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로 ‘대박 담배’ 불붙인 KT&G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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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초슬림·저타르로 주력상품 바꾸어 승승장구…해외 수출도 ‘쑥쑥’
마지막까지 남은 이름이 4개였다. 어네스트·앨티·None·The one. 초기에 물망에 오른 상품명 5백여 개 가운데 수 차례의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통해 ‘살아 남은’ 이름들이다. 담배 이름은 KT&G(전 한국담배인삼공사)의 방경만 브랜드 매니저가 1년 6개월 동안 추진해온 ‘초저타르 담배 개발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작업이었다.

최종까지 남은 상표명들에는 타르 함유량이 1mg인 기능성 담배라는 점을 강조해 영문 이름으로 표시할 때 ‘one’이 들어간다. 유일하게 one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앨티’(로우 타르를 줄인 말)로 결정할 경우, 알파벳 소문자 ‘l’을 숫자 ‘1’ 모양으로 디자인할 계획이었다. 최종 소비자 조사를 통해 상품명이 결정되었다. ‘더 원(The One)’으로.

2003년 국내 시장 점유율 76.7%

2003년 9월, 더 원은 출시되자마자 ‘효자 상품’이 되었다. 발매 4개월 만에 단일 제품으로는 ‘에쎄 라이트’(22.1%)에 이어 판매량 2위(11.7%)에 올랐다. 애초 더 원은 시즌·레종과 같은 저타르 제품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 발매한 상품이었다. 사전 조사를 통해 초저타르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예측은 했지만 판매가 이처럼 증가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치밀한 흡연 행태 조사를 통한 마케팅의 승리였다.

더 원은 주력 상품을 중·저가 담배에서 초슬림형·저타르 담배(1천8백원 이상)로 바꾼 KT&G의 변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주력 제품이 바뀌면서 매출과 이익이 급증했다. 2003년 KT&G의 매출액은 2조1천7백89억원. 국내 담배 판매(7백44억 개비)가 2002년에 비해 2.6% 증가한 것에 비해 순이익은 7천1백15억원으로 32.3%나 늘었다.
전문가들도 KT&G가 이처럼 승승장구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담배 시장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1년 7월부터 국내 담배 제조 독점이 폐지되고 필립 모리스·BAT 등 다국적 담배 회사가 국내 공장을 설립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게다가 2002년 ‘이주일 쇼크’로 인해 사회 전반에 금연 열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KT&G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2002년 4월 브랜드국을 신설하고 브랜드 경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제조 중심에서 마케팅 중심으로 경영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 금연 열풍을 저타르 담배 등 기능성 담배 시장을 확장하는 계기로 활용했다.

공기업 시절에는 생산 부서가 신제품 개발을 주도했다. 담배산업은 생산 기계의 단가가 100억∼200억원에 이르는 장치 산업이어서 생산 부문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브랜드국이 신설되면서 제품별 책임자인 브랜드 매니저 제도가 생겼다. 마케팅 전문 교육을 받은 브랜드 매니저가 제품 개발과 소비자 반응 조사 등을 조정하고 책임졌다. 시장 조사를 통해 제품의 이미지를 정하고 고객을 세분화했다. 사내 공모 수준에 머물렀던 상품명 선정을 브랜드 네이밍 회사에 발주하고, 소비자 조사를 통해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브랜드 매니저는 신제품이 나온 이후 프로모션까지 담당한다. 입사 6년차인 방경만 더 원 브랜드 매니저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브랜드 매니저의 의사가 상당히 존중받는다”라고 말했다. 브랜드 매니저의 지휘를 받아 탄생한 더 원·레종·시즌 등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능성 담배가 인기를 끌면서 2003년 KT&G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76.7%에 이르렀다. 담배 시장이 개방된 나라 가운데 국산 브랜드 점유율이 이처럼 높은 경우는 드물다.
민영화 과정에서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의 투명성을 높인 것도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KT&G는 1998년부터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을 거쳤다. 명예 퇴직을 통해 인력을 41.3%까지 감축했고, 시설 현대화를 추진해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지배 구조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독립된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했다. KT&G의 전체 이사 13명 가운데 10명이 사외이사이다.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이사회는 아침 7시30분에 열린다. 2003년 10월에는 신용평가회사 S&P로부터 기업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다.

매출액과 순이익을 늘리는 데 기여한 또 다른 일등공신은 수출이다. 2001년 1백16억 개비, 2002년 2백14억 개비, 2003년 3백9억 개비. 수출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주요 수출 무대는 중앙아시아와 중동. 이 지역 수출 물량이 전체의 90%에 가깝다. 1999년부터 수출을 본격화해 이란·우즈베키스탄 등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20%를 넘어섰다.

치밀한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독자 브랜드를 개발해 중·저가 시장을 공략했다. 1993년부터 중동과 중앙아시아로 수출되는 ‘파인’은 국산 담배 ‘솔’의 영문 이름이지만, 맛과 향은 전혀 다르다. 순한 담배보다 독한 맛을 선호하는 중동인의 기호에 맞추었다. 이라크 전쟁의 영향도 받았다. 반미·반영 감정이 높아지면서 중동 국가들이 한국과 일본산 담배의 수입을 상대적으로 늘렸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주 지역을 공략하고 있다. 미국의 담배 수요가 저가 제품으로 이동한다고 판단하고 ‘카니발’을 개발해 틈새 시장을 파고들었다. 미주 지역이 차지하는 수출 비중은 10%에 이른다.

KT&G는 올 들어 시장 규모가 1천1백50억 개비에 이르는 터키에 공장 설립을 준비하고, 부동산 개발·바이오 산업 등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흡연 인구가 줄어 담배산업이 사양 산업화하는 것에 대비할 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을 해치는 ‘비도덕적 기업’이라는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KT&G 박원락 과장은 “담배에 대한 규제가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담배를 법적으로 금한 나라는 없다. 이왕 형성된 시장이라면 국내 시장을 막대한 자본을 가진 다국적 기업에 내주지 않는 것이 옳다. 국내 시장을 최대한 방어하고 해외 시장은 확장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KT&G는 2008년에 전체 담배 판매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50%대로 높일 계획이다(현재는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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