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이후' 시나리오
  •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dwj@e-sisa.co.kr)
  • 승인 2001.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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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미 정권 들어서나 두 나라로 쪼개지나
미국의 반 테러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이 수도 카불에 입성하고, '탈레반 이후' 논쟁이 과열하면서 중대 국면에 돌입했다. 이른바 누가 새 정권 창출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냐를 놓고 불협화음이 나오며 공조 관계가 파괴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러시아와 미국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맞서고, 자국의 이득을 주도면밀하게 계산한 세계 각국은 양쪽으로 갈려 줄서기를 하고 있다.




미·러 정상은 지난 10월22일 중국 상하이 회담에 이어 11월13∼15일 워싱턴과 텍사스 회담에서도 탈레반 이후를 핵심 의제로 논의했다(67쪽 상자 기사 참조). 푸틴과 부시의 시각은 판이하다. 또한 두 사람은 전혀 양보하지 않을 태세다.


아프가니스탄은 풍부한 원유·가스 산지인 카스피 해 주변국이자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자원 운송 통로이다. 본래 미국 고위 관리와 전략가 들은 미국과 러시아가 유대를 강화한다면, 반 테러 전쟁은 카스피 해 에너지 프로젝트 발전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10월 말께 니야조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은 유엔·미국 고위 관리와 가진 비밀 회동에서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하는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건설할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요컨대 각국은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가스와 카자흐스탄의 원유를 세계 시장으로 운송할 통로로서 아프가니스탄을 중시해 왔는데, 그동안 탈레반 정권이 강대국과 주변국 모두에 배타적이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미국의 중앙아시아 전략에 '쐐기'




아프가니스탄 종족 분포



그런데 중국 상하이 정상 회담을 기점으로 워싱턴과 크렘린은 각기 다른 캠프를 차렸다. 믿을 만한 정보통에 따르면, 상하이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탈레반 이후 정권 창출을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크렘린과 타지키스탄은 타슈켄트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한 워싱턴이 모스크바가 지원하는 타지크족·우즈벡족·하자르족으로 구성된 북부동맹을 와해시키려 한다고 의심했다. 또한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공습은 북부동맹의 카불 입성을 지연시키고, 우즈베키스탄 주둔 미군의 보급·공격로를 확보해 탈레반 남방 본거지인 칸다하르를 점령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10월19일 이슬라마바드에서 파키스탄 지도부가 탈레반 남군사령관 자말리트딘 하카니와 개별 협상을 가진 후, 전후 정부에 탈레반을 포함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크렘린을 자극했다. 회담 직후 푸틴 대통령은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로 직행해 부르하누딘 랍바니 아프가니스탄 전 대통령·예모말리 라흐모노프 타지키스탄 대통령과 회합한 뒤, 탈레반 정권은 아프가니스탄 정부 구성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의 전략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내부 파벌을 이용해 탈레반을 분열시키고, 파키스탄이 지지하는 탈레반 온건파와 협력하는 것이다. 즉, 유엔이 주도해 자이르 샤 전 국왕을 중심으로 각 정파가 참여하는 연정을 세우고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우즈베키스탄이 지지하는 무자헤딘 출신인 북부동맹 우즈벡족 라시드 두스툼 사령관이나 파키스탄이 지지하는 탈레반 온건파를 옹립할 생각이다. 또는 둘을 연립 정권 파트너로 내세워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우즈베키스탄을 연결하는 중앙아시아 전략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이런 미국의 전략에 영국·일본·호주·터키가 합세했다. 일본은 전후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과 파이프라인 사업에 관심이 있다.


워싱턴은 우선 파키스탄·우즈베키스탄과 함께 3국 동맹을 형성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파키스탄 정보국(ISI)과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반 테러 공조로 달러를 벌어들이고, 미국과 경제·군사 유대를 강화해 인도를 압박하면서 서남아시아에서 강국이 되려는 꿈을 꾸고 있다. 전쟁을 지원하고 백악관으로부터 80억 달러 투자를 유치한 우즈베키스탄은 미국에 아프가니스탄 접경 하나바드(카르시) 공군기지를 임대했고, 3중 철책을 치고 삼엄한 경비로 최대한 기밀을 유지하고 있다. 서방 군사 소식통들은, 외곽 이중 철책을 우즈베키스탄 군·경이 경비하고, 세 번째 철책 내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부동맹이 마자르 이 샤리프와 수도 카불을 탈환한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 공격과 병참 지원 통로를 확보한 미군은 남쪽 칸다하르에 대한 지상 공격 준비 태세에 돌입했다. 우즈베키스탄은 공조 대가로 경제 발전과 정치 안정을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타지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란을 연결하는 중앙아시아·중동 방공망 전략을 짰다. 이런 이유로 크렘린은 북부동맹에 기대를 걸면서 탈레반 이후 지도자로는 유엔이 인정한 부르하누딘 랍바니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 10월20일 카말 하라지 이란 외무장관은 예모말리 라흐모노프 타지키스탄 대통령과 협상한 뒤, 이란은 새 정부 구성에 탈레반의 참여를 배제한다고 말했다. 이란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해, 탈레반과 대치하고 있는 북부동맹을 아낌없이 지원해 왔다. 러시아·타지키스탄·이란 3국 동맹은 북부동맹을 등에 업고 탈레반을 배제한 탈레반 이후 정권 창출에 공조하고 있다. 모스크바는 탈레반 정권이 국제 테러 조직과 공조해 신용을 상실했다는 것을 반 탈레반 명분으로 내세웠다.


