙>이 여성 유권자 1천12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누구를 대통령 부인감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5.8%가 한여사를 지목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부인인 권양숙씨라고 답한 사람은 21.7%였다. 이 때문에 한때 한나라당에서는 이후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한여사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했었다.


한여사도 상당한 의욕과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보해 왔다. 지난해 5월 <내 어머니>라는 수필집을 낸 데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소설가 김이연씨 등 7명과 함께 <자식이 뭐길래>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한씨는 이들 책에서 장남 정연씨의 병역 면제 의혹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겪은 마음 고생과 ‘가벼운 체중’에 대한 집안 내력을 서술하는 등 병역 면제 의혹에 대해 공세적으로 해명했다. 공개적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올 1월 ‘지구당위원장 부인회의’에 참석한 것을 끝으로 한씨는 좀처럼 공식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지난 3월에 터진 이른바 빌라 사건이었다. 민주당은 “가족 문제는 기본적으로 집안 살림을 총괄하는 한여사에게 책임이 있다. 이후보 가족, 특히 한여사의 진솔한 반성을 기대한다”라는 논평을 내는 등 한여사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빌라 사건 이후 이후보의 홈페이지에도 ‘빌라 사건이나 원정 출산 같은 것은 한여사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민주당에서 물고늘어지니 한여사는 언론과 인터뷰하지 말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한여사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의 한 핵심 인사는 빌라 사건 이후 한여사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가 여러 곳에서 이후보에게 올라갔다고 전했다. 당 일부 인사들이 공식 행사장에서 한씨를 ‘영부인’이라고 소개한 것도 당내에서 비판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여사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과 지방 선거 과정에서 철저히 ‘그림자 내조’를 했다. 3년째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안상수 인천시장의 부인을 찾아가 위문하고, 부산시장 경선에서 낙선한 권철현 의원의 부인을 만나 위로하는 식이었다. 여비서 한 명만을 데리고 여성 출마자들을 찾아가 조용히 격려하고 돌아온 적도 많다. 몇몇 의원과 부인 들이 한여사를 밀착 수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아 일부러 이들과 거리를 두며 혼자 움직인다는 분석도 있었다.


민주당과 언론에서 한여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한나라당은 5월 초 ‘한여사팀’을 만들었다. 팀원이라야 두 사람에 불과하지만, 전부터 한여사를 보좌하던 여성 신문사 기자 출신 이 건 비서관 외에 오랫동안 이세기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내 정치적인 판단이 빠른 구상찬씨가 추가로 합류했다. 두 사람은 정식으로 국회에 등록된 이후보의 보좌관과 비서관이다.


이 건 비서관은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한여사는 종교계를 꾸준히 찾고 있으며 열심히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주로 최일도 목사가 이끄는 다일공동체와 충북 제천에 있는 로뎀 청소년학교를 찾는다고 한다. 이비서관은 한여사가 로뎀 청소년학교에 우물을 파 주어 ‘우물 엄마’로 불린다고 말했다.


“불교계에 공들이고 있다”


한씨는 불교계도 자주 찾고 있다. 함종한 전 의원은 “지난 5월 부처님오신날에도 사찰을 다섯 곳 방문했다”라고 말했다. 요즘도 1주일에 3일 정도는 사찰을 방문하고 있다. 이후보가 가톨릭 신자여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불교 쪽을 자주 찾는다는 것이다. 주로 영남권에 불교 신자가 많아 영남권 민심을 다독이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한여사의 잠행은 대선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은 물론 본인도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 여성위원장인 김정숙 의원은 “불우 이웃·노인·여성 등 상대적으로 이후보나 공조직이 챙기기 힘든 부분에 지속적으로 신경을 쓸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사활을 건 한판 승부인 대선전에서 민주당이 한여사를 그냥 놔둘 것 같지는 않다. 민주당은 정연씨 병역 면제 의혹 등 이후보 가족과 관련된 문제점을 캐는 데 주력하고 있고, 그 중심에 한여사가 있기 때문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고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한인옥 감추기’와 ‘한인옥 들춰내기’라는 여야의 싸움은 이번 대선을 보는 여러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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