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군대 문화의 현주소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5.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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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고야마씨와 이동훈 교수, 병영 체험의 영향·개선점 각각 연구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교육 기회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 군대는 젊은이들을 맡아 그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해 왔다. 그러나 사회가 다변화하고, 교육 기회가 크게 확대된 지금은 이 말이 뜻하는 바도 크게 달라졌다.

한국의 성인 남성은 주민등록증에 ‘병역필’ 혹은 ‘면제’라는 사실이 기재되어야 직장을 얻을 수 있다. 병역필 여부가 해외 여행이나 유학에서도 제일의 ‘조건’이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대 문제를 ‘해결’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성인으로 대접받는다.

한국인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직접이든 간접이든 군대와 관련된 경험을 하게 되어 있다. 군대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이 공유하는 가장 보편적인 경험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군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편적인 정서를 이해하는 것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권위적인 군사 통치가 30년 넘게 지속되면서 일부 정치 군인들이 한국 사회에 뿌려놓은 ‘군사 문화’를 비판하는 논의는 그동안 수없이 있어 왔다. 그러나 ‘청산해야 할 군사 문화’와는 별도로 국민 개병제를 통해 누구나 경험하고 영향 받지 않을 수 없는 군대 문화에 대해서는 논의나 탐색이 그리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국민 모두가 너무나 익숙하고, 또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까닭에, 사석에서 ‘고생담’이나 ‘무용담’의 대상은 되었을망정 학문적으로 접근할 대상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정신적·육체적 활동이 가장 왕성한 20대 초반에 경험하는 군대 생활은 개인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엄격한 규율과 상명하복의 질서를 수용해야만 하는 통제된 공간에서 익히거나 내면화한 그 특수한 경험들은 제대한 후 사회 생활을 하는 데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최근 발표된 논문 두 편은 이같은 물음과, 거기서 밝혀지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 출발점을 두고 있다. 올 여름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된 ‘군복무 경험이 한국 남성의 의식에 미친 영향-대졸 이상 육군 전역자를 중심으로’는 대기업의 20대 후반 사원들을 대상으로 군대 경험이 제대 후 사회 생활을 하는 데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군복무 경험이…’ 논문을 쓴 이는 일본인 고야마 이쿠미씨(27)이다. 이 논문이 갖는 의미는, 그가 한국 군대와 어떤 관련도 없는 외국인으로서 객관적 처지에서 군 복무 경험의 영향들을 조사했고, 장교·현역 사병·카투사·단기 사병 등 복무 형태가 지닌 특성을 세분해 처음 분석했다는 점이다.

“요령주의 등 역기능도 크다”

이 논문이 4~5년 전에 경험한 병영 생활의 긍정적·부정적 영향들을 검토하고 있다면, 이동훈 교수(육군사관학교·정치사회학)가 <한국사회학 제29집>에 발표한 ‘한국 군대 문화 연구’는 군 안팎의 변화에 따라 군대 문화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백23명에게 면접 조사를, 2백18명에게 설문 조사를 한 고야마씨의 ‘군복무 경험이…’는, 군대 경험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20대 전역자, 그 중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지 3년 미만인 대기업 사원들을 분석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 남자들은 군대 생활을 통해 ‘조직의 생리’를 터득한다. 응답자들은 ‘군대 경험이 제대 후 조직 생활에 도움을 주었는가’라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15.7%), ‘그렇다’(52.3%) ‘보통이다’(18.5%), ‘아니다’(9.7%), ‘전혀 아니다’(3.7%)라고 답했다.

군대에서 얻은 긍정적인 경험은 ‘협동심’ ‘자신감’ ‘의리(원만한 인간 관계)’ ‘추진력’ 순으로 나타났다. 작전 수행에서부터 내무 생활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조직·단체 단위로 이루어지는 군의 특수성은 ‘협동심’을 장병들에게 가장 큰 덕목으로 심어놓았다.

그 다음은 자신감이다. 야간 행군 등 고된 훈련을 하면서 체력과 인내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 자기를 확인한 것이 제대 후 사회 생활에 큰 자신감을 주었다는 응답자도 많았으나, 그 자신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엷어진다고 이 논문은 분석했다.

