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영등포의 법’이었다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3.07.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폭 ㅈ파 ‘지독한 훈련·악랄한 갈취·더러운 축재’ 현장 추적
경기도경찰청 폭력계 한광규 수사관이 자기 정보원으로부터 최초 첩보를 받은 것은 2001년 9월이었다. 정보원은 “서울 영등포 애들이 부천으로 넘어오고 있다. 낌새가 이상하다”라고 한경사에게 전했다. 지난 6월17일 조직원 52명이 검거된 영등포 ㅈ파에 대한 경찰의 내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경찰은 지난 1월 34명을 검거하고, 6월에 18명을 검거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영등포 ㅈ파는 조직원이 100여 명에 이르는 신흥 대규모 폭력 조직이다. 이 조직은 서울을 근거로 해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영등포 지역은 1970년대까지 군소 폭력배들이 활동하다가 1980년대 중반 김○태를 중심으로 ‘새마을파’로 통합되었다.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는 영등포역 앞 삼각지 일대. 1994년 2월 김○태가 호남 지역 신영광파와 다투다가 살해된 후 조직이 와해되었고, 2인자이던 이○용이 1997년 4월 조직을 재규합해 영등포 ㅈ파를 만들었다. 조직을 재건한 지 한 달 뒤인 1997년 5월 조직원 30여 명은 영등포 중앙통에 있는 업소를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었다. 조직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영등포 ㅈ파는 ‘영등포는 전통이 있는 조직이므로 자부심을 갖고 행동하며 영등포 삼각지는 우리가 지킨다’ ‘선배의 지시에는 무조건 복종한다’ ‘조직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강도·절도는 하지 않는다’는 행동 강령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복이 두려워 익명으로 경찰 조사에 응한 한 조직원은 “영등포에서는 ○용 형님의 말이 법이었다. 거기서 장사하는 상인 치고 ‘냄비’라는 별명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라고 말했다. 냄비는 두목 이○용씨의 별명이다. 이씨가 싸움을 할 때 머리에 상처나는 것을 싫어해 냄비를 머리에 쓰고 싸웠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평범한 주택가에 단독 주택을 얻어 합숙소로 운영하며 신입 조직원을 관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입 조직원은 5∼6개월간 합숙소에서 ‘덩치 처세’를 한다. ‘덩치 처세’는 이 기간 동안 몸을 불리는 것을 말한다. 한 조직원은 “합숙소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했다. 들어갈 때 몸무게가 70㎏이었는데, 나올 때는 1백20㎏이었다”라고 말했다. 합숙소에서는 ‘형님’들에게 처세하는 법도 배운다. “형님을 보면 다리를 어깨만큼 벌리고 양손을 무릎 위로 올리고, 허리를 90°로 숙여서 인사한다. 말끝에는 ‘형님’이라고 꼭 붙인다. 형님들에게 처세 잘하는 법을 배웠다.” 한 조직원의 진술이다.

