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 만발하는 ‘악의 꽃’
  •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dwj@sisapress.com)
  • 승인 2002.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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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 종주국’ 아프간, 탈레반 붕괴로 양귀비 재배 고삐 풀려…마약 밀반출 다시 늘 듯

미국의 대 테러 전쟁 목표 중 하나는 마약 근절이었다. 전세계에서
마약 문제로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세계 마약 사업의
본거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지금 마약 근절은
미국을 비롯한 대 테러 공조국들의 현안이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아편 천국이다. 전세계 아편의 7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마약상의 가장 큰 고객이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이곳 마약의 70%가 체첸을 통해 미국으로 밀반입되었다. 한마디로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아편 농장인 셈. 게다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아프가니스탄
마약 공급선이 해쉬시라는 신종 마약까지 유통시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유럽과 러시아도 무시 못할 고객이다. 아프가니스탄 마약의 15%는
이란과 터키를 거쳐 발칸 반도·이탈리아를 통해 유럽으로 밀수입되고,
나머지 15%는 중앙아시아 국가를 거쳐 러시아와 발틱 3국으로 흘러들어
간다.


미국은 탈레반 정권과 가까운 우즈베키스탄·이슬람운동(IMU)
등의 테러 조직들이 체첸으로 마약을 밀반출한다고 의심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전, 유럽과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마약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데 진력했다. 미국은 마약 유입 차단과 근절을
위해 지난해 5월까지 아프가니스탄에 4천3백만 달러를 원조했다. 전쟁이
마무리된 현재 이들 공조국들은 마약 원료인 양귀비 재배를 억제·금지하고,
마약 생산 시설을 폐쇄하는 등 근본적인 마약 퇴치·근절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1월 21∼2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재건’ 국제 회의에서도 마약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사업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매년 미국민이
마약 대금으로 지불한 거금을 탈레반이 테러 자금으로 사용해 왔다.
그 돈은 수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더구나 마약을 거래해 조성한
지하 자본이 미국 경제를 좀먹고 있어 마약 근절·퇴치는 시급한
상황이다.


소련 침공 후 아편산업 ‘날개’…마약 팔아 무기 구입


아프가니스탄을 마약 천국으로 만든 주범은 소련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생산량은 미미했다. 그러나 1979년 소련 침공
이후 농촌 경제가 피폐하고 정부의 통제력이 마비되면서 양귀비 재배가
급증했다. 같은 해 들어선 이란의 혁명 정부가 이란 국내의 마약 생산을
전면 금지하자, 아프가니스탄 마약 산업은 상대적으로 더욱 활기를 띠었다.
게다가 1980년대에 소련과 맞선 무자헤딘은 무기 구매를 위해 양귀비
재배를 장려하고 마약 사업에 진력했다. 각 종파·정파·지역
군벌들은 마약 사업에서 생긴 이익금으로 무기를 구입해 세력을 확장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군이 철수한 1989년 세계 마약
거래량의 40%를 생산하는 주요 마약 산업국이 되었다.



탈레반과 북부동맹은 마약 사업 파트너였다. 2001년 유엔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세계 마약 생산량은 매년 증가세를 보여 1999년에는 6천t에
육박했다. 이는 1980년대 초와 비교하면 6배 이상 증가한 양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생산량은 지난 10년간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내전으로 불안해진 정치·경제 상황이 마약 생산을 부추겼던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마약 거래량의 50% 이상을 생산해
세계 1위로 올라섰다. 1996년 아프가니스탄의 실권을 장악한 탈레반
정권은 마약 생산을 금했다. 이슬람 규약에 배치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로써 남부 푸슈툰 지역에서의 양귀비 재배는 다소 감소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아편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았고, 북부동맹이 장악한
북부 지역에서도 아편 생산이 급증해 총량은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1999년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아편 시장의 79%를 점유하는 기록을
세웠다(4천6백t 생산). 여기에 알 카에다의 주요 거점이던 토라보라
지역도 한몫 거들었다. 미국은 테러 용의자 1호인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이 마약 사업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본다. 유엔은 탈레반이
인권을 침해하고 테러 집단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했다. 이후
탈레반의 수반 오마르는 양귀비 재배를 전면 금지하는 법령을 만들게
된다. 유엔이 마약 근절에 노력한 결과 2000년 세계 마약 생산량은 28%
감소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10% 감소했다. 그러나 통제권 밖에 있던
북부동맹 지역의 생산량은 아프가니스탄 총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늘어났다.


북부동맹쪽 아편 생산 시설은 건재


대 테러 전쟁 이후, 미국은 알 카에다와 미국내 범죄 조직이 연계되어
있을 가능성에 주목한 듯하다. 알 카에다와 연결된 체첸이 마약 유통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정보국이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하자,
미국은 양귀비 농장과 마약 생산 시설로 짐작되는 곳에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 지난해 미국 공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융단 폭격할 때 상당수
양귀비 농장과 마약 생산 시설이 파괴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3대 아편
생산지인 남부 푸슈툰·북부 국경지대·토라보라 지역은
모두 공격을 받았다. 특히 알 카에다와 연관된 토라보라 아편 생산 시설은
초토화했다.



그러나 최대 아편 생산지인 북부동맹 지역은 건재하다. 더구나 북부동맹은
과도 정부의 실권을 장악했다. 미국의 고민이 커진 셈이다. 미국은 아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기를 미루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과도 정부 수반 카르자이는
“아프가니스탄 산업의 근간인 농업과 경제 현실을 감안할 때 양귀비
재배를 완전히 근절하기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양귀비 재배는
밀 재배와 비교해 10배 정도 수익성이 있다고 한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져
통제권이 느슨해졌으므로, 전쟁으로 경제적 기반을 완전히 상실한 아프가니스탄
주민이 양귀비 재배에 열을 올릴 것은 뻔한 일이다. 결국 아프가니스탄
마약 근절은 아프가니스탄 경제 회생과 정치적 안정이 전제되지 않는
한 요원하다.


아프가니스탄 카르자이 과도 정부는 마약을 근절하는 대가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대 테러 공조국들로부터 될 수 있으면 경제 원조를
많이 끌어내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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