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제국주의''에 맞선 프랑스 농민 영웅
  • 프랑크푸르트/허 광 (rena@sisapress.com)
  • 승인 2000.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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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농민연합 대표 조세 보베 재판 시작… 맥도널드 가게 부수며 ‘햄버거 제국주의’에 맞서
‘로마제국이 유럽을 휩쓸고 있던 시절, 프랑스 북부 갈리아에는 로마 군단이 얼씬도 못하던 깡촌이 하나 있었다. 2백명이 채 못되는 이곳 주민은 마을의 마술사가 제조하는 약술을 마셔 일당백의 강철 군단이 되었고, 그들의 지도자 아스테릭스는 로마 군단에 언제나 한 발짝 앞서가는 병법을 선보였다. 로마 군단의 거듭된 공격은 그의 교활한 전술 때문에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것은 프랑스의 만화가 우데르조의 작품으로, 유럽은 물론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코믹 만화 <아스테릭스>의 줄거리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바로 <아스테릭스>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사건이 일어나 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사건의 무대는 프랑스 남부 소도시 미요. 프랑스의 특산품 ‘푸른 곰팡이 치즈’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전체 주민이 2만여 명밖에 안되는 이곳에 지난 6월30일 무려 5만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들은 이 날 시작되는 재판에서 피고로 나오는 조세 보베를 지원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를 지지하는 가수들은 무료 연주회를 열어 축제 분위기를 돋우었다. 재판정 주변에는 중무장한 전투 경찰이 깔렸고, 세계 각지에서 급파된 보도진이 진을 쳤다. 보베는 재판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판 결과가 어떻든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전세계에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럽 농산물 보복 관세에 분노 폭발

보베가 재판정에 선 것은 지난해 8월 공사 중이던 맥도널드 분점을 때려부수었기 때문이다. 동료 9명과 합세해 저지른 이 사건으로 수갑을 차게 된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전세계의 전파를 탔다. 이들은 기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이 아니다. 맥도널드에 미리 ‘작전’을 통고했고, 마을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파괴 현장’에 초대하기도 했다. 사건 현장에는 지역 농민들이 장터를 세워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사건 이후 보베의 주가는 끝모르게 뛰어올랐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유럽의 미래를 결정하는 50인 중의 한 사람으로 보베를 소개했고, 프랑스 대통령과 총리가 그와 개인 면담을 갖기도 했다. 세계 경제 문제를 다루는 굵직한 국제 회의 때면 언제나 시위 대열에 그의 ‘대역’이 나타나곤 했다.

프랑스 언론이 ‘21세기의 아스테릭스’라고 부르는 그의 공식 직함은 ‘프랑스 소농민 연합’ 대표이다. 45만 회원을 자랑하는 ‘프랑스 농민 연합’의 보수 노선에 반기를 들고 그가 1987년에 결성한 조직이 소농민연합이다. 보베는 그 때까지만 해도 미요의 치즈 생산업자들에게 양젖을 공급하던 목축업자였다. 목축업자로서 비교적 탄탄한 기반을 쌓은 그가 ‘폭력범’으로 재판정에 서게 되기까지에는 어떤 내력이 있을까?

젊은 시절 보베는 그의 일생을 결정한 책 한 권을 만났다. 19세기 미국의 인권운동가 소로우가 쓴 <시민 불복종>이다. 이 책에 감동된 철학도 보베는 소로우의 이념을 생활에서 구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병역을 거부하고 아내와 함께 프랑스 남부의 산골로 들어갔다. 물도 전기도 안 들어오는 그곳에서 보베 부부는 폐허로 남아 있던 돌담집을 ‘점거’하고 농민으로 뿌리를 내렸다. 보베는 이 때 자신의 모습을 ‘신농민’이라고 불렀다. 신농민이란 프랑스의 68 세대 중에서 기성 사회 진입을 거부하고 농토에서 새로운 생활 양식을 찾던 좌파 집단을 말한다. 유기 농업 공동체와 새로운 교육 모델. 그들은 이 두 가지를 얻고자 했다.

