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그리스 비극 <오레스테스 3부작> 국내 초연
  • 魯順同 기자 ()
  • 승인 1999.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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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연극이 잊고 있는 ‘원초적 연극성’을 탐색하는 색다른 무대가 마련된다. 경기도 남양주에 자리잡은 두물 워크샵에 무대를 마련한 <오레스테스 3부작>(3월11∼14일·독립극장)은 수를 놓듯 품을 들여 고전의 무게와 보는 즐거움을 고루 느끼게 한다.

그리스 비극 가운데 유일하게 3부작 형태로 남아 있는 이 작품은, 트로이를 함락한 아가멤논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아들 오레스테스에 초점을 맞추어 쓴 것이다. 80년 독일에서 작가 페터슈타인이 아이스킬로스의 원작을 현대적인 언어로 각색해 화제를 모았다. 국내에서는 2부를 중심으로 구성한 <오레스테스-귀환>이 공연된 적이 있지만, 전작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발단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의 귀향이다. 10년 만에 귀환한 아가멤논(유태균)은 아내 클리타임메스트라(예수정)에게 죽음을 당하고, 클리타임메스트라는 다시 아들 오레스테스(강신구)의 칼에 죽는다. 복수의 여신들은 클리타임메스트라의 복수를 위해 오레스테스를 쫓다가, 마침내 델피의 신전에서 아테네의 판결을 받게 된다. 아버지의 복수를 한 효자인 동시에 어머니를 죽인 패륜아인 오레스테스에 대한 배심원 의견은 반으로 갈린다. 아테네는 오레스테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고, 그를 단죄하려는 복수의 여신들을 신전에 살도록 명령한다.

이 작품은 두 번이나 전쟁에 참여하고 그로 인한 혼란에 시달렸던 시인(아이스킬로스)의 염원을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무죄라고 판결한 근거는 부권 확립, 즉 질서 회복이다. 하지만 판결보다 더 의미 심장하게 다가오는 대목은, 복수에 실패한 복수의 여신들을 설득하는 아테네의 태도다. 그는 복수의 여신들을 자신의 신전에 살도록 회유한다. 그리고는 인간을 향해 ‘그들을 경배하는 자만이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진정한 지혜란 탐욕과 분노까지 헤아려 품에 안는 데 있음을 설파하는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꼬박 5개월 동안 작업에 매달린 연출자 송선호씨는 “커다란 산과 같은 작품이었다”라고 무력감을 토로한다. “그리스 비극은 도저히 일상으로 떨어뜨릴 수 없는 극도로 고조된 감정이 드러나고, 그에 맞는 율격과 형식이 있다”라고 말하는 그는, 산에 오르듯 찬찬하고 성실한 태도로 무대를 짜 간다. 그만큼 보고 듣는 즐거움이 크다. 코러스는 그리스 비극의 제의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부분인 만큼 특히 품을 들였다. 현대어로 각색되었으면서도 높낮이와 운율을 잘 맞춘 낭송체 대사는, 시가, 나아가 시를 읊는 인간의 목소리가 곧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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