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의 변신의 무죄?
  • 이문환 기자(lazyfair@e-sisa.co.kr) ()
  • 승인 2000.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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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풍의 PC방 잇달아 등장… 증권 투자에서 영화 감상까지
어둠침침한 조명과 답답한 공기, 컴퓨터 게임 효과음과 게이머들이 지르는 괴성을 떠올리며 서울 서교동에 있는 ‘게토’나 강남역 근방의 ‘NET’ 같은 PC방을 찾는다면 크게 놀랄 것이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널찍한 공간, 쾌적한 분위기가 웬만한 카페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이들 PC방은 면적이 2백평이 넘고, 컴퓨터 대수는 1백70대가 넘는 대형 업소이다. 올해 들어 새로 생겨나는 PC방들은 대부분 이렇게 카페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다. ‘너구리 굴’ 같았던 기존 업소 중에서도 손님을 끌려고 인테리어를 새롭게 단장하는 곳이 적지 않다. PC방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PC방이 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PC방은 문만 열었다 하면 돈을 버는 ‘노다지’ 사업이 아니다. 업주들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컴퓨터 1대당 하루 4만∼5만원 매출은 ‘우스운’ 일이었다. 한 업소가 갖고 있는 컴퓨터 대수는 평균 30대. 단순 계산으로도 한 업소당 한달 평균 매출액이 4천만원에 육박했다.“개업만 하면 돈 버는 시절 끝났다”

하지만 올해 들어 PC방 업소들의 매출액은 적어도 40%가 줄어들었다. 인터넷 전용선 임대 업체 ‘보라넷’이 PC방 업주 5천5백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컴퓨터 1대당 하루 평균 매출액이 1만5천원을 넘는 업소는 30%에 불과했고, 5천∼만원이 10%, 5천원 미만이 60%였다. 컴퓨터 1대가 하루에 5천원도 못벌어서야 남는 것이 없다. PC방 업주들의 단체인 한국인터넷멀티문화협회 정책국 소속 김윤범씨는 “투자비가 아까워서 그만두지 못하는 업소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매출이 줄어든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업소간 경쟁이 지나치게 심해졌다는 것이다. 지난 4월 PC방 숫자는 전국에 1만6천여개. 그것이 불과 3개월 후인 7월 현재 2만개로 늘어났다. 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 업소들이 택한 경쟁 무기는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서는 시간당 2천원 받던 요금이 7백∼8백 원까지 내려갔다.

PC방 성장의 견인차였던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이제 시들해지고 있다는 것도 PC방 업주들의 최대 고민이다. 아직 <스타크래프트>의 뒤를 잇는 ‘대형 게임’이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쉽게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이 업계 종사자들의 진단이다.

현재 PC방 이용자들이 주로 하는 게임은 <포트리스2>나 <한게임>. 이들 게임은 새로운 전략 전술이 계속해서 개발되는 <스타크래프트>와 달리 쉽고 단순하다. 한국인터넷멀티문화협회 김윤범씨는 “<스타크래프트>를 5시간씩 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포트리스>나 <한게임>은 2시간 정도 하는 게 보통이다”라고 말했다. 1998년부터 불기 시작한 <스타크래프트> 열풍 하나를 믿고 동네 구멍가게 세우듯 PC방을 세운 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주는 사실이다. PC방 매출액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데, 동네 소규모 PC방으로 갈수록 그 비중이 높아진다고 업계 종사자들은 말한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스타크래프트>라는 든든한 수입원이 사라지고 있는 이중고를 돌파하기 위한 PC방의 변신 몸부림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다양화·네트워크화·대형화가 그것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 생길 듯


다양화란 고객층을 넓히고 컨텐츠 종류를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PC방 카페화는, 고객층을 넓히기 위해 PC방 업계가 가장 먼저 시도한 변화다. PC방 분위기를 밝고 쾌적하게 만들어, 젊은 여성과 30대 이상 중장년층이 거부감 없이 접근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 고객이 PC방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업계 종사자들은 PC방을 찾는 남성과 여성 고객의 비율이 과거의 9 대 1에서 지금은 6 대 4 정도로 달라졌다고 추정한다.

