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길은 한국 어업의 희생양인가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9.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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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언론·어민 ‘3박자 에러’…김선길은 희생양?
한·일 어업협정 실무 협상 재협상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쌍끌이 어업 누락 문제로 고등어 한 마리가 쇠고기 한근 값이 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국이 재협상을 요구하는 ‘구걸 외교’를 했는데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김선길 해양수산부장관(65)이 물러나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김장관의 사퇴가 한·일 어업 문제를 풀어 준 ‘쾌도난마(快刀亂痲)’였다는 것인가?

한국 지식인 사회는 언제나 ‘희생양’을 만든다. 한 사람이 책임지고 물러나면, 나머지 사람들은 면죄부를 받은 양 떳떳해진다. 일본이 과거의 한·일 어업협정을 파기한 것은 98년이고 새 한·일 어업협정이 발효된 것은 99년이니, 이 문제는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에 걸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데 왜 김선길 장관이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일 어업 문제를 둘러싼 혼란은 바다 질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무식’에서 말미암았다. 무식이 편견을 낳고, 편견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지금의 바다 질서를 규율하는 유엔 해양법 협약은 ‘국제법’이다(57쪽 딸린 기사 참조). 반면 자기 나라의 영해를 규정하는 영해법과 배타적 경제 수역(EEZ)을 정하는 배타적경제수역에관한법은 국내법이다. 세계 법조계의 절대 다수 이론은 ‘국제법이 국내법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97년 8월15일 일본 검찰 하마다(浜田) 지청은 한국 어선 대동호가 97년 7월 일본이 새로 선포한 직선기선 영해를 침범했다며, 선장 김순기씨를 기소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옛 한·일 어업협정이 ‘쌩쌩히’ 살아 있었다. 판결을 맡은 하세가와 야쓰히로(長谷川恭弘) 판사는 김선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며, 아주 친절하게도 “일본 헌법이 국제 조약을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만큼, 국제 조약인 한·일 어업협정이 일본 국내법보다 우선해야 한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 역시 헌법 전문에 국제법을 준수한다고 명시해 국제법이 국내법에 우선한다는 원칙을 취하고 있다. 미국·중국·북한 등이 체결한 정전협정과 한·미 행정협정(SOFA)이 국내법에 우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독도 포기론’

새 한·일 어업협정은 지난해 12월17일 일본 국회를 통과하고, 한국 국회도 이를 지난 1월6일 날치기 통과시킴으로써 지난 1월23일 0시부터 발효했다. 이에 따라 한국 해양수산부와 일본 농수산성 간의 실무 협상이 시작되었다.

동북아 수역의 물고기 중 상당수는 회유한다. 봄철에는 중국 근해로 가 알을 낳고, 여름이면 한반도 수역에서 놀다가, 가을에 일본 근해로 몰린다. 이러다 보니 이 수역의 어선들도 고기떼를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어선이 일본 근해에서 잡는 고기가 일본 어선이 한국 근해에서 잡는 고기보다 많았다. 97년 한국 어선은 옛 한·일 어업협정에서 공해라고 규정한 일본쪽 바다에서 21만t을 잡았으나, 일본 어선은 한국 쪽 공해에서 11만t을 잡았다. 따라서 새로운 어업협정을 맺지 않고,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경제 수역 중간선을 그으면 한국이 손해이다. 그래서 한국은 새 협정 체결 협상에 참여해, 양국 어선이 공동 조업하는 공해(이를 중간 수역이라고 한다)를 최대한 넓게 잡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동해 중간 수역에 독도가 위치하자, 서울대 신용하·이상면 교수가 정부가 독도 영유권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새 협정에는 ‘이 협정은 어업 문제에 국한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어, 영유권 문제를 다루지 않았음이 분명한데도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국민이 많았다. 야당도 어업협정이 영토 협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텐데, 대여(對與) 투쟁 차원에서 두 교수의 주장을 확산시켰다(국민을 현혹한 독도 영유권 포기 주장은 실무 협상이 시작되면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실무 협상에서 일본은 올해부터 양국이 상대 경제 수역에서 똑같은 양의 고기를 잡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은 기존 어획고가 있는데 하루아침에 어떻게 줄이느냐고 맞섰다. 그 결과 올해부터 한국이 어획량을 조금씩 줄여 3년 후부터는 똑같이 하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올해 한국 어선은 일본의 배타적 경제 수역에서 최대 15만t까지만 잡고, 일본 어선은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최대 10만t까지만 잡는다’는 전제가 세워졌다. 또 양국의 수산 당국은 상대측 경제 수역에서 잡아야 하는 어업별·어종별 어획량을 정해 상대국으로부터 승낙받는다는 원칙에도 동의했다.

이 원칙에 따라 수산 당국은 어민들로부터 상대국 경제수역에 출어해 온 어업 종류와 어획량에 관해 신고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12개 어업이 신고되었는데 이때 ‘쌍끌이 어업’이 누락되었다. 쌍끌이 어업은 <그림>처럼 배 2척이 그물을 끌면서 조업한다. 이 경우 그물코가 작으면 치어까지 걸려들므로 어업 자원을 고갈시킬 우려가 있다. 이런 염려 때문에 일본은 옛 한·일 어업협정이 살아 있을 때부터 동경 128° 동쪽에서는 쌍끌이 어업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해 이를 관철했다. 반면 한국은 어민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이를 규제하지 않았다.