반대로 이들이 버리려고 한 것은 당시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던 두 가지 이념, 즉 군국주의와 원자력 에너지였다. 보베는 1970년대 초 프랑스 정부가 그들의 생활 근거지를 군사 기지로 만들려고 시도하자 이를 막는 투쟁을 조직했고, 1995년에는 남태평양에서 프랑스 정부가 벌이는 핵실험에 반대하는 ‘무지개 전사’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보베는 지난 25년간 자신이 선택한 삶의 원칙을 꾸준히 실천에 옮겨온 것이다.

그를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로 만든 맥도널드 사건은 미국과 유럽 간의 농업 분쟁에서 비롯되었다. 분쟁의 발단은 보베가 소농민연합을 조직한 198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 해부터 유럽 공동체는 호르몬이 주입된 미국 육류 반입을 금지했다. 미국은 유럽의 수입 금지 조처를 해제하는 데 실패하자 지난해부터 유럽 농산물에 보복 관세를 붙였다. 그 결과 가장 큰 피해를 본 당사자가 바로 미요의 농민이었다.
전세계 농민 대표 17명, 증인으로 나서

그들은 치즈 가격이 두배나 폭등해 미국 수출 시장을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보베는 프랑스 정부와 유럽연합(EU)에 대책을 요구했지만 그가 받은 회답이라고는 대책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결의를 등에 업고 보복 관세를 매기고 있어 유럽연합도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보베가 맥도널드를 공격 목표로 삼은 것은 이 때였다. 그는 미국 정부가 내놓은 보복 조처의 배후 세력이 다국적 기업농이며, 이들이 장악하고 있는 맥도널드가 ‘햄버거 제국주의’의 첨병이라고 판단했다.

흥미롭게도 맥도널드 사건이 일어나자 프랑스 극우파까지 보베를 지원했다. 반미 감정을 부추겨 프랑스 국수주의를 선동하려면 보베를 지원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보베에게 ‘최고형’을 내려야 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보베는 프랑스 민족주의를 배반하고 국제주의를 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보베는 이번 재판을 다국적 기업농을 심판하는 무대로 만들어 프랑스 농민이 당하는 고통은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서만 해결될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 점은 그의 무죄를 입증하는 증인으로 나선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분명하다. 미국을 비롯해서 인도·한국·필리핀 등 아시아와 온두라스·세네갈 등 중남미·아프리카 그리고 프랑스의 사실상 식민지인 뉴칼레도니아에서 농민 대표 17명이 몰려왔다. 이들은 다국적 기업농이 미주와 유럽의 소농과 제3 세계의 농업 기반을 무너뜨리는 현황을 고발하고,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호르몬을 주입한 대량 가공 식품이 전세계에 불러올 위기를 경고했다.

보베는 인류의 건강, 영양 공급 문제를 이윤 추구를 앞세우는 다국적 기업에 맡겨둘 수 없다고 말한다. 식품 생산 기업은 시민의 생명 보호라는 관점에서 통제되어야 하며, 그 전제 조건은 세계 경제기구를 민주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런 구상을 자세히 정리해 지난 3월 펴낸 책은 프랑스에서만 8만 부가 팔렸고, 영어·독일어·이탈리아어는 물론 터키어 번역본까지 곧 선보일 예정이다. 미요의 재판정 밖에서 벌어진, 시민단체와 정당 들이 조직한 토론에 참가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현대인이 식품 오염 문제를 비롯한 농업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보베가 시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베는 소농민 연합을 국제적인 농민 연대 조직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는 재판이 끝난 7월1일을 기념해 매년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국제 포럼을 미요에서 갖고 ‘글로벌 연대’의 거점을 미요에 세우자고 제안했다.

검찰은 7월1일 보베에게 10개월 징역을 구형했다. 변호인단은 맥도널드 사건이 사회 갈등을 반영하고 있어 법으로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고 말한다. 재판부의 판결 일자는 9월13일이다. 사회운동은 합법성 이전에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보베의 지론에 따르면, 판결 결과는 그에게 커다란 의미가 없다. 보베는 대중의 심리를 파고들면서 사회 전복 행위를 연출하는 비법을 터득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근 정계에 들어오라는 제안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이 되어도 시민을 움직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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