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로우 박사 인터뷰] “경제성장, 최고선 아니다”
  • 샌프란시스코·南裕喆 편집위원 ()
  • 승인 199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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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로우 박사 인터뷰/‘경제의 진실’ 밝힐 새 철학 제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비영리 정책 연구기관 ‘리디파이닝 프로그레스’ 공동 대표인 조너선 로우 박사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언론인 출신 경제 분야 시민운동가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기자와 <워싱턴 먼스리> 편집장을 지낸 후 로우 박사는 주로 미국의 세제 정책 개혁을 위한 시민 운동에 참여해 왔다. 국내총생산(GDP)을 버리고 대신 실질진보지수(GPI)를 진정한 경제성장의 척도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로우 박사를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리디파이닝 프로그레스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난 50년간 미국 경제 정책에 대한 논쟁은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집약된다. 보수주의자들은 작은 정부와 규제가 없는 더 큰 시장을 원하고, 진보주의자들은 큰 정부와 시장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는 종래의 접근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 의식을 제기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는 경제성장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국내총생산 지수가 증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경제적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일 수 있다. 그런데도 경제성장이 최고선이라는 인식에서 모두들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사회적 논쟁이 필요한 의제로 제기하고자 한다.

국내총생산 지수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국내총생산은 생산량의 단순 증가를 경제적 진보로 착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해마다 엄청나게 많은 교도소를 짓고 있다. 이는 미국이 안고 있는 범죄와 사회 문제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는 경제적으로 국내총생산 지수를 증가시키는 플러스 요인으로 계산된다. 샌프란시스코를 주행하는 자동차 수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하는 것이 시민의 삶을 두배 이상 낫게 만드는가. 공해와 소음과 교통난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그럼에도 국내총생산 지수는 이를 경제성장이라고 나타낸다. 그 결과 어떤 경제 활동의 사회적 비용은 고려하지 않고 국내총생산 지수를 증가시키는 모든 경제 행위가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경제적 진보’란 무엇이 좋고 나쁘다는 주관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미 ‘국내총생산 지수 증가, 즉 경제성장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라는 하나의 가치관에 물들어 있음을 잊지 말자. 가정이 파괴되고 범죄와의 전쟁에 엄청난 예산을 소모해야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는가. 도박과 마약이 증가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그런 판단은 단순히 당신의 주관적 가치 판단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경제 지표를 보면 현재 미국 경제에 심각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왜 보통 미국인들은 심각한 경제적 불안감에 빠져 있는가?

지난 10년간 미국 기업들은 회사의 수익 증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줄이는 감량 경영에 치중했다. 그 결과 일자리를 잃거나 줄어든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부업을 하는 미국인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서방 선진 7개국 중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 근로자 수는 미국이 가장 높다. 이를 경제 지표로 보면 고용 인구 증가와 더 높은 국내총생산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근로자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고 아이들은 부모 없이 텔리비전 앞에서 저녁을 보내고 있다. 그 결과 국민학생 중에 책을 읽지 못하는 학생이 늘고 청소년 마약과 범죄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는 곧 노동력 저하로 나타나 경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의 경제 지표는 이를 경제적 진보로 표현하고 있다. 장밋빛 경제지표와 보통 미국인들이 느끼는 경제 현실과의 괴리는 전통 경제학이 사회적 가치, 즉 비시장적 요소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정보산업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 과도기에 전통적인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으나 구조 조정이 끝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정보산업이 한 차원 높은 경제적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다.

설사 그 전망이 옳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가치와 연계고리가 파괴된 후 정보산업이 가져다 주는 부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경제학은 가치 판단이 배제된 과학이 아니다. 경제학은 사회적 가치 문제와 유리된 엄정하고도 수학적인 과학이라는 일반인의 무지와 착각이 이른바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책임한 장밋빛 전망을 남발하게 만들고 있다.

국내총생산 대신 실질진보지수를 진정한 경제성장의 지표로 사용하자는 당신들의 주장을 미국 경제학계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 박사를 비롯해 4백명이 넘는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우리의 주장에 지지 서명을 했다. 비경제학자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지지 서명자의 한 사람이다. 물론 현재 세계 경제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시카고 학파와 같은 자유경제학파 들은 우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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