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숨통 죄어온 보안법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5.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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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 국가보안법 해악 규명한 심포지엄 열려
수수께끼 하나. 산신령이 나타나 물었다. “너희 가운데 이것 때문에 감옥에 갔다온 사람이 있느냐?” 몇 사람이 주춤거리며 손을 들었다. 산신령이 다시 물었다. “이것 때문에 친척이나 이웃이 피해를 본 사람은?” 이번에는 좀더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산신령이 물었다. “그렇다면 이것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하지 못했던 사람은?” 수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은 1명도 없었다. ‘이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이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논의하는 자리가 최근 마련됐다. 지난 1일 한국인권단체협의회·한국여성단체연합·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 9개 시민단체는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국가보안법,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가졌다.

삶과 정신 모두 둘로 쪼개

국가보안법을 다룬 심포지엄이나 토론회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논의가 주로 법과 제도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돼 왔다면, 이 날 심포지엄은 문화·사상·언론·복지·노동·여성 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에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꼼꼼하게 실증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는 이 날 기조 발제를 맡은 리영희 교수(한양대)의 말마따나 ‘이 괴이쩍고도 야만적인 법’이 우리의 사회문화적 발전을 어떻게 왜곡시켜 왔는지를 종합적으로 조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우선 논의는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는 법인지를 규명하는 데 맞춰졌다. 리영희 교수는 국가보안법이 진시황의 분서갱유(212), 중세 로마의 이단 심판(1233)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으며, 가까이는 일본의 치안유지법(1928~1945)과 그 뿌리가 맞닿아 있는 악법이라고 지적한 후, 오직 자신과 반대되는 것을 말살하기 위해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 자유를 박탈했다는 데서 이들의 공통점을 찾았다. 리교수는 또한 독일이 2차대전 당시 유태인을 구체적인 오감과 욕망을 지닌 ‘구체적 인간’이 아니라 악덕하고 사악하면서도 부정해야 할 요소를 모조리 갖춘 ‘추상적 인간’으로 취급했던 것처럼, 한국의 국가보안법 또한 ‘빨갱이’ 또는 ‘공산주의자’라는 이름 아래 구체적 욕망을 가진 구체적 인간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제거해야 할 ‘인간이 아닌 존재(Non-person)’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고 질타했다.

뒤이어 주제 발표에 나선 박원순 변호사는 중세 유럽과 초기 미국사를 휩쓸었던 마녀 재판과 한국의 국가보안법 적용 양태가 얼마나 유사한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비교했다. 박변호사는 오늘날 마녀의 존재를 믿을 현대인은 별로 없지만 중세 유럽인만 해도 마녀의 존재뿐 아니라 이들의 악행과 위험성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무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무지와 비이성을 자극하고 조장하며 활용한 집권자들의 추악한 음모와 악의가 배후에 도사리고 있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박변호사에 따르면, 마녀가 실재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는 고문에 의해 강요된 자백 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마녀 재판은 그 규모·잔인성·기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심리적 현상이며, 동시에 모든 사회가 저지를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다’는 하바드 가제트의 지적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박변호사는 서양의 마녀 재판과 한국의 국가보안법 재판의 유사점으로 △잔인한 고문이 따르고 △고문 기술자가 동원되며 △자백이 거의 유일한 범죄 증거이고 △피해자 대부분이 힘없는 계층에서 발생한다는 등 열 가지를 들었다. 이웃의 신고나 고발을 조장함으로써 민중을 분열·이간시키는 수법 또한 그대로이다. 나아가 박변호사는 마녀 재판과 달리 한국의 국가보안법 재판은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라며, 이 야만적인 ‘푸닥거리 주술’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가고 반문했다.

