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살에 데뷔한 여가수들의 `음악 3색`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4.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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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여가수 신문희·나윤선·손현숙의 색다른 음악
연예계에 입문하는 신인 여가수에게는 데뷔 공식이 있다. ‘쭉쭉 빵빵’한 몸매에 노출이 심한 야한 의상, 형형색색의 화장과 게슴츠레한 눈매. 이것이 침체한 음반 시장에서 여가수로서 살아 남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 조건이다. 목소리가 아니라 몸으로 노래하는 바비 인형이 되어야 살 길이 열린다.

이런 섹시한 여가수들 사이로 맏며느리 같은 여가수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서른다섯 동갑내기인 팝페라(팝+오페라) 가수 신문희, 재즈 가수 나윤선, 포크 가수 손현숙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함부로 몸을 흔들며 방정을 떨거나 값싼 눈웃음을 흘리며 교태를 짓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음악을 속삭일 뿐이다.

이들은 앞서간 자의 발걸음을 뒤쫓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아간다. 데뷔 음반 을 들고 나온 신문희는 팝페라를 개척하고 있다. 이미 국내에 임형주나 마리아 같은 팝페라 가수가 있지만, 정통 성악가 출신이 팝페라 가수로 나서기는 그녀가 처음이다.

2001년 첫 솔로 앨범 을 발표한 데 이어 2집 음반 를 발표한 재즈 가수 나윤선은, 아직 국내에는 낯선 유러피안 재즈를 선보이고 있다. 허스키한 중저음이 아니라 미성의 고음으로 노래하기 때문에 아직 국내 음악팬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로 그들의 귀를 붙든다.
민중 가수 출신으로 ‘제2의 권진원’이라고 불리는 손현숙씨는 민중 가요 모음 격이었던 1집 앨범과 달리 2집 앨범 <그대였군요>를 서정적인 포크 음악으로 꾸미고 인기몰이에 나섰다. 민중 가요 노래패 ‘푸른물결’과 ‘혜화동 푸른섬’에서 활동한 그녀는 민중 가요 록그룹 ‘천지인’의 보컬로 참가해 <청계천 8가>를 불렀다. 노래 시 모임 ‘나팔꽃’과 음악과 문학을 결합한 콘서트 ‘북 앤 송’에서 활동하던 그녀는 깊이 있는 음악 세계를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갖추었지만 이들은 댄스 음악 일변도인 국내에서는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대중의 귀가 열릴 때까지 먼 길을 돌아야 했다. 그러나 그 우회로에서 이들은 차분히 목청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어 돌아왔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수학한 신문희는 차이코프스키가 재학했던 옛 소련(현 우크라이나 공화국) 오데사 국립음악대학 성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금의환향’을 준비했다. 동양인으로는 최초였고, 오데사 국립음악대학 개교 이래 최연소 교수 임용이었다. 신교수는 세계 3대 성악 콩쿠르 중의 하나인 빈센조 벨리니 성악 콩쿠르에서도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임용되어 엘리트 성악인으로서 음악 이력을 쌓았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 뒤늦게 프랑스 파리로 음악 유학을 떠난 나윤선은 1998년 몽마르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2등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재즈 콩쿠르를 휩쓸며 현지에서 신예 재즈 가수로 떠올랐다. 재즈스쿨을 졸업하고 프랑스와 유럽 순회 공연을 통해 지명도를 쌓은 그녀는 파리 최초의 재즈 스쿨인 CIM에서 동양인 최초로 강사에 선임되기도 했다.

손현숙은 국내 민중 가요 시장이 침체하자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 활동을 지속했다. 일본 시민단체들의 ‘우타코에’ 행사 등에 출연하며 그는 우리 민중 가요를 불렀다. 광주민중항쟁이나 6월 항쟁 같은 대규모 집회를 해본 경험이 없는 일본에는 우리의 민중 가요와 같은 노래가 없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가창력으로 민중 가요를 부른 손씨는 일본 시민운동계에 조용히 ‘한류’를 일으켰다.

그러나 해외에서 충분히 음악적 역량을 ‘증명’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국내에 들어와서는 애를 먹어야 했다. 특히 신교수는 정통 클래식이 아니라 팝페라를 한다는 이유로 국내 클래식계로부터 ‘탄핵’ 당했다고 하리만큼 온갖 악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신교수는 성악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는 팝페라 가수인 안드레아 보첼리가 그래미상을 받는 모습을 보고 모두 환호한다며 “좋은 음악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장르의 문제가 아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의 마인드 문제다. 순수하게 내가 좋아서 부르고 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부른다면 순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손현숙씨는 민중 가수라는 꼬리표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사람들이 손씨의 노래가 무거울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기 때문이다. 손씨의 1집은 사회참여적인 노래가 많았지만 2집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먹 쥐고 손 흔들며 부르는 투쟁가가 아니라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부담 없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그녀는 “가만히 있으면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사람들의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 직접 음반과 보도자료를 싸들고 언론사를 찾아다녔다”라고 말했다.

가요 시장이 침체했지만 오직 음악만으로 승부하는 이들 동갑내기 ‘중고 신인’들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보는 이들은 음반 발매와 다양한 형식의 공연으로 음악팬들을 찾고 있다. 오는 4월23, 24일(대학로 컬트홀), 2집 음반 발매 기념 콘서트를 갖는 손씨는 “음악적 다양성을 봉쇄하고 댄스 음악에만 천착한 거대 음반기획사들은 생산성의 한계에 다다랐다. 그들은 큰 무덤을 함께 팠다. 우리에게 가능성이 열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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