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군회와 싸우는 칠순 노병들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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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자들 “생계보조금 정당하게 지급하라” 재향군인회 상대로 버거운 싸움
“향군회는 전쟁 기념 행사 때만 되면 우리를 이용하면서, 정작 우리가 하나 둘씩 죽어 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회원 수 5백50만명으로 대한민국 최대 단체로 꼽히는 재향군인회를 상대해 15년간 싸워온 노인들이 있다. 6·25 참전자인 이들의 평균 연령은 70세. 여든이 넘은 이들도 허다하다. 게다가 이들 중에는 전쟁 때 입은 상처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옛 전우들이 해마다 몇십명씩 유명을 달리하는데도 자기들을 위해 조성된 생계보조금을 재향군인회가 일반 예산으로 전용해 정작 자신들의 생계는 돌보지 않는다며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은 88년 국방부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역대 재향군인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하는 등 법정 투쟁을 벌여 왔다. 94년 장태완 신임 회장이 취임한 이후로는 향군회로 몰려가 농성도 수차례 벌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포괄적인 지시 사항말고는 이 기금이 이들의 몫이라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혐의·불기소 처분이 났다. 이들이 마침내 헌법 소원을 낸 것은 지난해 4월. 검찰권 행사 과정에서 평등권을 침해 당하고 재판 절차 진술권을 침해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머지 않아 내려질 헌재의 판결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군인연금 비수급자 중 생계보조금 수령자회’(생보회)라는 긴 이름의 단체가 만들어진 때는 82년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76년, 6·25 참전 군인 중 복무 기간이 모자라 연금 수혜 대상에 끼지 못해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박대통령은 3억원을 출연했다. 그 후 몇 차례에 걸친 기업체 기부금과 전두환 대통령 출연금까지 합쳐 생계보조금은 86억원으로 불어났다.

생보회측 주장의 핵심은, 애초 대통령 지시에 따라 특별 회계로 분류해 참전자 중 생계 곤란자들에 대한 지원 목적으로만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이 기금을 향군회가 일반 예산으로 전용하고 산하 기업을 통해 자체 수익 사업에만 몰두해 왔다는 것이다. “월 80만원 받아야 정상인데 고작 16만원”

현재 6·25 참전자 중 생계 곤란자로 분류된 1천1백여 명은 향군회로부터 월 16만원씩 생계보조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박대통령 당시 지급하던 금액과 비교하면 형편없이 깎인 금액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 향군회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박대통령 당시 소령 전역자 연금의 80% 이상을 보장해 준다는 약속이 있었으니, 지금 같으면 어림잡아도 70만~80만원을 이들에게 주어야 옳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향군인회측은 이들의 주장을 전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생보회 관계자들은 생계보조금을 받는 1천1백여 명을 대표하는 대표성을 전혀 갖지 못하므로 임의 단체인 이들에게 기금 운영권을 넘겨주는 일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현재 생보회측은 창립 총회 당시 회원 6백98명의 서명을 받아 이를 보관해 놓고 있다. 그러나 향군회측은 이에 대해서도 명단에 사망자까지 포함하는 등 공신력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게다가 이 기금을 관리하기 위한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공익 단체인 향군회가 기금 운영을 맡아 산하 사업체를 통해 기금을 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향군회측은 특별 회계로 조성된 이 기금을 산하 업체에 투자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향군회의 예산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86억원 가운데 일부를 산하 업체에 투자한 것은 사실이나 수익금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향군회에서 이 기금을 운영·관리하던 전 핵심 간부가 이 ‘노병’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언을 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향군회에서 15년간 근무했다는 이 관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향군회 내부에서 생계보조금을 이들에게 다 줄 필요가 있느냐는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생계보조금 규모도 그 때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보조금 운영을 시작할 당시 소령 연금의 60%에 해당하는 3만원을 주던 것이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16% 수준으로 전락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향군회가 중심이 돼 생보회 회원을 상대로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확인서를 받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70, 80대 노인이 대부분인 이들 참전자는 대부분 생계비와 건강 문제 등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 당시 공병단 소속으로 강릉 비행장 건설 공사에 참여했다 57년 소령으로 예편한 김철헌씨(79·종합 8기)는 95년 전세금 5백만원이 모자라 살고 있던 전세집을 내놓았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장남이 7년 전 사고로 죽은 데다 전세방까지 내놓은 김씨 부부는 지금 안양에 있는 막내딸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어쩌다가 사돈 어른들이 찾아오면 골방으로 피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때면 6·25 기념 행사 때마다 맨 앞줄을 차지하는 ‘참전 용사’임이 오히려 부끄럽게 느껴질 뿐이다.

생보회 3대 회장을 맡아 노구를 이끌고 회원 규합 활동에 열심이던 박재곤씨(83·육사 5기·59년 예편)도 지난 19일 고혈압으로 쓰러져 현재 보훈병원 중환자실에 의식 불명인 채로 입원해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생계보조금을 받는 1천1백여 명 중 한 해에 40~50명 정도가 사망한다고 한다.

생보회 이봉삼 부회장(76·종합 1기·64년 예편)은 “15년 동안 싸워 왔지만 정작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향군회측은 보조금 수혜자 명단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94년 재향군인회 제27대 회장으로 취임한 장태완 재향군인회장은 제37차 임시 전국총회 대회사를 통해 “향군회 인원을 감축해 불우 회원의 구호 활동에 힘을 쏟겠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 아울러 장회장은 선거 공약으로 행정의 투명성을 가장 강조했었다.

그러나 노병들은 이제 기대를 걸었던 ‘개혁 회장’에 대한 신뢰마저도 잃었다고 말한다. 헌법 소원 결과가 나오면 이들의 법정 싸움은 어떤 형태로든 일단락될 테지만, 설사 법정에서 뜻을 이루지 못해도 15년을 끌어 온 노병들의 권리 되찾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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