동경 128°는 경남 남해도를 관통해서 일본 규슈 서쪽 해상을 지나는데, 대부분의 한국 쌍끌이 어선은 서해 공해상에서 조업하고 극히 일부만 일본 규슈 서쪽에서 조업했다. 여기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부끄럽지만 한국 어선들이 그동안 적잖게 부정(不正) 어업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한국 어선들은 하루 1∼3 차례씩 해양부 어업무선국에 자기 위치를 무선으로 보고해야 한다. 특히 동·서해의 어로 한계선 근처에서 조업하는 어선은 북한 경비정에 나포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 더 자주 보고해야 한다. 어업무선국에 신고하는 주파수는 모든 어선이 들을 수 있는 공개 주파수이다.
‘쌍끌이’가 빠진 진짜 이유

어선 선장에게는 만선(滿船)에 대한 꿈이 있다. 고기떼를 만났을 경우, 그는 동업자에게 자기 위치를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또 고기떼를 쫓다가 동경 128°를 넘을 경우 어업무선국에 정직하게 위치를 신고하면, 일본 수산 당국이 그 사실을 포착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상당수 한국 어선들은 자기 위치를 부정직하게 신고해 왔다. 옛날에는 어로 한계선 바로 남쪽에서 조업하다 고기떼가 북한 수역으로 몰려가자, 무전사와 무전기를 인근 섬에 내려놓고 어로 한계선을 넘어 조업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나포된 어선도 있었다.

한국 수산 행정은 시·도나 수협지부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실무 협상에 필요한 어민들의 출어 신고도 시·도와 수협지부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쌍끌이 어업을 하는 어민들은 일본측 경제수역에서 쌍끌이 어업을 한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쌍끌이 어업을 했다고 보고하면 부정 어업을 한 사실이 드러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배 한 척이 끄는 외끌이 어업은 신고했다. 외끌이와 쌍끌이는 사실상 같은 어법이며 ‘대형 기선 저인망’이라고 통칭한다. 따라서 어민들이 쌍끌이를 부정 어업 시비가 적은 외끌이로 신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신고를 종합한 것은 해양수산부 어업지도과 사무관이었다. 그가 만약 ‘외끌이는 있는데 왜 쌍끌이는 빠졌는가?’라고 되물었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는 ‘대형 기선 저인망’에 쌍끌이·외끌이가 모두 포함된 것으로 생각하고 실무협상팀에 자료를 넘겼다. 이때가 실무협상이 타결되지 않아 한국 어선들이 일본측 경제수역으로 출어하지 못할 때였다. 이에 따라 고등어를 비롯한 각종 수산물 값이 올라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한·일 수산 당국은 재빨리 실무 협상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출어가 제한된 어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때마침 쌍끌이가 빠졌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 준’ 격이 되어 야당과 언론이 연일 해양수산부를 성토하게 되었다.

2002년부터는 10만t 이하만 어획 가능

언론은 어민들의 주장을 근거로 서해에 출어하는 쌍끌이 어선이 마치 규슈 서쪽으로 출어하던 것처럼 부풀려서 보도했다. 재협상을 하라는 압력이 높아질 때쯤 ‘지한파’인 오부치 일본 총리의 한국 방문 날짜가 다가왔다. 오부치 총리는 한국과 쌍끌이 어업 누락 문제를 다룰 재협상에 응해 주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3월16∼17일 한·일 수산 당국 간에 재협상이 이루어졌다. 말이 재협상이지 사실상 구걸 외교였던 것이다.

재협상을 하더라도 한국은 최대 15만t(정확히 말하면 14만9천t), 일본은 10만t(9만4천t)을 넘을 수 없다는 원칙을 깰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업·어종 별로 할당량을 정해두면, 실제로는 그 양의 80% 정도밖에 잡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은 다른 어업에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남는 양을 쌍끌이 어업으로 돌려도 좋다는 약속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냈다. 일본 처지에서는 더 준 것 없이 조삼모사(朝三暮四)한 것인데, 한국은 김장관을 사퇴시킴으로써 큰 문제를 해결한 듯 양양해 했다. 이것이 쌍끌이 사태에서부터 김장관 사퇴에 이르기까지의 진실이다.

새 협정에 따라 내년에 한국은 일본 수역에서 더 적은 어획고를 올려야 한다. 2002년부터는 일본이 한국측 경제수역에서 잡는 것과 똑같이 10만t 이하만 잡을 수 있다. 이제 다른 나라 바다에서 약탈하듯 고기를 잡아오던 시절은 끝났다. 이미 국제법이 바뀌었는데 그보다 하위인 국내 문제로 싸우며 희생양만 찾아봐야 ‘잔치 끝나고’ 난 다음이다. 바뀐 현실을 수용해 어업 구조 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바다 오염과 남획을 줄여 근해 어업을 되살리는 것이 한국 어업을 살리고 푸짐한 식탁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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