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병규 북디자인전>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6.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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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 문화 개혁 이끌어온 ‘산 역사’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책에는 책격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사유를 담은 책이라 하더라도 격을 갖추지 못하면 책으로서 인정 받지 못한다. 내용과 표정이 한몸이 되어야 대접을 받는 이미지 시대인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북디자인전을 여는 정병규씨(50·정병규디자인 대표)는 한국 출판 문화와 시각 문화의 한 축을 이끌어온 디자이너이다. <정병규 북디자인전>(8월1~10일 갤러리지현·02-3444-0521)은, 따라서 한국 북디자인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이다. 한국 북디자인 20년 역사는 정병규씨에 의해 시작되었고, 정씨는 그 이후 출현한 동료·후배들과 더불어 지금도 출판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20년간 디자인한 책은 줄잡아 3천여 종. 전시회에는 그의 기억에 남아 있거나 호평을 받았던 5백여 종을 내놓았다. 이와 더불어 표지 구상 단계인 스케치에서부터 완성품에 이르는 북디자인의 전개 과정을 몇몇 작품을 통해 소개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되는 작품은 ‘북그래픽’이다. 책 표지에서 문자를 모두 빼고 순수 그래픽만을 살리되, 색상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했다. 가로 59.4cm×세로 84.1cm로 크게 확대한 북그래픽은 정씨가 오래 전부터 구상해온 새로운 개념의 작품이다. 그는 책을 근거로 한 조형 세계를 탐구해 보자는 의도에서 60여 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전시회와 북그래픽도 그렇거니와, 정병규씨에게는 ‘한국에서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다닌다. 민음사 이영준 주간은 편집자의 처지에서 그를 한국 출판계의 기린아라고 서슴없이 치켜세운다. 정씨가 걸어온 길이 곧 한국 북디자인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영준 주간의 말을 더 들어보자.
“독자들은 책을 선택할 때 장르, 제목, 저자 그리고 출판사를 본다. 정병규씨는 여기에 디자인을 추가하도록 해놓았다. 책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책에 대한 디자인적 해석을 내린 뒤에야 비로소 일에 착수하는 다자이너를 편집자들이 신뢰하는 것은 당연하다. 책이 몸이라면, 보통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을 옷으로 여긴다. 그러나 정병규씨는 디자인을 ‘사유의 피부’로 생각한다.”

 
적당히 베껴 표지 만들던 출판계에 충격


고교 시절부터 교지 등의 책 만들기와 더불어 살아왔으나, 정병규씨는 민음사에 편집자로 입사한 77년을 북디자이너로서 출발점으로 꼽는다. 그 해 그는 한수산씨의 장편소설 <부초>를 첫 작품으로 내놓았다. 이중한씨(서울신문 논설위원·출판 평론가)는 “책 표지는 대충 출판사 사장들이 직접 하는 것으로, 그래서 이 책 저 책 우리 것이든 외국 것이든 적당히 베끼던 풍토에서 그가 처음으로 출판계를 놀라게 했던 것은 아마도 <부초>였을 것이다. 이때 그는 단 두 자의 문자만으로 시각적 충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기억한다.

‘새롭지 않으면 썩는다.’ 민음사의 박맹호 사장이 출판 선배로서 그에게 준 이 가르침은, <부초>는 물론 그 뒤에도 북디자인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침이 되었다. 70년대 말 황현산(고려대 교수·문학 평론가)·김원우(소설가)·최승자(시인) 씨들과 함께 이룩한 이른바 ‘홍성사 시대’ 때 그가 추구한 새로움은 실험과 파격의 성공으로 나타났다. 4×6판이 책의 크기를 지배하던 시절 홍성사는 신국판을 처음 제작했고, <영국사> <프랑스사>처럼 6백쪽이 넘는 두꺼운 단행본으로 3백쪽이 넘으면 판매에 실패한다는 당시 출판계의 터부를 깨뜨렸다.
“홍성사 시절 인쇄소를 인수해 한국판 플레이아드와 용례 중심의 한글 사전을 출판할 꿈을 꾸었다”라고 그는 말했다. 플레이아드는 ‘프랑스 문학과 동의어’라 일컬어지는 갈리마르 출판사의 대표적인 총서로, 고려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정씨에게는 꿈과 같은 출판이었다.

