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개혁 안하면 또 터진다
  • 朴相基 ()
  • 승인 1999.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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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들 스스로 사법 정의와 상충하는 전관 예우 같은 관행과,구태의연한 법조 제도를 뜯어 고쳐야 한다. 법조 환경을 정화하는 데 게으르면, 또 언제 어디에서 법조 비리가 터져나올지 모른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오고야 말 일은 반드시 오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나사가 풀어진 수레 바퀴는 삐걱거리다가 굴대에서 빠지기 마련이고, 바퀴가 빠지면 수레가 뒤집히는 대형 사고는 필연이다.

대전에서 터진 변호사 수임 비리 사건은 한국 법조계의 뿌리를 흔들 만큼 큰 사고임이 분명하다. 변호사 한 사람이 연간 3백여 건의 사건을 수임했는데, 그 대부분이 검사·판사·검찰 직원·경찰 등이 청탁을 매개로 알선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사건 수임을 둘러싼 법조 비리가 구조화해 있음이 참담하게 드러났다.

노출 경위를 보면 더욱 부끄럽다. 법조계 내부의 자체 감사나 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건 브로커인 변호사 사무장의 협박 문건이 단서가 되었다. 변호사와 전직 사무장이 퇴직금 몇 천만원을 더 내놓으라거니 못 내놓겠다거니 다투는 과정에서 소동이 일어나고, 문건이 유출된 것이다. 법조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 폭로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고발자에게서는 양심의 고뇌를 찾아볼 수 없다.

법조계의 현실을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건을 두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이미 1년 전에 법조 비리의 심각성을 알리는 사건이 의정부에서 터져 나왔다. 대전발 비리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비록 규모는 대전에 비해 작았지만, 사건 브로커와 변호사의 먹이 사슬, 판검사에 대한 변호사의 향응과 금품 제공 의혹 등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비리의 양태가 속속 노출되었다.

그러나 의정부 비리 사건은 그야말로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일부 법조인의 문제’로 처리되었다. 법조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전관 예우나 사건 브로커를 척결하겠다는 약속도 흐지부지 되어 버렸고, 형사 사건 과다 수임 변호사를 적절히 제어하는 움직임도 그러했다. 법원·검찰·변호사를 일컫는 법조 3륜(三輪)의 수레바퀴가 국민으로부터 얼마만큼 비난과 불신을 받고 있는가를 자성하는 자기 혁신이 턱없이 부족했다.

법조계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는지 모른다. 법원과 검찰은 윤리 강령을 제정했으며, 변협은 자체 징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말이다. 그래서 요즘 판검사들은 담당 변호사를 거의 접촉하지 않으며, 사건 브로커들의 활동도 크게 위축되었다는 주장을 펼지 모른다.
법조계는 옹고집 집단…기득권 유지에 집착

그러나 대전 사건은, 그 정도 노력으로는 청정한 법조 환경을 조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또다시 근본적인 사법 개혁의 고삐를 늦출 경우 의정부·대전에 이어 어느 지역에서 법조 부패의 폭발음이 들려올지 모른다.

일반 국민의 눈에는 사법 시험 합격자를 구성 인자로 한 법조계가, 특유의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쳐 외부에서 가해지는 개혁 요구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옹고집 집단’으로 비치고 있다. 현재와 같은 판검사 임용 제도, 법학 교육 제도, 변호사 제도 등이 한국의 사법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가를 생각하고,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이를 고치려는 노력이 태부족하다는 인식이다.

갓 옷 벗고 나와 변호사로 개업한 판검사에게 일정 기간 사건 수임과 판결에 혜택을 주는 전관 예우만 해도 그렇다. 그러한 관행이 사법 정의와 상충하고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사회 병리를 낳는 부정적인 요소가 있으면 마땅히 이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 법조계 내부에서 묵계된 특혜를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답습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기적인 태도이다.

단일 연수원이 아니라 많은 로스쿨(사법대학원) 제도를 도입해, 법조인이 서로 경쟁하고 감시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개혁안을 무산시킨 이유도 석연치 않다. 또 이미 법조 삼륜이 합의한 사법 시험 합격자 증원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등 우리의 법조계는 지나치게 기득권 유지에 집착한다는 것이 일반의 시각이다. 법조인 스스로 구태의연한 법조 제도를 뜯어 고치고 법조 환경을 정화하는 데 게으르면, 또 언제 어디서건 의정부·대전의 법조 비리와 유사한 사건이 잉태될 것이다.

<시사저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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