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황금 바다를 점령하라”
  •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dwj@sisapress.com)
  • 승인 2002.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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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카스피 해에서 대규모 무력 시위…석유 등 ‘무진장 자원’ 확보 노려
8월 초 러시아가 카스피 해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을 단행했다. 이번 군사 작전의 목적은 무엇일까? 러시아는 카스피 해에서 암약하는 테러 집단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이라고 주장했다.


8월1일부터 2주간 벌어진 카스피 해 군사 작전은 군 수뇌부와 연방안전국(FSB)이 주관하고 육·해·공군 화력이 총동원되었다. 카스피 해 함대사령부는 물론, 북 카프카스(코카서스) 사령부·국경수비대·철도군·내무군이 참여했고, 비상대책부와 수송부가 측면 지원했다. 이와 더불어, 독립국가연합(CIS) 소속인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도 비행단과 함정을 동원해 작전에 합류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기자단 브리핑에서 “이번 작전은 테러 집단 소탕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즉 카스피 해에서 불법 무기와 마약을 운반하고, 불법 어로와 해적질을 하며 안전 운항을 위협하는 테러 집단 척결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반 테러 작전에는 송유관을 보호할 목적도 있다. 지난해 6월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텐기즈 유전에서 흑해에 인접한 노보로시스크까지 연결된 송유관을 완공해 가동하고 있다. 그런데 알 카에다와 체첸 반군이 북 카프카스 지역을 통과하는 이 송유관을 폭파하려 한다는 정보가 수 차례 입수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작전은 반 테러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러시아가 카스피 해의 주도권을 장악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카스피 해 장악을 통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카스피 해에서 전쟁의 피 냄새가 난다”


우선 카스피 해의 풍부한 석유·가스 자원과 수자원에 대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이권을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작전 개시 전 블라디미르 쿠로예도프 러시아 해군사령관은 “작전은 카스피 해 인접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이익에 상응한다. 모스크바는 카스피 해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군사 잠재력을 보유하기를 원한다”라고 덧붙였다. 쿠로예도프의 발언은 이번 작전이 카스피 해 이권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카스피 해의 석유 매장량은 1백50억~3백억t에 이른다. 가스 매장량은 6백조㎥ 정도로 막대하다. 카스피 해는 수자원으로도 유명하다. 세계 최대 내해인 카스피 해는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인 캐비어의 유일한 산지이다. 러시아는 10년 뒤에는 캐비어 수출에서 얻는 이득이 카스피 해 석유·가스 사업에서 얻는 이득보다 클 것으로 예상한다.


1991년 옛 소련의 붕괴로 이란과 옛 소련간 경계인 ‘아스타나 가산쿠리 라인’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카스피 해 지위’ 문제가 발생한 이후 이 엄청난 부의 분배 문제를 둘러싸고 이란·아제르바이잔·러시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아 등 카스피 해 인접 5개국은 심각한 의견 대립과 분쟁을 빚어 왔다. 각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최근 몇 년간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왔다.


지난 4월 하순 그동안 의견 대립 벌여온 ‘카스피 해 지위’를 확정짓기 위해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시하바드에서 ‘카스피 해 5국’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각국의 의견 충돌로 회담은 실패했다.


카스피 해의 지위에 대해 러시아는 ‘해수면 공유, 해저 분할’이라는 기본 원칙을 내세웠다. 이 원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가는 없다. 그러나 해저 분할 방식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러시아를 비롯해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은 해안선의 길이에 비례해서 해저를 분할·배분하려고 한다. 반면 이란과 투르크메니아는 각국이 똑같이 20%씩 나누어 갖자는 입장이다.





정상회담 직후 ‘카스피 해에서 피 냄새가 난다’는 말이 나돌았다. 분쟁이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암시한 말이다. 가장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는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인데, 지난해 6월 양국은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 이란은 서방 자본을 끌어들여 분쟁 지역에서 자원 탐사에 박차를 가하는 아제르바이잔에 경고하고, 무력 시위를 해 탐사 활동을 중단시켰다. 투르크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분쟁도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나토의 동진 정책에 쐐기 박기


카스피 해 5국 정상회담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아시하바드에서 카스피 해 함대사령부 거점인 아스트라한으로 직행했다. 경고 메시지를 던지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즉 우월한 군사적 힘을 배경으로 ‘전쟁 불가’를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카스피 해 전쟁 시나리오는 러시아에는 악몽이다. 우선 카스피 해 유전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루코일 등 러시아 굴지의 석유 회사들에 직접적인 피해가 돌아간다. 뿐만 아니라 전쟁은 카스피 해 유전 사업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미국·영국·중국 같은 국가들이 이권 보호를 명분으로 삼아 분쟁에 끼어들 빌미를 제공할 것이고, 이들의 간섭은 카스피 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 것이 뻔하다.


내친 김에 러시아는 카스피 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도권을 쥐겠다는 생각이다. 즉 러시아는 지난 10년간 러시아와 이란을 제외한 3국과 송유관 건설 계약을 맺은 미국을 비롯해서, 영국·중국·터키 등 15개국이 관여하면서 복잡하게 얽힌 카스피 해 이권 문제에서 이들의 불필요한 간섭을 적극 배제하고 주권 당사자들간 분쟁을 조정하면서 자기 나라의 이권을 최대한 챙기겠다는 속셈이다. 이번 군사 작전은 이런 맥락에서 실시되었다. 요컨대 주도권 장악을 위한 무력 시위였던 셈이다.
또 하나의 목적은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해 나토의 동진 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카스피 해 작전에 참여한 서방측 일부 군사 참관인들은 러시아가 무력 시위로 서방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방 언론들도 ‘무력적 위협’을 강조하는 보도를 내보내자 러시아측은 이를 부인하고 해명하는 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나토를 견제하려는 러시아의 의도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러시아는 특히 나토가 동진 정책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그루지야·우즈베키스탄을 연결해 세력 확장을 도모할까 봐 우려해 왔다.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에 군사 기지를 내주면서 급속히 가까워진 이들 3국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러시아는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의 주시해 왔다. 이미 미국은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그루지야에도 군사 기지를 건설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나토 가입을 타진하고 있다.


이런 나토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으려고 러시아는 카스피 해를 장악하려 한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카스피 해 양안(兩岸)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국가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이란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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