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군 50주년 맞은 공군 교관들의 세계
  • 진주·사천/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9.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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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정보로 무장, 조종사 양성 구슬땀
군대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개 ‘교관(敎官)’이라는 직책에 대해 그리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갖고 있다. 햇병아리 신병 훈련소 시절의 ‘무시무시한’ 교관이나, 빨간 모자를 눌러 쓴 유격 교관과 조교를 떠올리면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릴지 모른다.

그러나 군대에 꼭 훈련 교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분필 가루를 마시며 학생을 가르치고 나서, 밤새도록 교안(敎案)을 작성하며 공부하는 교관도 수두룩하다.

올해로 창군 50년을 맞은 공군의 교관들이 바로 그들이다. 경남 진주시 문산면 속사리 일대 1백10만여 평에 자리잡은 공군교육사령부(사령관 박경웅 소장)는 지난 반 세기 동안 공부벌레 교관들이 정예 ‘보라매’를 길러낸 곳이다.

공군교육사령부 외국어교육실 소속 영어 교관 석 민 중위(27)는 미국 뉴욕 주립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공군사관후보생 98기로 임관했다. 서울 태생이지만 은행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미국·일본에서 두루 생활해 보기 드문 ‘세계화’ 경력을 지녔다. 영어 교관이 되려면 TOEIC 900점을 넘거나 TOEFL 600점 이상이 기본이다. 석중위는 딱 한번 치른 TOEIC 시험에서 980점을 기록했다.
처진 예비 조종사 위해 과외도 불사

그는 매일 4∼6시간씩 나이 든 군인 학생들을 가르친다. 미국에 단기 유학을 떠나는 공군 요원이나 항공기 정비·통신 특기를 가진 하사관들에게 영어를 강의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영어회화 교관은 따로 있기 때문에 풍부한 어휘력과 단어 능력을 길러주는 데 열중한다.

일과가 끝난 뒤에는 독신 장교 숙소인 BOQ에서 생활한다. 물론 생활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 농구를 즐기는 석중위는 같은 숙소의 장교들과 농구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진주 시내 외국어학원에 나가 틈틈이 일본어를 배우기도 한다. 다음날 교안을 준비하고 영어 공부를 하거나, 같이 근무하는 외국인 영어 교관들과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실력이 처지는 학생을 위한 과외 지도도 빠뜨리지 않는다.

훤칠한 용모에 영어 잘하는 석중위에게서 검게 그을린 얼굴의 전통적인 군인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석중위는 전형적인 신세대 엘리트 장교의 모습이다.

석중위의 연봉은 1천2백만원 정도. “아버님이 내신 세금이 내 봉급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할 때마다 돈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틈틈이 저축도 하고 있다.” 그는 또 “능력에 따른 것이 아니고, 세월이 가면 계급이 올라가는 연공서열식 진급 관행은 개선되어야 한다”라고 당당히 주문한다. 직업 군인이 아닌 그는 3년 군생활을 끝내면 회계학 전공을 살려 대기업에 취직할 생각이다. 그는 여느 군인과는 달리 선택된 행복한 교관이다. 그는 “요즘엔 영어를 잘하면 군 생활이 편하다”라고 말한다.

그럼 영어만 잘하면 될까? 공군교육사령부 전자통신학교에서 교관을 맡고 있는 김대용 중위(27)는 제대를 3개월 남긴 고참 장교이다. 석중위가 영어에 빠져 사는 것과 달리, 김중위는 하루 종일 컴퓨터에 파묻혀 산다. 3년 동안 컴퓨터와 같이 살았고, 천명도 넘는 학생이 그에게서 컴퓨터를 배웠다.

김중위가 소속된 전자통신학교(교장 전재구 대령)는 학교장과 교관이 모두 전자우편을 통해 업무 지시나 보고를 한다. 학교에 근거리 통신망(LAN)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못하면 공군 생활은 어렵다.

일과 끝난 뒤 시내 인터넷 PC방 애용

전자통신학교에서 컴퓨터 잘하는 18명이 올해 2월에 ‘정보를 위한 모임’ 동아리를 결성했다. 김중위는 이 동아리의 핵심 멤버이다. 정보를 위한 모임은 멀티 미디어·정보통신·네트워크 동호회로 구분되어 각자의 관심 분야에 따라 활동한다. 교육용 프로그램을 만들고, 공군 장비에 대한 Y2K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가 하면, 인터넷 홈페이지도 제작한다.

이들은 모두 컴퓨터 전문가 뺨칠 정도의 실력을 자랑한다. 사회에서 컴퓨터·전자통신·소프트웨어·전자를 전공한 이들 장교와 하사관 들은 개인 인터넷 홈페이지와 통신 ID를 모두 지니고 있다. 물론 정보처리검색사나 정보검색사 자격증은 기본이다.