군 복무를 통해 배운 것으로 ‘의리(원만한 인간 관계)’와 ‘추진력’을 꼽은 응답자도 많았다. 그러나 ‘밀어붙이기 식의 작업 경험은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그러나 ‘안되면 되게 하라’ ‘까라면 까라’는 식의 억지 명령에 따라 작업이 진행됨으로써 눈에 보이는 부분만 잘 하는, 적당주의 경향에 빠지기 쉬운 역기능도 있다’고 이 논문은 진단했다.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을 통해 ‘재사회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정적 측면도 상대적으로 크다고 이 논문은 지적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것은 ‘무사 안일주의’와 ‘요령주의’이다. ‘자발적으로 일을 하기보다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더 익숙해졌다’ ‘독창과 개성이 요구되는 이 시대에 군 생활에 길들여지지 않았더라면 창조적인 일을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는 응답들이 나온 것이다.
그 다음의 악영향으로 지적된 것은 ‘권위주의’이다. 상급자 앞에서는 아부와 굴종, 힘없는 사람 앞에서는 강압적인 태도를 갖는 권위주의적 습관들이 제대 후 사회 생활을 할 때에도 알게 모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기능들은 창의성·자발성·진보적인 시도 등을 막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 논문은 밝히고 있다.

군 복무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장교-현역 사병-카투사-단기 사병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장교들은 다른 집단에 비해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군 복무를 선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부심과 아울러, 자기가 수행한 역할을 정당화하고 싶은 심리도 작용해 긍정적 평가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고야마씨는 말했다.

반면 ‘현역 사병이 다른 어느 집단보다 피해의식과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고 고야마씨는 밝히고 있다. 군대에 강제로 끌려갔다는 생각이 사병 출신 전역자들의 의식에 깔려 있으며, 끊임없이 문제가 되어 온 병무 부조리가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지적 호기심이나 체력이 가장 왕성할 때 입대한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자 개인 발전에도 손해라는 의견이 거의 대부분 응답자들로부터 나왔다’면서 의식 구조 다원화·생활수준 향상 등으로 인해 전환기에 서 있는 병역 제도의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해 나가느냐 하는 점이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고 결론 맺고 있다.

이동훈 교수의 ‘한국 군대문화 연구’는 ‘군 안팎의 변화에 따라 청년 신세대를 수용하는 군대 문화를 어떻게 만들고 실천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교수는, 민주화·산업화의 영향을 받은 신세대의 성향과 최근 사회 풍조의 변화에 따라 군대 문화도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본다.

그가 94년 5~8월 대대장 및 연대장 경험을 가진 육군 1백14명, 해군(해병) 52명, 공군 43명(계급별로는 중령 1백9명, 대령 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절대 복종을 강요하던 지휘 통솔 유형과는 반대로 ‘군대 가정화 분위기 조성’이라는 유연한 지휘 방식으로 중견 지휘관들의 의식이 변해 가고 있다. 또 84.2%에 이르는 응답자들은 병사들에게 엄격한 훈련과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나, 군대에서 생명처럼 여기는 명령 복종의 절대성에 대한 인식에는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어떤 경우라도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절반 정도에 그쳤고, 조사 대상자의 23.4%라는 적지 않은 비율이 거기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신세대 성향에 맞춰 군대 문화도 변해야”

‘상관과 의견이 다르더라도 일단 상관의 의도대로 실시하고 문제점은 업무를 마친 후 이야기하는 것이 지휘 계통 확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67.9%나 있다는 사실은 상명하복에 대한 합리적 방법을 모색하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고 이교수는 분석했다.

이교수는 조사에 응한 중견 지휘관들이 군대 문화 발전을 위해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과제로 ‘권위주의 및 형식주의 배격’을 꼽았다면서, 응답자들의 대답을 중심으로 바람직한 군대 문화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군대 고유의 전통과 민주적 정신이 융합되고, 군 조직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특유의 군대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세대들의 성향과, 책임의식·집단성·위계질서·상명하복 등을 필수 규범으로 삼는 군의 성향이 서로 부딪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군 간부 교육의 질적 향상과 교육 내용의 다양화이다. 지휘관이 자주 교체됨에 따라 부대의 전통과 문화가 급변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우선 우수한 간부들이 계속 충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한 예로 사관학교 출신들을 재교육하여 그 학교 교수로 충원하는 것은 편향된 가치관과 협소한 시각을 벗어나기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군대 경력의 효율적인 관리와 사회와의 연계체제 확립’ 등에 이어 이교수는 군대 문화를 심층 연구·분석하고, 평가·발전시킬 수 있는 전담 부서를 설치·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최근 사관학교에 여성 입학을 허용한다는 방침이 발표되고, 신입생 모집을 위한 사관학교 CF가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군대 문화에 대한 논의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지만, 산업화의 열매를 먹고 자라난 신세대들로 채워진 병영은 이미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고야마 이쿠미씨가 논문에서 밝힌 것처럼 20대 초반의 군 복무 경험은 제대 후에도 한국 남성들의 의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민간 학자나 전문가를 영입해 군대 문화를 심층 분석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전담 부서를 설치하자는 이교수의 제안은 그래서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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