합숙 기간이 끝나면 ‘정찰’에 투입된다. 정찰은 영등포 관할 지역의 업소 관리를 말한다. 2인1조나 3인1조로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정찰을 한다. 상납 요구에 응하지 않는 업소에 가서 협박을 하는 일명 ‘단돌이치기’도 이들의 몫이었다.
ㅈ파는 영등포 삼각지 일대의 유흥업소에서 활동 자금을 얻었다. 유흥주점 10여 개를 직접 운영했고, 다른 10여 개에는 조직원을 영업 상무로 취직시켜 보호비를 갈취했다. 웨이터들에게도 보호비 명목으로 월 40만∼50만 원씩 받았다. 이들은 업소에 수금하러 갈 때는 눈에 띄는 고급 승용차 대신 준중형차를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20대 중반인 한 조직원은 월수입이 5백만원이라고 경찰에서 진술할 정도로 ㅈ파는 자금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조직원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골프를 치러 가다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들은 유흥업소뿐만 아니라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 조직원은 광고지 독점 영업을 위해 ‘우유·신문 배달 오더’까지 따왔다. 한광규 수사관은 “조직이 확대되면 조폭은 돈 되는 것은 뭐든지 한다”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유흥업소 관리뿐만 아니라 노사 분규에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8년 6월10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D운수회사 사장의 부탁으로 이들은 조직원을 자재과장·정비과장·배차과장으로 위장 취업시켰다. 강성 노조를 해체하기 위해서였다. 조직원이 위장 취업한 후 조직원 50여 명이 노조 사무실을 강제로 용접해 폐쇄했다. 노조원이 사무실을 장악하자 이들은 노조위원장 등 노조 간부들을 폭행해 결국 노조를 와해시켰다. 당시 이 사건은 방송 뉴스에까지 방영되었으나 이들이 조폭이었다는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신도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영등포 조폭들은 아파트 단지 샤시 이권을 둘러싸고 다른 조직과 세력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1998년 12월, 김포 장기동 ㅇ아파트 입주 현장에서 이들은 편싸움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샤시 이권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ㄴ파 20여 명, 영등포 ㅅ파 10여 명과 연합한 영등포 일대 조폭 60여 명은 역시 같은 이권을 노리던 ‘목포 ㅅ파 20여 명, ㅅ파 10명 등 폭력배 30여 명과 집단 편싸움을 벌였다. 한 조직원은 샤시 이권이 한 가구당 대략 80만원선이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영등포의 대형 쇼핑몰 명도 과정에도 개입했다. 쇼핑몰은 영등포 상권의 요지인 로터리에 지상 16층, 지하 5층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2002년 3월 시행사 ㅈ이 2천억원대 쇼핑몰을 신축하기 위해 주변 건물을 매입하고 철거하는 과정에서 기존 세입자들이 이를 거부하자 ㅈ파가 개입했다. ㅈ파는 세입자 가게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거나 호프집 같은 경우 미성년자를 들여보내 술을 마시게 하고 경찰에 신고하여 영업을 못하게 하는 방식을 썼다.


자금 출처 면에서 영등포 ㅈ파는 기존 조폭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이들은 유흥업소 기생형 조폭에서 자립형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사창가 업소를 직접 운영했던 것이다. 이들은 2002년 3월부터 영등포 사창가 내 업소 10여 개를 직접 운영하며 사창가를 장악해 갔다. 사창가에서 불법으로 카드깡을 하던 업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보호비를 갈취하다가 나중에는 직접 카드깡을 했다. 이들은 현금 6만원인 화대를 카드로 8만원에 결제하게 해 차액 2만원을 수수료 명목으로 챙겼다.

‘석사 출신’ 조폭이 조직 관리와 운영을 치밀하게 연구한 것도 특이점이다. 2003년 2월 경찰은 행동대장 이○주의 집을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현금 및 수표 8천3백만원과 조폭 조직 연구 자료를 발견했다. 이씨는 다른 행동대장과 차기 두목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이었다. 한 체육대학 대학원까지 마친 ‘석사 조폭’ 이씨는 폭력 조직에 관한 자료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아 자신이 두목이 되면 어떻게 조직을 운영할지를 연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하는 조폭’에 경찰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경기도경은 수사기관으로서는 최초로 조폭의 자금을 추적했다. 5개월여 동안 계좌 추적을 벌여 2002년 1월부터 2003년 1월까지 주요 조직원 사이에 26회에 걸쳐 5억2천여만원이 거래된 사실을 확인했다.

경기도경은 범죄 수익을 은닉하거나 수수한 경우 몰수 또는 추징할 수 있도록 한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2001년 9월 제정)을 처음으로 적용해 두목 이씨의 처 통장으로 입금된 돈 1억5천여만원을 몰수했다.


김춘섭 경기도경 폭력계장은 “김두한 같은 이도 요즘 같으면 두목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는 싸움을 잘 하면 두목이 되었지만 이제는 자금이 있어야 한다. 자금원을 차단하고 범죄 행위로 인한 수익을 몰수하는 것이 조직 범죄 확산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영등포 ㅈ파를 내사하면서 경기도경 폭력계는 수사에 애를 먹었다. 내사 사실을 눈치 챈 조직원들은 몇 차례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는 등 수사망을 벗어나려 했다. 4개월 동안 여관에 묵으며 수사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지만 피해자들이 적극 나서지 않아 판사가 범죄단체 구성 여부를 인정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지난 6월26일, 영등포 ㅈ파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오전 11시30분께. 한광규 수사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법원에 참관하러 간 형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두목은 10년, 간부들은 6년, 조직원은 3년6개월 나왔답니다.” 그는 즉시 김춘섭 폭력계장에게 보고했다. 한수사관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경찰 차원에서 지난 6월11일부터 조폭 소탕 작전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한수사관은 다른 조폭 3개 파에 대한 내사에 돌입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