“북디자이너는 책의 제작 감독”

 
82년 서른여섯 늦은 나이에 그는 프랑스의 출판 전문 학교 에스티엔으로 유학을 떠났다. 정씨는 2년 동안의 유학 생활에서 ‘논리’를 철저하게 배웠다. “어느 디자인에 대해 ‘왜?’라는 질문에 분명히 대답할 수 있어야 디자인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근거 없이 예쁜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학을 통해 깨달았다는 것이다.

△북디자인은 판매를 돕는 도구거나, 책을 꾸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독자가 책의 내용과 성격을 디자인을 통해서도 알아볼 만큼 이미지화해 주어야 한다 △북디자인은 책을 만드는 제작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북디자이너들에게 일반화한 이 철칙들을 정씨는 처음으로 북디자인에 도입했다.

그가 처음 한 일은 또 많다. 84년 그는 출판사에 디자인료를 공식으로 처음 요구했다. 어떤 장르가 한 사회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고료 개념이 성립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표지와 본문 사이에 아무 생각없이 별쇄로 붙이던 일본식 ‘도비라’를 찢어내고 본문과 같은 종이를 속표지로 붙인 디자이너도 정씨이다.

“일본이 한국을 들러리로 세워 일본식 책만들기를 동양식이라고 세계에 자랑하려는 기미를 보였다. 우리의 책 만들기가 일본식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게 부끄러웠다. 우리 책의 전통적인 내부 질서를 도입하자는 차원에서 도비라 없애기 운동을 전도사처럼 벌였다.” 그 덕에 지금은 ‘도비라를 촌스럽게’ 사용하는 단행본은 없다.
 
북디자인을 무시하는 출판인은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획일적이고 개성이 없는 책의 모양과 표정이 독자의 시각 문화 형성에 미치는 악영향은 결정적이다. 그러나 정씨가 보기에, 한국의 출판은 이미지가 모든 것을 삼키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 어리광을 부린다. “책이 신문·잡지에서 얼마나 좋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 독자가 읽지 않는 기사를 매체들은 쓰지 않는다. 출판인들은 독자들의 이같은 욕구와 관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대접을 해야 한다. 영상 시대에 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론은 바로 북디자인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정씨에게 북디자인의 개념은 ‘토털 디자인’이다. 북디자이너는, 앞뒤 표지는 물론 본문 활자의 모양과 크기, 활자와 연계되어 있는 행간이나 여백의 구분들을 포함한 구성 디자인, 용지나 인쇄의 효과를 생각하고 점검하는 제작 감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출판은 내장이야 썩든 말든 피부 화장만 잘하면 된다는 수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이같은 현상은 결국 편집자와 출판사 경영자의 수준이 낮아서 빚어지는 것이다. 기형적 상업주의, 한탕주의가 판을 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지금까지 출판이 누리던 전통적인 지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라고 정씨는 지적했다.

정씨에게 ‘처음’은 또 남아 있다. 북디자인이라는 용어도, 디자이너의 이름을 책에 새기는 일도, 대학 강단에서 북디자인을 강의한 일도,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책값을 뒷표지에 넣은 것도 그가 처음 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북디자인전을 그는 처음으로 열었다.

지난 2월부터 전시회를 준비해 오면서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의 디자인이 소비가 아닌 문화 생산에 관심을 갖는 시기에 마침 내가 있었다. 그 이후 앞만 보고 달려 왔다. 내 나이의 현장 디자이너는 지금도 드물지만 이번 전시회를, 앞으로도 출판 현장에 남아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에너지를 확충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그는 이번 전시회 준비를 하면서 ‘정병규 스타일’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가볍다기보다는 무겁고, 화려하기보다는 단순하고, 정적이기보다는 동적이고, 산술적이기보다는 기하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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