유닉스와 윈도, 컴퓨터와 인터넷을 가르치는 교관인 김중위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과 시간 내내 컴퓨터와 씨름한다. 1년에 감당해야 하는 수업은 7백 시간. 군대에 있다 뿐이지 학원 강사 못지 않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김중위는, 공군사관후보생으로 군생활을 하기 전에 컴퓨터 회사에 다닌 경험을 살려 제대 뒤에도 컴퓨터 업계로 진출할 계획이다.

컴퓨터에 빠져 사는 김중위의 불편은 단 하나, 영내에서는 PC로 외부 사람들과 통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중위 같은 젊은 교관들은 요즘 일과가 끝난 뒤에도 BOQ에 들어가기를 싫어한다. 대신 진주 시내로 나가 인터넷 PC방을 애용한다. 정보화 시대 이후 달라진 군 풍속도 가운데 하나이다.

“육군은 끌려가는 기분이지만 공군은 선택하는 느낌이었다. 학생을 가르치면서 교관도 공부한다. 일거양득 아닌가.” 김중위가 3군 가운데 공군을 택한 이유이다. “컴퓨터를 잘하면 군생활이 쉽다.” 김중위를 통해 볼 수 있는 99년 공군의 두 번째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나 연병장에서 생활하는 훈련 교관이 아니라고 해서 편한 것만은 아니다. 교관 역시 정기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고, 특히 석 민 중위의 경우 학생들의 성적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자기 시간을 투자하는 과외 수업도 불사해야 한다. 전투기 조종사 교관 키우는 데 백억원 들어

전자통신학교의 한 장교는 훈련 교관과 자신을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로 구분했다. 두뇌 활동이 많은 만큼 더 피곤하다는 것이다.

영어와 컴퓨터에 능통한 교관, 영어 성적이 진급에 반영되는 교관, 이는 30개월을 복무하는 단기 장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평생을 군인으로 복무하는 직업 군인 교관도 마찬가지다. 공군교육사령부 기술학교에서 폭발물 처리 교육 부서인 EOD반을 맡고 있는 송대희 준위(41). 그는 하사관 최고 계급으로, 부대 내에서는 감독관이라고 불린다.

21년 군생활을 자랑하는 베테랑 교관인 송준위는 공군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88년에 미국에 건너가 폭발물 처리 교육을 받았다. 우리나라 공군의 무기 체계 대부분이 미국제여서 무기 정비나 폭발물 처리에 영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무기 정비뿐만 아니라 항공기·전투기를 다루는 공군의 특성상 영어는 ‘밥줄’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때 떨어진 불발탄이나 홍수때 분실된 폭발물, 항공기 사격장에 떨어진 불발탄을 안전하게 제거하는 것이 송준위의 주된 임무이다. 폭발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면 끊임없이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신형 폭탄에 대해 알려면 영어를 공부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영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업무 자체를 알 수 없다. 끊임없이 영어 공부를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송준위 입에서는 여느 무역회사 직장인과 다름없는 얘기가 쏟아진다.

‘공군의 꽃’이라고 할 전투기 조종사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전투기 조종사 생활 14년이 된 장경식 소령(38)은 내년 6월에 미국 공군대학의 고급지휘관 참모 과정에 입교할 계획이다. 이미 충남대학에서 행정학 석사 과정을 수료한 그는 논문 완성과 함께 영어 공부에 진력하고 있다. 앞으로는 교육사령부 영어 교관 석 민 중위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장소령은 간단한 워드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컴퓨터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장소령처럼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는 쉽지 않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훈련기를 조종하는 초등·중등·고등 훈련을 거쳐 조종사 단독 CRT (전투훈련 준비) 과정까지 마쳐야 비로소 전투기 조종사가 된다. 그 전투기 조종사가 후배 조종사를 길러내는 교관이 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돈이 투자된다. 전투기 조종사 1명을 탄생시키는 데는 12.4억원, 유능한 전투기 조종사 교관을 키우는 데는 백억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 장경식 소령은 백억원대 가치를 지닌 한국 공군의 핵심 전력인 셈이다.

고객 중심 ‘주문자형 교육’ 진행

장소령은 “학생 조종사는 하루 24시간 전체를 비행과 관련한 공부에 투자해야만 비행 훈련 과정 2년을 이수할 수 있다. 훈련 도중 도태되는 젊은이에게 전투기 조종사 꿈을 접고 다른 꿈을 가지라고 이야기할 때가 제일 안타깝다”라고 말한다. 교관 직책을 수행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진주 공군교육사령부에 소속된 교관은 모두 4백여명. 이들은 공군 소속 부대를 3년씩 순환 근무하며 임무를 수행한다. 장교·하사관·군무원으로 구성된 이들은 지난 50년 동안 보라매를 송골매로 길러온 공군의 핵심 전력이다.

공군교육사령부는 현재 신세대 장병의 요구와 정보화·세계화 추이를 반영해 교육 수요자가 요구하는 것을 가르치는 고객 중심 ‘주문자형 교육’으로 전환해 가고 있다. 기업체의 TQM(총체적 품질 관리)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21세기 공군은 컴퓨터를 조작해 인공 위성으로 전쟁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제 전투력만 강해서는 강군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공군교육사령부의 역할은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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