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문제아` 미군을 심판한다
  • 이유진 (녹색연합 국제연대 간사) ()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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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회포럼에서 ‘해외 미군기지 폐해’ 집중 논의 예정
미군이 이라크 치안 유지를 위해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해군 2개 대대(1천6백 명)를 이라크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최근 일본 <요미우리 신분>이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현재 미국의 군사력이 세계 분쟁 지역 곳곳에 배치되어,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절반을 철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해 11월26일 부시 대통령은 21세기 전쟁 개념과 전략 상황에 맞게 해외 주둔 미군을 대대적으로 재배치하겠다는 의지를 동맹국에 밝혔다. 미군 재배치의 골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미국 군사력의 핵심 지역으로 설정하고, 병력과 기지를 동북아시아에서 남아시아로 확대하는 ‘다각화’ 전략이다. 앞으로 10~15년 후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감안해 아시아를 확실하게 잡아두려는 의도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고 있는 미국의 전례 없는 군사력 변동이 마침내 아시아 민중의 표적이 되었다. 현재 아시아 지역 평화 단체와 운동가들은 필리핀 출신 월든 벨로 박사가 이끄는 비정부기구(NGO)인 ‘남반구 초점(Focus on the Global South)’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체 차원의 미군기지 반대 운동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있다. 민중의 단합된 힘이 없으면 아시아 전역을 무대로 추진되고 있는 미국의 군사력 확대를 막아낼 재간이 없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다.

‘아시아의 미군’은 1월16~21일 인도 뭄바이에서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에서 정식으로 ‘고발’된다. 세계사회포럼은 이번 대회의 핵심 의제로 ‘군사주의’와 ‘평화’를 채택하고, 해외 주둔 미군기지의 문제점을 집중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단순히 논의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세계적 규모의 반 미군기지 네트워크를 조직해 세계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에 대해 전세계적 차원의 폐쇄 운동을 결의하는 등 구체적인 행동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경찰인 미군이 아시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미군이 지역 전체에 끼치는 악영향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미군이 증강되면 이같은 안보 불안이 더 가중될 것이 틀림없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미군의 주된 관심 지역으로 설정됨에 따라 단순한 중간 기착지 정도였던 괌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미군의 중추 기지로 떠오르고, 오스트레일리아 방면의 미군기지도 대폭 증강될 예정이다. 미군기지가 없었던 싱가포르·말레이시아에도 미군이 발을 들여놓는다. 이 지역에 병력을 증강해 소규모 미군기지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미군은 또 베트남 영해에 해군 함정을 정박시키는 문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이 벌인 전쟁은 아시아 미군 재배치 또는 다각화를 추진하는 주요 기폭제가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파키스탄과 옛 소련에 속했던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은 미국에 기지를 내놓았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만 바그람·마자리샤리프·칸다하르 등 세 곳을 포함해 중앙아시아 지역에 미군 기지 7개를 신설했다. 미군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도 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에 기지를 신설하고, 이라크에도 기지 4개를 추가했다.

미국은 1991년 6월 클라크 공군 기지와 수빅 만 해군 기지를 필리핀에게 돌려줌으로써 공식으로는 필리핀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1999년 7월 미국 정부는 필리핀 정부와 ‘주둔군 지위 협정’보다 한 단계 낮은 ‘방문군 지위 협정(Visiting Forces Agreement)’을 맺어 사실상 필리핀에 복귀했다.

필리핀의 평화단체 ‘평화 모으기(Gathering for Peace)’를 이끄는 롤랜드 심불란 박사는 “미군이 필리핀에 주둔하는 이유는, 겉으로는 민다나오 섬의 반군을 진압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라고 주장한다. 필리핀 남부 산토스·잠보앙가 등지에 미군기지를 구축해, 필리핀 인근 브루나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석유와 천연 자원, 그리고 경제를 장악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 한다는 것이다.

미군기지가 안보 불안만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기지가 들어서면 전투기 소음과 각종 범죄·환경 사고가,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거의 필연이었다. 미군기지는 또한 주둔국의 주권·인권·자주권을 위협한다. 아시아 지역 미군기지 주변에는 예외 없이 기지촌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수많은 아시아 여성들의 매춘이 이루어지며, 미군 범죄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환경은 또 어떤가. 필리핀의 한 폐쇄된 미군기지 주변에서는 주민 3천여 명이 기지에서 스며든 폐유와 오염된 강물과 지하수를 마시며 살다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 그들은 현재까지 암으로 88명이 숨졌다. 1999년에만 어린이 25명이 중추신경 마비·선천성 심장병·언애 장애 등 희귀병에 걸렸다. 아기가 태어나면 10명 중 절반은 사산이었다. 미군이 버리고 간 독극물 벤젠·톨루엔 탓이다.

해군 기지가 있었던 수빅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백혈병 환자가 3백90명이나 발생했다. 그러나 오염된 미군기지에 대한 원상 복구와 피해자 보상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미군은 한국과 일본에서도 부담스런 존재이다. 한국의 경우는, 주둔 중인 미군의 한강 이남 배치와 용산 기지 이전을 둘러싼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연합토지관리계획으로 미군기지가 74만여 평 확대될 예정인 평택 지역 주민은 불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후덴마의 미군 공군기지를 오키나와 북부 헤코노로 옮겨 대규모 해상 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추진되자 해당 지역 주민들이 기지 축소와 반환을 요구하며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달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는 ‘달나라’마저 미국 군사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지구는 물론 우주 공간도 미국의 전유물은 아니다. 세계 시민이 미국의 군사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하고 공동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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