"푸틴, 부시에게 아프가니스탄 분할 제안"




몇몇 국가는 공개적으로 크렘린 편에 줄을 섰다. 지난 10월20일 러시아와 인도는 테러 전쟁에 대한 회의를 갖고 이란의 반 탈레반 노선에 동조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인도는 특히 파키스탄을 의식해 러시아에 동조하고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이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 병사들을 지원해 인도의 잠무와 카슈미르 지역을 병합할까 봐 걱정하고 있다. 또한 카슈미르 분리주의 군사 단체인 '하카트-에-지하드-에-이슬람'이 탈레반 정권과 연대해 아프가니스탄 전선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인도는 주시하고 있다.


인도가 성명을 발표한 다음날 독일도 반 탈레반 연합에 가담했다. 10월21일 독일 외무장관 요시카 피셔는 타지키스탄을 방문하고,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새 정부 구성에 참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상하이 회담 직후, 후진타오 중국 부주석은 크렘린을 방문해 푸틴과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상의했고, 독일도 방문해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회담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견제와 편승을 외교의 기본 노선으로 삼는 중국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탈레반 이후 정권 창출을 둘러싼 미국 중앙정보국과 러시아 연방안전국(FSB)의 정보전도 치열하다.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탈레반 이후 정권 창출에 대해 전권을 부여받은 중앙정보국은 이슬라마바드와 타슈켄트에서 탈레반 와해와 친미 정권 수립 공작을 펴고 있다. 중앙정보국은 아프가니스탄 주민과 군인들을 매수해 스파이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 정보국은 전직 아프가니스탄 육군 대령 압둘 마나프 등을 포함한 아프가니스탄인 16명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연방안전국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러시아 국가안보보좌관 루샤일로와 합참의장 아나톨리 크바쉬닌은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북부동맹의 군사작전을 지도·관장하고, 크렘린과 핫라인을 연결해 푸틴 대통령과 작전 상황을 협의하고 있다. 최근 워싱턴은 국가테러안전위원회(NTSA)를 신설하고 해군 제독 테일러를 위원장으로 선임했고, 크렘린도 외무부 산하에 테러를 전담할 신도전·위협 전담국(DPVNVU)을 신설하고 연방안전국 수석 차관을 지낸 아나톨리 사포노프를 국장으로 임명해 맞섰다.


탈레반 이후에 관해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도 있다. 만일 반 테러 연합이 전후 문제에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은 전후 한반도나 독일처럼 분할될 수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주변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 달 전과 비슷하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아프가니스탄 각파 군벌들은 전쟁이 끝나도 그들이 통제하던 지역을 고수하게 될 것이 뻔하다. 특히 수도 카불을 점령한 북부동맹은 앞으로 임시 정부에서 상당한 권리를 주장하게 될 것이다.


한 고위 관리는 상하이 회담에서 푸틴이 부시에게 아프가니스탄 분할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회담 직후 파키스탄 주재 탈레반 대변인 물라흐 아미르 칸 무타키는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을 분할하기 전에 노동자 월급이나 지급하라"고 러시아를 맹공격했다. 그는 만일 이번에도 러시아가 간섭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은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격분했다.


탈레반 이후 정부는 다수 종족인 푸슈툰족의 이익을 대변할 세력이 맡아야 한다는 일반론에 이견을 제시하는 나라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은 '인종의 숲'이라고 불린다. 최대 인종인 푸슈툰족(38%)을 비롯하여 타지크족(25%) 하자르족(19%) 우즈벡족(6%) 이외에 소수 인종인 아이막족·투르크멘족·벨루지족 등 11개 인종이 살고 있다. 하지만 국제 정치 이권과 국내 종족간 파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친미 정권 들어서면 '정치 불안' 불 보듯


크렘린이 아프가니스탄 분할 시나리오를 거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북부동맹도 탈레반 온건파도 국민 전체를 대변하기 어렵고, 반 테러 전쟁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이권을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북부동맹이 새 정권을 맡는다면, 푸슈툰족의 반발로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긴장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북부동맹은 적대 관계이던 인접국 파키스탄과 갈등을 빚을 것이 불보듯 뻔하다. 반면 파키스탄이 지지하는 탈레반 온건파의 친미 정권이 들어선다면, 북부동맹·러시아·타지키스탄·인도의 불만과 이란의 반발로 정치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이래저래 탈레반 이후 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만일 아프가니스탄이 분할된다면, 각국의 이득과 국내의 복잡한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전망이다. 즉, 푸슈툰 중심의 남부 아프가니스탄과, 북부동맹과 소수 종족이 연합한 북부 아프가니스탄으로 쪼개질 확률이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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