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장사에는 불황이 없다
  • 도쿄·최승광 (자유 기고가) (jeffrey@hosanna.net)
  • 승인 2002.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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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국인 유학생 10만명 육박…20년 목표 달성


일본에서 공부하는 해외 유학생이 10만명에 이르렀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11월15일, 지금까지 일본에 공부하러 온 해외 유학생 수가 지난해에 비해 21% 증가한 9만5천5백50명(5월1일 기준)에 달해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보다 1만6천7백38명이 증가한 수치이며, 2000년 이래 2년 연속 20% 이상 가파르게 늘어난 결과이다.


전체적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온 유학생이 92.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미우리신분>은 11월16일자 관련 기사에서, 아시아 지역의 경기 회복에 힘입어 이 지역 출신 사비 유학생이 대폭 증가한 데다, 일본 대학들이 청소년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입학 지원자 수 감소 사태에 직면해 외국인 유학생을 적극 받아들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일본 내 외국인 유학생의 90% 정도가 사비 유학생이고, 일본 최고의 명문인 도쿄 대학 대학원생 1만4천여 명 가운데 외국 유학생이 2천 명에 이른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요미우리 신분>의 분석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해외 유학생 10만명’이라는 기록은, 앞서 언급한 환경 변화 때문에 세워진 것만은 아니다. 일본 정부가 지난 20년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유학생을 적극 유치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1980년대에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이후로 유엔 분담금을 늘리고 정부 개발 원조(ODA)를 확대하는 등 경제적 지위에 걸맞게 국가 위상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해 왔다. 특히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던 아시아 지역의 환심을 사고 또 미국을 넘어서 핵심 교역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는 아시아 지역과의 교류 촉진을 명분으로 내세워 유학생 10만명을 유치하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1983년 발표했다.


장학금 수혜자 늘리고 각종 혜택으로 유인


일본 정부의 이같은 계획은 1995년까지 유학생 수가 5만명에 이르는 등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에 유학생수가 최초로 감소하고, 아시아 금융 위기로 2년 연속 5만명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을 하자, 21세기 초까지 유학생 10만명을 유치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는 듯이 보였다.


위기 의식을 느낀 일본 정부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장학금 수혜자 수를 늘리는 등 다양한 해외 유학생 유인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즉 일본 정부는 1996년 유학생들의 일본 입국 및 체류에 대한 신원보증인 제도를 폐지했고, 1997년에는 사비 유학생들에게 요구해온 채무보증인 제도(국립 대학 및 기숙사에 들어가려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대학측이 체납을 우려해 보증인을 요구하는 것)를 폐지했다.


1998년에는 금융 위기를 맞은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아시아 7개국 출신 유학생 약 6천명에게 한 달에 4만9천 엔(50만원)에서 7만 엔(70만원)에 이르는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듬해에는 외국인 유학생 10만명을 유치하기 위한 특단의 조처로, 일본에 오는 사비 유학생에게 입국한 후 1인당 15만 엔(1백50만원)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일본 유학을 계획하는 외국 학생들이 아예 일본에 건너오지 않고서도 대학 입학을 위한 자격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했다. 이 제도는 현재 8개국 10개 지역(한국은 서울과 부산)에서 실시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단체 그리고 일반 기업들도 일본 정부를 적극 거들었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위한 각종 장학금을 자발적으로 모금해 정부의 노력을 뒷받침해온 것이다.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단체인 일본국제교육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2002년 3월 현재 사비 유학생 중 57.6%가 장학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67개 지자체와 1백67개 민간 재단 및 단체가 여러 형태로 다양한 과정의 해외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일관된 노력과 변화한 환경 덕분에 일본은 비관적으로 보였던 10만 유학생 유치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경제 동물’이라는 일본인들이 언뜻 보아서는 실리가 크게 없어 보이는 유학생 유치 계획을 지난 20년간 꾸준히 추진해온 데에는 일본 특유의 ‘심모’와 ‘원려’가 숨어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목표했던 수치를 달성하게 되었지만, 사실 외국인 학생 일본 유치를 통한 유형 무형의 효과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났다.


지일파 인맥 늘리는 효과도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이 학위 과정을 마치고 자국으로 돌아가 각 분야의 지도적인 인사가 되었을 때, 친일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일본을 알고 이해하는 지일파 인맥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의 장학금 수혜자 가운데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 국가의 공무원과 교육자, 또는 심지어 군인같이 정책 입안이나 집행을 책임지는 실무자급 젊은 리더들이 적지 않다.


국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일본에서 익히고, 본국으로 돌아가 활동하게 되면 주로 ‘일본 기업’과 ‘일본 자금’에 의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일본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그것을 통해 결국 경제적 이익을 선점하는 모습을 특히 일본의 생산 네트워크가 산재한 동남아시아에서는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일본은 1992년 이래 세계 최대 규모인 매년 평균 100억 달러(12조원) 이상을 정부 개발 원조에 투입하고 있는데, 핵심 목표 중 하나가 수혜국의 인적 자원 개발이다. 이를 위해 집행 기관인 국제협력사업단(JICA)이 개발 업무 실무자 중심으로 유학생들을 초청해 교육하는 등 자기네 국익을 위해 철저하고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예를 들어, 국제협력사업단은 유학생 1명을 선발하기 위해, 먼저 대상 국가를 선정하고 해당 국가에서 유학생을 선발한 후에, 일본어 교사를 보내 어학 능력을 집중 교육한다. 동시에 다른 실무자들은 일본 내 대학을 돌아다니며 개발도상국가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장기교육 훈련에 적합한 커리큘럼을 가진 대학을 물색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유학생을 해당 학교로 보낸다.


대상 대학에 대한 조사는 대학의 평판이나 유명도와 관계없이 한결같이 철저하다. 예컨대 2000년 장학금을 마련해 첫 수혜자로 우즈베키스탄 학생 6명을 선발한 일본국제대학(International University of Japan)도 그 중 하나이다. 국제협력사업단 실무진은 사전에 직접 여러 수업을 참관하고 외국인 유학생을 만나보는 외에, 학교 제반 시설을 살펴보는 등 ‘타당성 조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1년에 2천만원이 넘는 학비 전액 면제, 매월 생활비 18만5천 엔(한화 1백90만원) 보조, 노트북과 팩시밀리 지급 등 유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파격적인 지원은 바로 이같은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에 해외 유학생이 많은 이유가 일본 정부의 ‘자가 발전’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개발도상국가들 스스로가 일본 교육의 질적 수준이 다른 선진국 못지 않다고 인정해 학생들을 보내기도 한다. 한 예로 앞서 말한 일본국제대학에는 매년 인도네시아 공무원 10∼20명이 정부로부터 장학금 지원을 받아 유학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브랜드’는 이처럼 일본을 경험하고 공부한 유학생들을 통해 소리 없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수십 년간 일본 정부가 기울인 노력이 이제야말로 실질적인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10년 불황인 일본. 그러나 유학생 유치와 같은 국가 전략적 정책은 불황을 모르고 있다. 자동차·철강·조선·가전·반도체 등 5대 수출품 시장을 쟁탈하려고 세계 곳곳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에 유학생이라는 일본의 ‘인간 자산’은 위협적인 무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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