계속해서 논의는 이처럼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국가보안법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규명했다. <시사저널> 김 훈 편집국장은 국가보안법이 우리의 삶과 인간 정신을 분리주의 혹은 단절주의에 입각해 양극으로 나누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국가보안법 체제 속의 인간은 법과 정치 권력으로부터 ‘너는 누구의 편이냐, 너는 어느 쪽이냐’를 끊임없이 질문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현실을 긍정할 수 있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한 그는, 현실에 대한 긍정과 부정은 인간 정신의 양면이며, 이 가운데 어느 한편의 선택만을 강요한다면 문화 발전은 지체되고 인간 정신은 스스로 시들어 말라 죽게 되고 말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무관심과 퇴폐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문화 현상은, 긍정과 부정의 상호 작용을 파괴해 온 국가보안법 체제 반 세기가 맞이한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법 아닌 ‘체제’

오수성 교수(전남대·심리학)는 국가보안법의 바탕을 이루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심리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쳐 왔는지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반공 이데올로기는 한국인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기능을 해준 최고의 국가 이념이었을 뿐 아니라 기존 질서를 의문시하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갈등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을 거치며 적대감·긴장·보복심리 등이 결합해 매우 공격적인 성격을 갖게 된 반공 이데올로기는, 이를 정권 유지의 주된 수단으로 삼은 30년 간의 군부통치기를 거치며 ‘내적 적개심’에서 ‘적색 공포’로 더욱 강화된 양상을 띠게 되었다고 오교수는 분석했다.

이밖에 국가보안법이 노동·여성·사회복지·언론과 남북한 인적 교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부문별 토론도 진행되었다. 허명구씨(<사람과일터> 주간)는 국가보안법에 연루돼 가장 혹독한 고문과 피해를 당한 것이 노동운동가라고 주장하면서, 아직까지도 ‘노동운동=빨갱이운동’이라는 시각 때문에 고통 받는 노동자가 많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국가보안법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권리나 자유 차원에서 보았을 때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진정한 국가보안법 철폐는 노동자의 조직과 결사, 정치적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차원으로까지 연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김연명 교수(상지대·사회복지학)는 극단적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국가보안법이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적 사회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박탈함으로써 ‘노동운동의 활성화→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사회복지 확대’로 이어지는 서구의 사회복지 발전 경로를 전혀 밟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저소득 국가군(1인당 GNP 2백달러 미만)보다도 사회복지비 지출 비율이 낮은 우리의 현실을 신랄히 고발했다.

정일용 기자(연합통신 북한부)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언론이 ‘북한’이라는 취재원에 자유롭게 접근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안기부 등 외부기관의 규제와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것을 꺼리는 언론사 내부의 눈치보기가 맞물려 북한 관련 미확인 보도·오보를 양산하고, 이것이 다시 북한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을 흐리게 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정상적 발전에 질곡이 되어 온 국가보안법이 48년에 제정된 이래 그토록 견고하게, 아니 오히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욱 강화된 모습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손혁재 박사(정치학)는 국가보안법이 국가 안보보다는 ‘정권안보법’으로 기능해 왔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았다.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제거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악용돼 왔다는 것이다. 그 예로 손박사는 반공법(61년 제정, 뒤에 국가보안법에 흡수), 긴급조치 9호(75년), 정치활동정화법(80년) 등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기 위한 초법적 수단이 마련돼 있을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 기소자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현상을 통계 수치로 밝혔다. 초법적 수단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을 경우에는 미묘한 정치적 시기마다 다시 국가보안법 적용이 두드러지게 늘어난다. 국가보안법이 가장 많이 적용된 시기는 84년 학원자율화조처로부터 87년 6월항쟁이 있기까지 3년 간이었다. 선거 시기 또한 국가보안법 적용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손박사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국가보안법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독재를 지켜 왔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국가보안법이 쉽게 폐지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야당 총재 시절 ‘폐지론’을 주장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존속론’으로 돌아섰고, 야당은 ‘제한 개폐론’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포지엄 참석자 또한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대원칙에는 동의하나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명확한 청사진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 토론자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눈길을 끈다. “국가보안법은 법체계나 법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은 ‘법’이 아닌 ‘체제’이기 때문이다. 곧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국가보안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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