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오브제 작가 안규철씨 전시회 ‘사물들의 사이’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6.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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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용품에 창조적 사유 부여
서랍장이 작품이다. 대각선으로 구획된 서랍장은, 절반은 온전하고 절반은 뒤집혀 있다. 뒤집힌 절반은, 우리가 서랍에서 갖게 마련인 기대를 허물어뜨린다. 사람이 서랍을 만드는 동안, 나무라는 재료 처지에서도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안규철씨(41)의 <서랍>(사진 참조)이다. 오브제의 이같은 변형은 사물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라고 요구한다.

“이제 1주일만 잘 넘기면 될 텐데…”라며 작가는 말문을 열었다. 4년 만에 여는 개인전인 데다, 95년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처음 여는 전시회여서인지 그는 초조해 보였다. 그는 이번 전시(11월27일~12월23일 아트스페이스서울·학고재화랑)의 제목을 ‘사물들의 사이’라고 붙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사람과 사물의 관계가 냉랭해졌다. 사람들이 사물을 소홀히 보아넘기게 되었고, 또 그 사물을 언제라도 쉽게 바꿔치기할 수 있다. 물건의 의미를 되돌아보기 어렵게 된 세상에서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간의 본원적 관계를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생활 용품을 작품에 도입해 ‘오브제 작가’라 불리는 안씨는, 그 익숙한 물건들에 정교하게 계획된 개념을 불어넣는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물건을 선택한 다음 변형과 왜곡을 통해 그 의미들을 뒤틀어놓는 것이다.“사람의 의지와 의도를 담지 않은 사물은 없다. 나는 이런 것에 주목해 그 관계들을 일부러 왜곡하고 조작한다. 일상에서 사물이 갖는 성격을 뒤바꾸어놓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가 발생한다. 이것이 내 작품의 큰 골조이다.”

그가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된 배경은, 미술의 존속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조각가나 화가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이미지를 찾거나 만들어 내는 창조자이다. 그러나 각종 뉴 미디어를 앞세운 전자 매체는 충격적이고 자극적이며 매혹적이기까지 한 엄청난 양의 이미지들을 생산한다.

안씨는 새로운 볼거리가 넘쳐나는 이곳에서 미술이 살아 남을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예술적 전략을 채택한다. 이미지 생산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사물의 상태와 그 의미를 캐묻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미술 전문지 <가나아트>에 실린 작가 노트에서 이렇게 밝혔다. ‘미술의 역할은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보였고 보이고 있는 것들, 그 흘러가 버리고 소비되는 것들에 대한 의미를 되묻는 일, 되묻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은 언어를 통해 설명이 가능한 설계도와, 재료와 부딪치면서 설계도의 지시를 완벽하게 따르지 않게 마련인 제작 과정, 그리고 완성이라는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엄격한 절제이다. 작품 표면에 묻어 있는 작가의 필적이나 체취를 없애고 정확하고 깔끔하게 작품을 만드는 데 전력 투구한다.

관객이여, 보는 대로 믿는가 믿는 대로 보는가

작가가 설계도를 제작하면서부터 숙성시켜온 사유들을 읽어내기 위해 관람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보는 대로 믿는가, 믿는 대로 보는가’. 작품 앞에 선 관람자로 하여금 이런 질문을 하게 하는 과정에서 작품과 관람자와의 창조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눈으로 보는 것만 믿는 습성에 대해 작가는 사물을 비틀고 뒤집어보임으로써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7년 동안 <계간미술> 기자 생활을 한 안씨는, 88년 독일로 건너가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대학 조소과에서 공부했다.‘작품을 움직이게 하지 말고 관람자의 머리를 움직이게 하라’는 독일 스승의 가르침은 그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

이번 전시회에는, 철판을 접어 만든 ‘칼같이 다려진’와이셔츠 컬러 등의 오브제와 대형 설치물 3점 등 모두 20여 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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