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비평] 새것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 김성기 (서울대 강사·사회학) ()
  • 승인 1995.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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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 맥주도 있는데요.” 종업원이 국산 맥주와 잔을 갖다주면서 살짝 덧붙인 말이다. 대학로 뒷골목의 이국적 분위기에다 종업원의 우아한 친절이 겹치니 기분이 퍽 알쏭달송해진다. 그 기분에 “맞다, 밀러!” 하고 대답한다. 종업원은 밀러를 갖고 온다. 이번에는 잔이 없다. 밀러는 병째로 마시는 법이란다. 왜냐고? 신은경이 <종합병원>에서 그렇게 마셨기 때문에! 카페 문화의 새 법칙을 따르고 만다.

나는 새것에 약한 편이다. 새 맥주가 나오면 으레 마셔 보고, 누가 신판 우스개 시리즈를 얘기하면 거기에 솔깃해 하고, 책방 가서도 낯선 제목을 단 책자부터 들추기 일쑤다. 그만큼 줏대 없는 사람이라는 말도 되지만, 새것을 향한 갈구와 탐닉은 현대인에게 널리 퍼진 정서가 아닌가 싶다. 그런 정서를 두고 꼭 나무랄 것까지는 없겠다. 새것은 사람들에게 진보를 예감케 하고 미지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일깨우기도 하기 때문이다.

새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새로 생긴 것이다. 새 맥주가 나왔다거나 새 달이 떴다거나 할 때가 그렇다. 여기서 새것의 변수는 시간이다. 시간상 전후에 따라 새것과 헌것이 구별되며, 새것은 헌것보다 높은 가치를 얻는다. 둘째는, 기능이 개선되거나 개량된 것이다. 긴 수명의 타이어, 더 가벼워진 노트북 컴퓨터, 1회용 카메라 따위가 그런 예들이다. 이들의 새로움을 추동하는 동력은 단연 기술 혁신이다. 셋째는, 신기하고 색다른 것이다. 이는 이전의 문화적 경험에 비추어 개개인이 내리는 판단의 결과다. 같은 대상이라도 취향에 따라, 혹은 신기한 것으로 혹은 평범한 것으로 달리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자극과 순간적 만족 추구하는 소비 사회의 한 단면

이상 세 가지 유형 중 첫째와 둘째는 명확히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새것이 헌것보다는 기능 면에서도 뛰어나곤 하기 때문이다. 이 때 새것은 생활상의 구체적 욕구나 필요를 효율적으로 충족시키는 기능을 한다. ‘생활이 편리해졌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반면, 신기하고 색다른 새것은 물건의 원래 속성보다는 외양이나 스타일과 더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유행이 성립하는 것은 이 대목에서다. 유행은 대개 사람들에게 신기하고 색다르게 여겨지는 것을 먹고 산다.

우리 문화의 풍향계는 유행에 참 민감하다. 유행은 말 그대로 바람과 같다. 왔다가 이내 사라지고, 그러면 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이 유행의 순환 속에서 늘 신기하고 색다른 것이 산출되고 사람들은 거기에 매료된다. 특징적인 것은 그 유행의 주기가 갈수록 짧아진다는 점이다. 가수의 수명이 짧아지고 장기 상영하는 영화가 드물어지고 책에서 스테디 셀러라는 개념이 설 자리를 잃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신기하고 색다른 것이 유행하게 됨은 어찌 보면 당연한 문화 현상이다. 처음에는 저항에 직면하게도 된다.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 문화를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뜨거웠던 것은 그만큼 기성 문화에 미친 충격이 컸다는 말도 된다. 역으로 기성 문화는 그런 새로운 문화에 직면하여 자신의 문화적 관용의 폭을 넓히는 법이다. 이런 뜻에서 유행에 민감한 우리 문화는 일면 긍정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갖가지 유행의 물결은 문화의 다양성과 관용성을 고양시킬 것이라는 결론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다시 한번 요즘 문화의 새로운 양상을 찬찬히 돌이켜 보자. ‘인생은 성도착이다’라는 명제에 골똘하는 듯한 문학 작품이 나오면, 다른 쪽에서는 ‘아냐, 인생의 참맛은 재즈에서 찾아야 해!’하고 심미적인 포즈를 취하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는 게이다!’라는 고백이 나오니까 ‘그래, 게이는 중요한 것이여!’하는 심히 철학적인 응답이 뒤따른다. 또 뭐가 그렇게 따분하길래 ‘번지 점프’를 하고 ‘폭주’를 한다. 이것들은 한편으로는 개방이 곧 시대의 추세라는 논리를,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금기와 상식을 깨뜨린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성도착과 재즈와 게이와 번지 점프는 분명 신기하고 색다른 세계다. 그 세계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찰만 하더라도 딴 데서 얻기 힘든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즐거움마저도 실은 집요한 마케팅의 소산임을 잊어선 안된다. 소비 사회가 끊임없이 조장하는 것은 강한 자극과 순간적인 만족이다. 그것은 멀쩡한 사람을 공연히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비웃기도 한다.

신기하고 색다른 세계는 ‘뭣이든 좋고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일상 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일상은 점점 신기하고 색다른 것들로 넘치면서 휘청거린다. 나 역시 그런 세계에 곧잘 휩쓸리곤 한다. 신기하고 색다른 세계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자꾸 작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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