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누비며 '전방위 외교' 나선 중국 수뇌부
  • 북경·이흥환 특파원 ()
  • 승인 199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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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도자가 동시에 세계 누비는 ‘전방위 외교’ 큰 성과
 
江澤民 국가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은 최근 3년 사이에 세계 곳곳을 메주 밟듯 밟고 다닌다.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영도자가 업무를 분담해 전세계 국가를 공략하는 이른바 ‘전방위 외교’ 전략을 치밀하게 구사하는 것이다.

지난 6월23일부터 2주간 강택민 주석이 유럽 세 나라(스페인·노르웨이·루마니아) 와 중앙아시아 세 나라(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를 순방하고 북경에 돌아온 것도 전방위 외교 전략의 일환이다. 순방한 여섯 나라 가운데 스페인 방문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73년 양국이 수교한 이후 중국의 국가 원수로서는 강주석이 최초로 스페인을 공식 방문(강주석은 상해시장으로 일하던 86년에 스페인을 방문한 적이 있다)했다는 점 외에도, 스페인의 K급 잠수함을 구입함으로써 대만에 무기를 팔고 있는 스페인에 제동을 걸려는 것이 아니냐 하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두 나라도 주변국과 유대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중국으로서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지역이다. 지난 4월26일 중국은 상해에서 북방 국경 접경국인 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 네 나라와 ‘상해협정’을 맺어 국경선 획정 문제를 마무리한 바 있다. 상해협정은 잡음이 일 소지가 있는 북방 주변국과의 국경 문제를 잠재워 놓음으로써 전방위 외교에 전력을 기울일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TV·신문, 연일 외국 수뇌 訪中 보도

강택민 주석은 또 5월8~22일에도 중국 국가 원수로서는 최초로 케냐·에티오피아·이집트·말리·나미비아·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여섯 나라를 다녀왔다. 이로써 중국은 아프리카·유럽·중앙아시아 열여섯 나라에 대한 정상 외교로 96년 상반기 전방위 외교 전략을 마무리한 셈이다.

뿐만이 아니다. 외국 국가 원수를 비롯한 고위층 인사들도 속속 북경으로 날아든다. 중국의 텔레비전 방송이나 신문은 거의 매일 옐친·아라파트·갈리·카스트로 등 외국 인사들의 방문 소식과 더불어 중국 최고위층 지도자들의 외국 인사 접견 소식을 전한다. 특히 아프리카 등 제3 세계 지도자들의 잇단 입국 소식은 자칫 한눈 팔다가는 누가 왔다갔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빈번하다.

제3 세계 국가가 대거 몰려 있는 아프리카는 중국 외교에서 전략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주용기·전기침 등 부총리급 인사들은 매년 초마다 제3 세계에 대한 경제 원조 보따리를 싸들고 아프리카를 돈다. 달러를 앞세운 대만의 외교 침투에 대한 대응 전략임은 물론이다. 대만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는 전세계에 서른한 나라이며, 그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제일 큰 나라로 꼽힌다. 그 남아공이 대만과 외교 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때는 지난 5월 초였다. 중국의 전방위 외교 전략이 먹혀든 셈이다. 이처럼 국제 무대에서 외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대만의 존재야말로 중국 지도층의 발걸음을 바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이다.

대만의 외교 전략을 봉쇄한다는 맞대응 전략 외에 중국 지도자들이 개발도상국이나 제3 세계 국가들을 중점적으로 찾아다니는 또 한 가지 이유로 꼽히는 것은 이른바 ‘표 관리’이다. 유엔인권위원회에 중국의 인권 문제가 상정되는 것을 막아낸 것도 표 관리 외교 전략의 공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방위 외교 전략의 또 한 가지 목표는 미국을 견제하는 것이다. 냉전 이후 미국 일변도로 국제 질서가 재편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 중국 나름의 외교 계산이다. 더구나 미국은 틈날 때마다 중국위협론을 거론하고 있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미·일 신안보선언과 대만 지지 등으로 이른바 중국 봉쇄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010년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하면서 아시아는 물론 국제 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중국 처지에서는 미국의 ‘1인극’이 달가울 리 없다. 지난 4월25일 러시아 옐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북경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직접 겨냥해 “패권주의와 압력 행사의 강권 정치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비난의 화실을 날린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중국이 제3 세계 나라들을 주요 목표로 삼고 전세계를 중국 외교가 공략할 대상으로 확대한 것이 93년 제14차 당대회 이후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강택민 주석의 해외 나들이가 부쩍 늘어난 것도 중국 국내 정세가 비교적 안정권에 접어든 93년 이후부터인데, 이는 국내 정세가 불안하지 않다는 것을 바깥에 과시하는 동시에 개혁·개방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외자 유치 등 비즈니스 외교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의 외국 순방이 잦아진 시절을 89년 천안문 사태 이후로 파악하는 시각도 있다. 천안문 사태로 국제 여론이 악화하자 최고위층의 외국 순방 외교가 가속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권력 3인방, 한 해 동안 2개월 반 외유한 셈

95년 한 해에 중국의 권력 서열 3위 안에 드는 강택민 주석과 이붕 총리, 교석 전인대 상무위원장 3인의 해외 나들이 횟수는 아홉 번이나 되었다. 강택민 주석이 4회에 걸쳐 27일간, 이붕 총리가 3회에 걸쳐 24일간, 교석 위원장이 2회에 걸쳐 27일간 해외 나들이를 했다. 세 사람이 외국에 체류한 기간을 모두 합하면 79일이나 된다. 약 2개월 반 동안 전세계를 누빈 셈이며, 이 중에는 강택민 주석과 교석 위원장의 한국 방문도 포함되어 있다.

최고위층 3인의 작년 한 해 방문국 수도 스물두 나라나 된다. 미국·일본·러시아·독일 등 주요국은 제외하고라도 핀란드·헝가리(강택민)·모로코·멕시코·페루·캐나다·말타·쿠바·백러시아·우크라이나(이붕)·파키스탄·이집트·인도(교석) 등 유럽·남미·아시아가 망라되어 있다.

중국이 구사하는 전방위 외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고위급 인사들의 숫자가 많다는 점을 활용해, 업무를 분담해 동시다발로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에 부총리급 인사 2명 이상이 지구촌의 반대편을 각각 누비고 다닐 수 있고, 동시에 국내에서 얼마든지 외국 국가 원수와 정상회담도 치러낼 수 있는 것이다. 중국 특유의 내부 체제와 정치 구도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역시 다수가 포진해 있는 군부의 고위급 인사들마저 국내외에서 움직이게 되면 기관지인 <인민일보> 1면이 온통 주요 인사들의 동정 소식으로만 꽉 차게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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