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희생자 천도 기원1000일 기도 끝낸 도법 스님
  • 안철흥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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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희생자 천도 위한 1000일 기도’ 마친 도법 스님 인터뷰
늦가을에 접어든 지리산.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자리한 실상사 경내는 때아닌 연등 천지였다. 형형색색 연등마다 뚜렷이 찍혀 있는 ‘평화’라는 두 글자는, 이 ‘촌극’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실상사 주지 도법(道法) 스님(54)은 지난 3년간 거의 산중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하루 네 번 보광전 마루에 홀로 무릎 꿇고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했다. 2001년 2월부터 시작한, ‘지리산 좌우 대립 희생자들의 천도를 위한 기도’는 그렇게 1000일 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의 고독한 몸짓은 바깥과 담을 쌓고 면벽하는 고승들의 수행법과는 많이 달랐다. 산문을 나서지는 않았지만, 오는 손님은 막지 않았다. 그 덕에 지난 3년간 실상사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로 북적였고, 온갖 논의가 분출했다. 올해 들어서만 젊은 스님들의 토론회인 선우논강이 두 차례 열렸고, 금강경 동안거 결제·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좌담회·한국종교공동체연대 결성과 각종 강연회가 이곳에서 판을 벌였다. 도법 스님은 이들 행사에 ‘대중’으로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리고 11월15일, 실상사에서는 도법 스님의 회향(廻向)에 맞추어, 범종교계와 평화운동가들이 함께 하는 ‘지리산 평화결사’가 출범한다. 연등을 매단 것도 결사에 쓰일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불교 용어인 회향은 기도 수행을 끝낸다는 의미와 함께, 자기가 이룬 일을 사유(私有)하지 않고 대중에게 되돌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3년 기도를 끝내는 도법 스님을 11월7~8일 실상사로 찾아가 만났다. 스님은 까칠하게 말라 있었다.

1000일 기도를 하게 된 이유가 뭔가?
지리산에 살다 보니 현대사의 상처들이 많이 보였다. 그것들을 어떻게 보듬어 안을까 고심하다가 떠오른 게 1000일 기도였다. 50년 전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생명·평화 운동의 전망을 찾아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지리산은 민족의 갈등과 이념 대립이라는 20세기의 질곡이 한데 모여 있는 땅이다. 지리산 문제를 푸는 것이 한반도 문제를 푸는 것이요, 21세기 대안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 결실로 지리산평화결사가 출범하는 셈인데, 지향하는 게 뭔가?
평화운동가인 박성준 선생(성공회대 교수)이 오셔서 10만 평화운동 결사대를 모으자고 한 적이 있다. 당시는 농반 진반이었는데,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확신 같은 게 생겼다. 우리는 미국 같은 선진 강대국을 따라 가려고만 하는데, 그렇게 하면 영원히 2등밖에 못한다. 미국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뭐냐. 생태주의요, 생명·평화의 논리다. 몽상같이 들리겠지만 그 길로 가야 미국을 건너뛰어 21세기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 수 있다.

스님의 주장은 현실의 반미·통일 운동과 어떻게 다른가?
나는 수행자일 뿐 현실 정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반미 구호만으로는 끝없는 상처와 파괴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통일지상주의도 마찬가지다. 통일 국가였던 고려나 조선에서도 백성들은 늘 고통받지 않았나. 이제는 단선적인 문제 의식을 넘어서야 한다.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귀농학교·대안학교·농촌공동체 운동도 여러 해째 계속하고 있는데.
공동체 운동이 21세기의 대안이라고 보지만, 내가 주도한 것들은 아니다. 나는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밥상에 숟가락 몇 개 더 올려주고 공간이나 제공했을 뿐이다. 귀농운동도 실은 ‘중 노릇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었다. 원래 대승 불교는 승려와 일반 신도가 함께 하는 사부대중 공동체를 꿈꿨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본래의 정신은 퇴색하고 사찰과 주민이 지주와 소작인처럼 되고 말았다. 본래의 불교 모습으로 되돌리려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대안운동으로 확대된 것이다.
부처님은 진리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부처의 가르침은 관념화했고 논쟁만 벌어졌다. 그걸 비판하며 나온 게 대승 불교였고 선(禪)이었으나, 요즘 보면 이 또한 관념화하고 있다. 울타리 쳐놓고 내면만 정진한다고 수행이 되는 게 아니다. 불교를 잘못 이해하는 스님이 너무 많다. 지금이야말로 간화선(看話禪)의 본래 정신을 회복하든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할 때다.

이런 주장이 기사로 나가면 불교계 안에서 비난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욕하면 듣지 뭐. 얼마 전 이제민 신부님이 쓴 자전 에세이(<그분처럼 말하고 싶다>)를 봤는데,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믿는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었다. 엄청난 문제 의식 아닌가. 이런 문제 의식이 한국 불교에도 필요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 깨달음, 수행이 애초에 부처님이 말했던 것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새만금 공사를 둘러싼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북한산·금정산·천성산에 터널을 뚫는 문제를 놓고도 정부와 불교계·환경운동 단체의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 문제 때문에도 시끄럽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쉬운 점이 많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본다. 대통령이 검찰을 예전처럼 장악했으면 측근 비리가 이리 쉽게 드러났을까. 권력자가 권력을 내려놓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은데, 노대통령은 그렇게 했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평가해줘야 한다. 나는 오히려 한국 사회가 노무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8년 전 함께 수행하던 도반들에게 ‘등을 떠밀려’ 실상사 주지로 나선 이후, 도법 스님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여러 대소사에 관여해 왔다. 1998년 조계종 사태 때는 조계종 총무원장 대행을 맡아 원만한 조정 능력을 보여주었고, 사태가 진정된 후 실상사로 돌아가서는 생명·평화 운동가로 거듭났다. 불교계 안팎에는 언젠가는 그가 조계종 총무원장을 맡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불가의 ‘벼슬’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대로 실상사 주지 자리마저 훌훌 털어버릴 작정이다. 그는 최근 평생 도반인 수경(收耕) 스님(54)과 함께 ‘전국을 주유하며 생명·평화나 탁발해 볼까’ 하는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어쩌면 내년쯤에는 초로에 접어든 두 운수납자(雲水衲子)가 허허롭게 길을 걷는 모습을 거리에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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