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 검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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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9.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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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원이 검거되고 나자 반응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각종 뉴스를 비롯해 사회의 공직 담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이 그가 검거된 것을 아쉬워한다. 우리가 이 대목에서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그의 범죄에 대해 찬성하지는 않더라도 그가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대중 심리이다.

일의 외관만 따지면야 신창원은 흉악범이다. 그런데 그 흉악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도리어 어떤 동일시를 느낀다는 것은 꽤나 복잡한 심리 구조의 드러남이며, 그것은 동시에 사회 문제의 명징한 지표이자 징후이기도 하다. 그 복잡한 심리 구조의 일단을 우리는 사회에 대한 깊은 불만과 환멸의 한 양상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 불만과 환멸은 한편으로는 원한과 풍자의 대상, 다른 한편으로는 동일시의 대상을 찾게 한다. 후자의 허물은 전자에 대한 불만의 강도에 의해 묽어지는 것이 상례이다. 그리고 후자는 낭만화하는 속성을 지닌다.

사람들 기억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70년 초 ‘카빈’ 소총 무장강도 문도석과 이종대, 80년대 초 조세형·지강헌 그리고 90년대 신창원의 공통점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강력범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로맨티시즘의 후광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 후광은 그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대중이 얹어 준 것이다. 이후 <지구인>이라는 제목의 최인호 소설과, 이장호 영화로도 그 사연이 형상화된 문도석과 이종대의 심리와 행각은 당시 이렇게 표현되었다. ‘지구여 멈춰라, 내리고 싶다.’ 그들이 내리고 싶은 곳은 바로 우리 사회였다. 그런 생각은 그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로맨티시즘의 후광을 수여했던 당시 대중 역시 그러했다. 자신들의 사회는 내버리고 싶은 환멸스러운 곳이었다. 문도석이 그런 욕망을 대리해 준 것이다.

한국의 20세기 어록 ‘베스트 10’에 필히 남아야 할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우리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 다시 말해 급소를 바로 찍어 누르는 한마디였다. 그의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의 본질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 말은 거대한 공명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그는 당시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 바꿔 말해 대중의 욕망을 대신 시현해 준 것이었다. 문도석·이종대와 지강헌에게 수여한 로맨티시즘의 후광은 대중이 자신들의 욕망을 대리 체험케 해준 그들에게 준 상징적 사면이었다.

신창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신창원이 검거된 뒤 그의 소지품이 흥미로웠다. 인상적인 것은 일기장에 털어놓은 그의 소회, 그리고 <창작과 비평>이라는 책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 잡지 <창작과 비평>을 그가 어떻게 알았으며 또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 책을 소지했다는 것은 대단히 암시적이다. 그 책이 적어도 우리 사회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조리 있게 재현해 내는 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의 일기에는, 어떤 신문은 엉뚱한 소리라고 치부했지만, 누가 듣더라도 공감할 만한 대목이 기록되어 있었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김현철에 대한, 권력자들에 대한 문책과 비난이 그런 것이다. 그런 말이 검거 이후 사회적 동정심을 얻기 위한 영리한 사전 포석이라 추측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거대한 공감이다. 그 공감 과정에서 사람들은 흉악범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나팔수 역할을 한 신창원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 대한 낭만화의 요체이다.

영화나 소설을 볼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른바 시점(focalization)이다. 가령 교도소 관련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죄수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죄수의 눈으로 교도소 관리나 사회를 바라본다. 그때 그 관리나 사회는 천하의 악당이 된다. 반대로 교도관이 주인공이 된 영화를 보면 죄수들은 미련하고 흉폭한 인물로 비친다. 시점에 따라 영화나 소설의 메시지가 가늠되기도 하는 셈이다. 문도석·지강헌·신창원 사건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의 시점을 선택했는가. 신창원? 지강헌? 아니면 경찰로 대변되는 권력? 대중이 누구의 시점으로 이번 일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 여부를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말이 나온 김에 ARS인지 뭔지 여론조사를 하기 쉬운 방법도 있는 것 같은데, <시사저널>이 그런 방법으로 우리 사회의 건강 수준을 한번 점검해 보는 것이 어떨는지. 나는 어느 쪽이었냐고?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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