게임 외에 PC방이 다루는 컨텐츠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채팅과 증권 정보이다. 특히 <오마이 러브>나 <시 앤 조이> 같은 화상 채팅은 PC방을 찾는 젊은 여성들이 가장 즐기는 컨텐츠이며, 증권 정보는 20대 후반 이상 연령층이 즐겨 찾는 컨텐츠이다. 5대 증권사의 경우 사이버 주식 거래 비중은 전체 거래액의 절반을 넘어섰다. 그러다 보니 증권 업계는 PC방을 사이버 증권 지점으로 삼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현대증권은 대형 PC방 체인인 한소프트넷과 계약을 체결해, 한소프트넷의 1백7개 체인에 자사 증권 거래점을 개설했다. 서울 서교동이나 분당 등지에는 ‘사이버 트레이딩 센터’라고 불리는 증권 거래 전문 PC방이 선보였다.

채팅·증권 정보와 더불어 앞으로 PC방이 만화·음악·영화 등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유통시키는 경로로 발전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미 ‘사이버 만화방’이 공급하는 만화나 MP3 형식으로 유통되는 음악 파일은 게임·채팅 다음으로 10대가 즐겨 찾는 컨텐츠이다.

또한 PC방이 영화의 새로운 유통 경로로 떠오를 가능성도 높다. 벤처 기업 채널인텔리전스 플랜이 추진하고 있는 ‘마기 클럽’(서울 대학로에 1호점을 열었다)은 PC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 스피커 6개에서 나오는 뛰어난 음향 효과에 54인치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고화질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이 곳은 VOD (주문형 비디오)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각 지점의 중앙 서버에 디지털 영화 파일을 저장해 두고, 방마다 설치된 컴퓨터를 통해 원하는 영화를 전송받도록 하는 것이다. 당분간 마기 클럽은 극장에서 개봉된 지 한 달 남짓 지난 신작을 상영할 계획이지만, 최종 목표는 극장과 같은 개봉관이 되는 것이다.

컨텐츠 다양화와 함께 떠오른 대안은 네트워크화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PC방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전국에 3천8백50개 가맹점을 갖고 있는 ‘게토 코리아’가 대표 주자이다.
게토 코리아는 네트워크화를 통해 PC방을 전자 상거래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PC방을 찾는 고객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PC방으로 물건을 배송하고, PC방을 상대로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판매하는 것이다. 하나로 엮인 게토 네트워크는 온·오프 라인 광고를 유치할 수 있는 훌륭한 ‘광고판’이다. 뿐만 아니라 게토 코리아는 게토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온라인 게임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미리 살펴 마케팅 자료를 얻는다는 복안이다.

컨텐츠를 다양하게 공급하고 고객에게 쾌적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PC방 대형화는 필수이다. ‘게토’나 ‘NET’ 같은 서울 시내 대형 PC방을 비롯해, 에버랜드에 네이버컴이 설립한 3백평 규모 ‘네이버플라자’ 등은 PC방 대형화를 이끄는 선두 주자이다. 최근 새로 생기는 PC방은 최소 50대의 컴퓨터로 출발하고 있다(업계 평균 PC 보유 대수는 30대).

대형화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코엑스몰의 메가웹스테이션이다. 전용 면적 5백40평에 컴퓨터 3백40대를 갖춘 이 곳은, 인터넷 비즈니스·사이버 금융·게임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전자 상거래 등 디지털 산업과 관련된 것은 모두 모아놓은 ‘백화점 PC방’이다.

이러한 다양화·네트워크화·대형화의 새 물결은 PC방 업계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종사자들은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이 또다시 등장하지 않는 한, PC방의 숫자는 머지 않아 만개 수준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PC방 업계에 구조 조정의 폭풍이 대대적으로 몰아닥치리라는 것이다.

거품이 빠지는 과정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하지만 PC방 업계가 뼈를 깎는 아픔을 통해 ‘튼튼한 몸’ 만들기에 성공한다면, PC방은 <스타크래프트>를 위한 오락실에서 정보통신 사회를 이끄는 첨병이자 인프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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