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출마 선언하면 인기 떨어질 듯
  • 워싱턴·金在日 특파원 ()
  • 승인 1995.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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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파월 인기, 출마 선언하면 하락할지도…대통령 후보감으로는 최고
지금 분위기로 보자면 콜린 파월이 마치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자서전 <나의 미국 행로>는 출간한 지 1주일 만에 미국 출판 사상 유례가 없는 베스트 셀러로 떠올랐다. 9월16일 버지니아 주 매클린의 한 서점에서 열린 사인회에는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그의 지지자 2천3백여 명이 몰려왔다. 그들은 새로운 슈퍼 스타의 사인을 받기 위해 8백m나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신문·잡지·텔레비전은 앞을 다투어 파월에 관한 특집 기사와 인터뷰를 내보낸다. 마치 언론이 파월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려고 마구 부추기는 듯한 인상이다.

특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파월 열기’가 심상치 않은 현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9월4일자 <뉴스위크>는 파월이 공화당 후보로 출마할 경우 민주당 클린턴을 51 대 44로 누를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그가 무소속으로 나올 경우 클린턴(36%), 봅 돌 상원의원(33%)에 이어 3등(21%)에 머물 것으로 보도했다. 9월12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도 파월이 공화당 후보일 경우 47 대 41로 클린턴보다 승산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또 공화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에서 파월은 돌에 53 대 42로 유리하다고 내다보았다.

9월14일 <타임>과 CNN은 공동 여론조사를 통해 파월이 공화당 후보로 나설 경우 46 대 38로 클린턴을 물리칠 것으로 전망했다. 나아가 파월이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해도 33%의 지지를 얻어 민주당의 클린턴(30%)과 공화당의 돌(24%)을 앞설 것으로 보도했다. 9월21일 <월스트리트 저널>의 여론조사 역시 파월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에 승산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 경우 그는 클린턴과 함께 30%의 지지를 얻어 공동 선두를 기록할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는 파월이 공화당 후보로 출마할 경우 클린턴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 무소속으로 나올 경우 확실하게 실패할 것이라는 처음의 조사 결과는 한달이 채 못돼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파월의 인기가 치솟고 있음을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흑인보다 백인에 더 인기

과연 파월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인가. 그의 인기는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인 힘으로 연결될 것인가. 무엇보다도 미국이란 나라가 흑인을 대통령으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나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합참의장에 오른 그를 둘러싸고 이같은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파월의 최대 강점은 고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파든 진보파든 모두 그에게 호감을 보인다. 특히 흑인보다 백인들로부터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실 파월은 외모만 흑인일 따름이지 백색 문화 속에서 커온 사람이다. 그래서 파월을 싫어하는 일부 흑인들은 그를 겉은 검은 초콜릿으로 덮여 있으나 속은 하얀 크림으로 채워진 오리오 과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는 오랫동안 군 조직 속에서 능력을 검증 받은 인물로서 당리당략에 물들지 않은 참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특정 계층과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한 정치에 식상해 새 바람을 일으켜 줄 새로운 영웅을 찾고 있는 미국 국민의 여망에 그는 일단 부합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정치는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참신한 이미지와 인기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대통령 자리를 노린다고 할 때 그의 앞에는 넘어야 할 험난한 고비가 너무 많다. 그래서 그의 친지와 측근 들은 그의 대통령 출마를 극구 말리는 실정이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대로, 그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려면 우선 공화당 후보 티켓을 따내야 유리하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거물 9명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노리며 출마 선언을 했다. 봅 돌 상원 원내총무, 필 그램 상원의원,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 알렌 스펙터 상원의원, 로버트 도난 하원의원, 라마 알렉산더 전 테네시 주지사, 패트릭 부캐넌 전 백악관 공보비서관, 알랜 케이스 전 국무부 차관보, 그리고 <포브스> 발행인인 말콤 포브스 2세가 그들이다. 이들은 전국을 순회하며 선거 자금을 모으는 등 일찌감치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깅리치 하원의장과 얼마전 의원직 사퇴 선언을 한 빌 브래들리 상원의원도 출사표를 던질 기회를 엿보고 있다. 다만 깅리치 의장은 만약 파월이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경우 자신은 출마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 중에서도 돌의원(캔자스·하원 4선·상원 5선)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두 주자다. 파월은 공화당 후보를 노릴 경우 그와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사실상 공화당의 ‘대표’ 노릇을 하고 있는 돌은 전국적인 지명도·자금·조직과 당내 기반에서 단연 앞서 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야심을 키워 왔다. 그리고 전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선거를 세 번이나 치렀다. 76년 대선에서는 당시 포드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나섰으나 실패했다. 80년과 88년에는 각각 레이건·부시 후보에 맞서 출마했으나 공화당 후보 티켓을 따는 데 실패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균형 감각을 가지고 실용주의 노선을 걷는 보수주의자라는 평을 듣는다. 안정되고 원숙하며 당당한 인상을 풍기는 그는 8월 말 현재 선거자금으로 1천4백만달러를 모금했다. 이는 클린턴 대통령이 모금한 천만 달러를 훨씬 앞서는 것이다. 그는 최근 복지개혁안이 상원을 통과한 것과 관련해 민주당 의원은 물론 공화당내 강경파의 반대에 부딪쳤으나 결국 타협과 조정을 통해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킴으로써 자신의 지도력을 확인시켰다.

