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은 지금도 '겨울 공화국'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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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수색 당했다" 주장도…
대우차 공권력 투입 후 '인권 유린' 고발 줄이어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 근무하다 해고된 김용환씨(32)는 밥맛을 잃었다. 게다가 김씨는 앞도 잘 보지 못한다. '해고통지서'를 받은 충격 때문이 아니다. 지난 2월19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공권력이 투입되기 직전 경찰 쪽에서 날아온 것으로 보이는 돌멩이에 왼쪽 얼굴을 맞은 탓이다. 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후각을 잃었고 왼쪽 눈마저 시력을 상실할 위기에 놓여 있다. 수술비만 3백만원이 넘게 들었다.




부상자는 김씨뿐이 아니다. 이재환씨(32)도 경찰이 던진 돌을 맞고 오른쪽 입술이 찢어져 아직까지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에 따르면,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부상한 노동자와 그 가족은 무려 26명에 이른다. 경찰이 휘두른 곤봉과 방패에 맞은 타박상 환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지난 2월19일 경찰이 투입된 이후 한달 동안 부평은 계엄령이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공권력에 의해 기본적인 인권마저 침해되는 불법적인 연행과 폭행이 그칠 날이 없었다. 지난 3월19일 인권운동사랑방을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경찰청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경찰의 인권 유린 실상을 폭로했다. 인권단체는 같은 날 인천지방 검찰청에 인천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산하 8개 인천지역 경찰서장을 고발했다.


인권단체, 인권 유린 실태 폭로


인권단체가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권 대통령 정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2월20일 해산당한 노동자들이 모여 있던 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천주교회까지 들어가 노동자들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사제복을 입고 있던 예비 신부까지 경찰의 곤봉 세례를 당했다. YS 정권 때의 명동성당 침탈 때도 없었던 사제 폭행이었다.


경찰은 그 뒤에도 50개 중대 5천여명을 투입해 부평지역을 점령했다. 부평역에서부터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이르는 모든 간선 도로와 지하철 역 주변에 전투경찰이 배치되었다. 불심 검문은 말할 것도 없고 대우자동차 작업복을 입은 채 3명만 모여 있어도 해산되거나 연행되었다. 지난 2월22일 부평역 근처 식당에서 노동자 10여명이 밥을 먹다가 연행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단지 집회에 참여할 기미가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에 따르면, 불심 검문에 이은 경찰의 임의 동행은 거부할 수 있다. 그런데도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이 조항은 통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썽이 일어 금지되었던 알몸 수색도 이루어졌다. 이세연씨(43)는 지난 3월7일 출근 투쟁에 나섰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인천시 서부경찰서로 연행된 이씨는 조사를 받은 뒤 입감 과정에서 수모를 겪었다. 자해 우려가 있다며 경찰이 이씨를 알몸 수색한 것이다. 이씨는 팬티마저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야 했다.


임신한 해고자 부인, 연행된 뒤 '유산'




경찰은 지난해 10월 '전교조 교사 알몸 수색'사건을 계기로 살인·강도와 같은 흉악범을 제외하고 알몸 수색을 금지했다. 이무영 경찰청장의 특별 지시였다. 당시 전교조 교사를 알몸 수색했던 경관은 징계를 받았고 전국 지방경찰청은 '국민인권보호 실천다짐대회'까지 가졌다.


인천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알몸 수색 논란이 일자 "자체 감사 결과 알몸 수색은 단 한 건도 없었다"라고 밝혔다. 서부경찰서 관계자도 "금속탐지기 조사만 했을 뿐 알몸 수색을 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씨는 자신을 알몸 수색한 경관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씨뿐 아니라 이종환씨(39)도 인천시 남부경찰서에서 알몸 수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웃옷과 바지를 벗겼지만 팬티는 입혔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금속연맹 법률원의 김기덕 변호사는 "비록 팬티를 벗기지 않았더라도 경찰의 월권 행위에 따른 명백한 인권 침해다"라고 주장했다.


해고 노동자 가족도 인권 침해를 당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이선옥씨(가명·34)는 지난 3월7일 남편을 따라 투쟁에 참가했다가 팔 다리를 붙들린 채 연행되었다. 이씨는 연행되기 직전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여경 5∼6명이 이씨를 붙잡고 시위대에서 끄집어냈다. 이씨는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다 임신 6주째인 3월16일 유산하고 말았다. 남편 차현호씨는 "어디다 하소연 할 데도 없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차씨는 현재 국가를 상대로 피해보상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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