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배> 윤후명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5.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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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이상문학상 수상 <하얀 배> 쓴 소설가 윤후명
문학은 문학이다. 문학은 언어이다. 문학은 일인칭이다. 그리하여 문학은 일인칭의 언어이다. 최근 단편 <하얀배>로 ’95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윤후명씨의 수상 소감을 압축하면 위와 같다. “나의 문학은 바깥으로 나아가 외치는 문학이 아니라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 물음을 던지는 문학”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 일인칭 질문의 한 절정이 <하얀 배>(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수록. 문학사상사)였다. 사이프러스라는 침엽수와 류다라는 중앙아시아 동포의 ‘안녕하십니까’라는 언어에 의지해 소설은 카자흐스탄--알마아타, 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 키르기스탄--비슈켁, 타지키스탄--듀샨베를 찾아간다. 이 지명에 낯선 만큼, 우리는 우리 근대사의 비극에 낯선 것이라고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하얀 배>는 역사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 개인의 내면과 언어의 뿌리를 천착한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떻느니 저떻느니 하는 투의, 이른바 큰 이야기는 내 몫이 아니었다’고 소설의 화자 ‘나’는 밝히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중앙아시아는 먼저 단절감과 고립감으로 다가온다. 한국어를 쓰면 호텔값을 비싸게 치러야 한다며 ‘나’의 입을 틀어막는 현지 동포의 충고 앞에서 모국어에 대한 ‘나’의 감수성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나’의 취재 여행은, 류다라는 한 동포 여인을 찾아가는 순례로 바뀌는데, 류다는 서울에 있는 ‘나’에게 <말을 배우는 아이>라는 수필을 보내온 여인이었다. 류다가 쓴 글은 들판에 나가 ‘안녕하십니까! 이 말은 우리 민족 말입니다’라고 외치며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해 나가는 한 동포 소년에 관한 것이었다.

모국과 중앙아시아는 일본어와 러시아어라는 ‘외국어’의 강제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국은 모국어를 되찾았지만, 모국어를 지키면서 러시아어를 함께 사용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지금 네 개의 나라로 분리되어 자국 민족어 사용을 공식화하는 정책 앞에서 새로운 고통을 받고 있다. 동포들은 현지 ‘민족어’에 등한했던 것이다. 민족 분규는 본질적으로 언어 갈등이었다. 타의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들어갔던 고려인들은 다시 살 곳을 찾아 나서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다시 유민이 되어야 하는 절망적 상황에서 류다라는 젊은 동포 여인은 개양귀비꽃이 만발한 중앙아시아 들판에서 ‘안녕하십니까’를 외치는 것이었다. 류다가 외치는 ‘안녕하십니까’는 결국 작가가 자기 자신과 나아가 우리 민족 전체에게 하는 진지한 인사말이었다. 무엇이 안녕하고, 무엇이 또 안녕하지 않은 것인가, 존재의, 민족의 안녕은 어디에서 말미암은 것인가라고 캐묻는 것이다. “떨어져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것이 나의 오래된 방법론이다. 아득한 곳에 가서 우리 정신의 핵심인 말과 그 안에 담긴 얼과 부딪쳐 본 것이다”라고 윤씨는 말했다.

‘협궤 열차’를 타고 허무주의의 한 극지까지 다녀온 윤후명씨는 그 시절을 ‘자멸파 (自滅派)’의 세월이라고 말한다. 그 자멸파의 땅이었던 서해안을 떠나 이제 그는 언어 속으로 포복해 나아가고 있다. “자기 동질성이란 언어의 동질성이다. 자기의 본질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윤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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