돌의원은 9월 중순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앞으로 출범할지 모르는 돌 행정부에 파월 전 의장을 영입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파월을 부통령 후보로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관측통들은 돌이 파월을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삼는 카드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을 것으로 유추한다.
돌 의원의 러닝메이트로 나설 가능성도

돌에게도 약점은 많다. 우선 그는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것을 포함해 대통령 선거전에서 세 번이나 실패했다. 미국인들은 패배자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돌은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이란 인상이 강해 닉슨과 비슷한 부류로 분류된다. 무엇보다도 그는 72세의 고령이다.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대다수는 돌의 나이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득표전에 들어가면 매우 불리한 요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따라서 많은 관측통들은 오히려 파월이 공화당 후보가 될 가능성을 더 높게 본다.

파월이 공화당 후보 티켓을 따낼 경우 본선에서 클린턴을 누를 수 있을까. 이는 미국이 흑인 대통령을 배출할 풍토가 돼 있느냐는 물음이 될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 물음에 대해 ‘아직 이르다’고 대답한다. 이는 파월이 공화당 후보가 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 탄생이란 상상도 못할 정도로 금기시 돼왔고, 그 방향으로 정치·경제·사회 구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존 F. 케네디를 빼고는 전부가 이른바 WASP(백인으로 앵글로색슨계이자 개신교)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금은 인종 문제가 잠복된 상태이지만 선거전이 가열될수록 서서히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작 클린턴 대통령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질문을 받고 “나는 어떤 후보든 인종이나 성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판단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내가 희망하는 것일 뿐 아니라 미국이 희망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파월은 군에서 능력을 검증 받은 인물이라고 하나 정치적으로 검증 받은 적은 없다. 또 조직 기반이 없을 뿐 아니라 정치 색깔이 분명치 않다는 점도 그를 바라보는 눈길을 불안하게 한다. 따라서 92년 대선에 출마했다 낙선한 페로가 선거 6개월 전까지도 37%의 지지율을 확보했던 사실을 예로 들어 파월이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시점부터 그의 인기는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파월은 그의 입지전적인 삶의 역정을 통해 ‘최초’‘획기적인 계기’ 그리고 ‘기적’을 만들어 온 사람이다. 흑인인 그가 만약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이 또한 미국 정치 사상 처음이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잘하는 사람을 더 밀어주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에 힘입어 그는 선전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예단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파월은 대통령 선거 출마 여부를 11월 중에 밝힐 것으로 보인다. 출마하려면 내년 2월 처음 치를 뉴햄프셔 주 예비 선거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월은 이미 어느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되는 데 관심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예비 선거 추이를 보며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면 막판에 부통령 후보직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만약 돌과 파월이 한 팀이 돼 민주당의 클린턴 고어 팀에 맞선다면 내년 선거는 미국 대통령 선거 사상 치열한 각축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파월은 분명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떠올랐다. 그의 치솟는 인기가 거품성인가 아닌가, 혹은 그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관점이 있다. 그것은 왜 오늘날 이 시점에서 군인으로 성공한 한 흑인이 미국 정치의 새로운 영웅으로 각광 받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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