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은 자유무역 질서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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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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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가 7년여 협상 끝에 어렵게 만들어낸 다자간 자유 무역 질서가클린턴의 위험한 통상 전략 때문에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지난 5월16일 일본산 고급 수입 자동차에 대해 보복 관세를 백%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동차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18개월간 벌인 일본과의 협상이 결렬된 후, 일본에 대해 미국 정부가 취한 첫 무역 보복 조처이다. 미국에 수입되는 자동차에 대해 부과하는 현행 관세율은 약 2.5%에 불과하다. 만약 예정대로 6월 말 관세율을 백%로 올린다면 일본산 자동차의 미국내 소비자 가격은 2배 이상 오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연간 60억달러어치에 달하는 20만대 물량의 일본산 고급 승용차는 사실상 미국내 수입이 전면 금지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경제 규모나 교역 규모에서 세계 1,2위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지난해 양국의 교역 총액만도 세계 교역 총액의 25%를 차지했다. 만에 하나 양국의 자동차 분쟁이 전면적인 통상 전쟁으로 확대된다면 4년 만에 회복기를 맞이한 세계 경제는 또다시 불황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의 통상 분쟁이 미국의 보복 조처가 시행되기 이전에 양국간 협상을 통해 무난히 해결되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두 경제 대국의 비이성적 싸움이 세계 경제를 볼모로 하는 세계적 통상 전쟁으로 확대되는 불행한 사태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이번 사태에서 자유 무역 원칙보다 정권의 단기적 이익을 앞세우는 클린턴 행정부의 근시안적이고 원칙 없는 통상 정책을 엄중히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통상 외교에서 눈에 보이는 전과를 올리는 것이 재선이 불확실한 클린턴에게 얼마나 절실한 정치적 목표인가를 우리도 모르는 바 아니다. 자유 무역의 기치 아래 추진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멕시코 불법 노동자 유입만 늘게 했다는 비난이 그에게 쏟아지고 있음도 잘 안다. 특히 미국내 보수주의의 물결이 이제는 미국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자유무역 정책을 더 이상 추구하기 어렵게 하고 있음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클린턴이 당면한 이런 모든 미국내 정치 상황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클린턴 행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강요한 `‘수입 목표치 설정’은 상식적으로나 자유 무역 원칙에 비추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당한 요구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무역대표부 미키 캔터 대표는 일본의 자동차시장이 비관세 장벽으로 폐쇄되어 있으므로 일정량의 미국 제품을 수입하라는 미국의 요구도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일본의 자동차시장이 개방되어 있지 않다는 미국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연구기관들은,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일본 소비자들의 욕구 파악을 게을리한 데다 판매망 설립을 위한 투자마저 등한시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키 캔터 대표는 먼저 일본 시장에서 왜 유럽산 자동차가 미국산 자동차보다 4배나 높은 판매 실적을 보이는지 자문했어야 옳다.

클린턴 행정부의 ‘자해 행위’

미국의 대일 무역 적자는 일본 시장의 폐쇄성보다 미국의 낮은 저축률과 일본의 높은 저축률에 더 큰 원인이 있다. 미국은 대일 무역 적자의 60%가 자동차 무역에서 발생한다며 이를 문제 삼고 있으나, 더 좋은 차를 더 싼값에 미국 소비자들에게 공급해온 일본의 행위가 미국 소비자들이 고마워할 일이 될 수는 있어도 비난 받을 일은 결코 아니다. 그나마 미국이 방관한 극심한 엔고 현상으로 일본의 엔화 표시 무역 흑자는 올해 들어 이미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에 접어들지 않았는가.

클린턴 행정부의 파상적인 통상 정책을 우리가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7년여 협상 끝에 세계가 어렵게 만들어낸 다자간 자유 무역 질서가 클린턴 행정부의 위험한 통상 전략 앞에서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 협정이 금지한 일방적 무역 보복 조처를 미국이 계속 고집한다면, 이는 세계무역기구 체제의 조기 붕괴라는 비극을 가져올 뿐이다(58~59쪽 기사 참조). 이는 자유 무역의 기치를 높이 들고 냉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국익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자해 행위임을 클린턴 행정부는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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