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SOFA ‘불평등’ 못을 빼자
  • 김동심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교육위원) ()
  • 승인 200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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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회담 8월 초 다시 열려… ‘전분야 평등’ 실현해야
매향리 폭격장 폐쇄 싸움과 한강의 독극물 방류 사건, 이로 인한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일명 한·미 행정협정) 개정 논란 등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미군이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은 후 10만건 넘게 저질러진 미군 범죄와 그때마다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을 개정하는 문제가 거론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수천번 이상 한·미 행정협정이 불평등하니 개정하자고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미 행정협정은 여전히 개정되지 않고 있다.

항소할수록 형량 줄어

지난 2월19일 이태원에서 외국인 전용 클럽 종업원 김 아무개씨가 목뼈가 부러진 채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범인을 금방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라도 형이 확정되기 전에는 한국측이 신병을 넘겨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범인 매카시 상병의 신병은 미군측이 확보했다. 4월21일에 살인죄로 불구속 기소된 범인에 대한 첫 번째 공판이 열렸지만 범인이 용산 미8군 영내에서 탈주하는 사건이 발생해 공판이 연기되었다. 살인자가 탈출했는데도 한국 경찰은 수사는커녕 미8군 영내에 들어가 볼 수조차 없었다. 미군기지 영내는 미군 관할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당일 저녁 시민의 신고로 범인을 체포했지만 역시 신병을 미군측에 넘겨야만 했다. 그 후 지난 6월16일 범인은 징역 8년을 선고받았고 항소했다. 우리는 살인범 매카시 상병이 3심 재판까지 갈 것이고, 1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8년보다 더 적은 형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미군 범죄자는 2심·3심 재판까지 갈 경우 1심에서 받은 형량보다 중형을 받지 않을 권리가 명시되어 있고, 관례에 따라 형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살해범이 미군이라는 이유로 가벼운 형량과 특혜를 받는다 하더라도, 범인을 체포하고 재판할 수 있다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1997년 4월 이태원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목과 가슴을 아홉 군데나 찔려 살해된 홍익대생 조중필씨의 경우는 더욱 억울하다. 용의자가 단 2명이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인을 가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의자 중 1명은 1998년 8·15 특사 때 풀려났고, 다른 1명은 지난해 9월30일 무죄 확정을 받아 미제 사건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아졌다. 미군범죄수사대가 초동 수사를 할 때 ‘용의자 중 1명이 자기가 조중필씨를 칼로 찔렀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 증인이 있었지만 재판 과정에서는 증인을 출석시키지 못했다. 이유는 재판부의 서류 송달 불능이었다. 미군기지 영내에 증인 출석을 요청하는 서류조차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밖에도 수많은 한국인이 강도·폭행·교통사고, 훈련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소음 피해 등 집계조차 할 수 없는 피해에 시달리며 멍들고 있다. 그리고 해를 입어도 범죄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과 피해자 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상처는 더욱 깊어만 간다.

1999년 한 해 총 8백24건(미군·군속 범죄 7백34건)의 한·미 행정협정 관련 범죄가 발생했지만 재판을 받은 범죄는 20건에 불과했다. 현재 형이 확정되어 한국 수감시설에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가 4명인 것만 보더라도 미군 범죄자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재판권 행사율과 한·미 간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앞에서 든 예처럼 현재의 한·미 행정협정이 재판권 행사에서도,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에게도 미군 당국이 요청하면 ‘호의적 고려’를 하도록 되어 있는 구조적 불평등성에 말미암는다.

한·미 행정협정은 1991년 한 차례 개정했지만 불평등한 독소 조항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로 인해 개정 요구가 계속되자 2차 협상을 시작해 7차 회담까지 진행하다가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8차 회담 날짜도 잡지 못하고 1996년 9월 중단되었다. 다음 달 초 회담을 시작하기는 하지만 현재 미국의 태도를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 한·미 행정협정은 ‘미합중국 군대의 위신에 합당하지 않으면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까지 명시한 불평등한 협정이다. 그런데 미국측이 내놓은 안을 보면 협상 대상을 형사 재판 관할권에만 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병 인도 시점을 앞당기는 대신 인권 침해가 있으면 주한미군 사령관이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한국이 거부할 때는 한·미 행정협정 규정의 효력을 중단시키고, 또 한국측이 재판권을 행사할 중대 범죄를 명문화하고, 경미한 범죄에 대한 재판권을 자동 포기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어 특혜를 누리겠다는 속셈을 드러냈다.

한·미 행정협정을 진정으로 개정한다는 것은 형사관할권뿐만 아니라 민사·노무·환경·관세·검역 등 모든 부분에서 평등한 개정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미 두 나라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협상에 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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