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리랑> 필름 반환, 섣부른 기대 금물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8.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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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아베 씨 소장 여부 불분명…억측 보도 등 자제해야
한국 정부와 여당이 올 가을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일본에 남아 있는 한국 문화재 반환을 일본측에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여당이 특히 관심을 보이는 것은 초기 한국 영화계의 거두 춘사 나운규가 감독·주연한 영화 <아리랑>의 필름인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 <아리랑>은 26년 단성사에서 개봉된 흑백 무성 영화이다. 일제에 항거하다 고문을 받고 정신장애자가 된 대학생이 친일파 지주를 살해하고 경찰에 잡혀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당시의 관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함께 <아리랑>을 열창했다고 한다.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이 영화는 그러나 광복과 6·25를 거치면서 필름이 분실·소실되어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환상 속의 영화’가 되었다.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걸작이며, 항일 민족 영화이기도 한 이 영화 필름을 찾기 위해 그동안 백방으로 수소문해 왔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 중국·러시아 등지의 영상 자료센터를 샅샅이 뒤졌으나 <아리랑>의 필름은 고사하고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희망은 일본의 영화 필름 수집가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75)씨가 소장하고 있는 6만여 통의 옛날 영화 필름이다. 히가시 오사카(東大板) 시의 산기슭 허름한 기와집에서 자식도 없이 부인과 함께 방대한 필름더미에 묻혀 사는 아베 씨가 <아리랑> 필름을 소장하고 있다고 소문이 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일이다.

춘사 나운규를 ‘항일 영웅’으로 추앙하고 광복 직후부터 <아리랑> 필름을 찾은 북한이 이 소문을 듣고 조총련을 통해 70년대부터 반환 교섭을 벌이기 시작했다. 조총련 영화제작소 여운각 소장은 우표 수집광이기도 한 아베 씨에게 북한의 각종 우표와 개성 인삼주, 시가 천만엔 상당의 소니 영상 편집 기계 등을 선물하고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초대장까지 제공하며 추파를 던졌다. 그러나 아베 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본래 빨갱이를 싫어하기 때문에 <아리랑> 필름이 남북한의 공동 재산이라는 이유를 들어 남북 통일이 되면 돌려주겠다는 식으로 당시 북한의 반환 요청을 거절했다”라고 밝혔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 한국측도 70년대 후반부터 반환 교섭을 시작했다. 재일 동포 사학자 신기수씨, 다큐멘터리 영상 작가 정수웅씨 등이 개인적으로 아베 씨를 접촉했다. 두 사람은 아베 씨의 허락을 받아 아베 씨 자택 25칸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필름더미를 몇 차례 뒤졌으나 허사였다고 한다. 또 영화진흥공사·한민족아리랑보존연합회·아리랑찾기1백인회 등도 꾸준히 아베 씨를 접촉하고 필름 반환을 요청해 왔다.

그러나 아베 씨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즉 필름더미에 묻혀 있는 <아리랑> 필름을 찾으면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의 취재에 대해서도 아베 씨는 “<아리랑> 필름을 찾으면 남북한과 일본 매스컴을 함께 불러 놓고 공동 기자회견을 열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베 씨는 <아리랑> 필름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대답을 얼버무려 왔다. 사실 남북한 영화인들이 혈안이 되어 30년 가까이 아베 씨를 접촉해 왔지만 누구도 아베 씨 자택에서 <아리랑> 필름을 본 사람은 없다. 3년 전 이틀 동안 아베 씨를 취재한 기자도 그가 46년에 직접 작성했다는 동양극영화 목록 55번째 항에 <아리랑> 필름 9통이 기재된 것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필름 반환, 정상회담 의제 삼는 것은 난센스”

그럼에도 최근 국내 한 일간지가 아베 씨의 <아리랑> 필름 소장을 기정 사실화하고 아베 씨가 “김대중 대통령이 일왕에게 반환을 요청하면 돌려줄 수도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해 물의를 빚고 있다. 아베 씨는 최근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런 보도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흥분하면서 “그같은 말을 한 적도 없고 취재에도 응한 적이 없다”라고 펄펄 뛰었다. 재일 동포 사학자 신기수씨도 <아리랑> 필름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정부에 필름 반환을 요구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또 한 개인의 재산 반환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로 삼는다는 것도 가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추측성 기사나 근거 없는 소문이 난무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턱대고 아베 씨가 <아리랑> 필름을 소장하고 있다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대강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는 아베 씨가 이 문제로 방문한 사람들, 즉 남북한 영화 관계자나 한국과 일본 언론 들에 ‘없다’고 단정지어 말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둘째는, <아리랑>과 같은 시대에 제작된 <린인애(隣人愛, 이웃 사랑)>라는 친일 영화를 아베 씨가 공개한 적이 있어 <아리랑> 필름도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셋째는, 아베 씨의 자택이 아닌 제2의 보관 장소에서 배열 번호가 붙은 <아리랑> 필름통을 확인했다는 소문 때문이다.

아베 씨는 3년 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필름통을 확인했다는 소문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일축하면서, 자신이 <아리랑> 필름을 소장하게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 선친은 일제 시대 총독부 소속 경찰의사로 콜레라가 만연하던 곡성·하동 등지에 파견돼 방역·구제 활동에 종사했다. 영화를 좋아했던 관계로 당시의 영화인들과도 친교가 있어, 그들이 선친으로부터 영화 제작 자금을 빌려갔고, 대신 필름을 담보로 잡혔다. 이때 모아놓은 필름 속에 <아리랑> 필름이 들어 있었다. <아리랑> 필름을 실제로 본 것은 두 번이다. 어렸을 때 영사기를 돌리며 놀다 <아리랑>을 보았으나 선친이 빨갱이들이 만든 영화라고 해서 보다 말았다. 두 번째로 본 것은, 46년에 소장하고 있던 필름을 정리·분류하면서였다. 이때 <아리랑> 필름과 함께 옛날 한국 영화 60여 편도 함께 발견했다. 그러나 그후 필름더미에 섞여 아직 어디에 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아베 씨는 초기 한국 영화뿐 아니라 옛날 일본 영화 필름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그가 6만여 통에 달하는 옛날 필름을 소장하고 있는 것은 일본군이 전쟁 말기에 일본과 한국·만주 등지에서 영화 필름을 회수해 핵폭탄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아베 씨는 자신이 전쟁 말기에 핵폭탄 제조 연구에 종사했던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소장한 필름은 일본 군부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고 전쟁중 전쟁미망인회가 오락용으로 수집한 필름을 패전 후에 동호인들과 함께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아베 씨는 필름통이 가득 쌓인 비좁은 방에서 정좌를 하고 이틀에 걸쳐 이같은 사실을 청산유수와 같이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필름의 존재 여부와 그것을 언제 공개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면 말끝을 얼버무리면서, 능구렁이처럼 이전의 대답을 되풀이했다. 즉 46년에 <아리랑> 필름을 본 것이 최후이고, 분명히 자기 집의 필름더미에 묻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베 씨, 허락 없이 필름 뒤진 한국 취재진에 격노

이같은 아베 씨의 애매한 태도 때문에 그를 만난 관계자들이 크게 분격한 것도 사실이다. 재일 동포 청년들이 능구렁이 같은 태도에 격분해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으며, 한국의 한 방송국 취재팀은 허락 없이 멋대로 필름더미를 뒤지다가 아베 씨를 화나게 만들기도 했다.

최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베 씨는 “<아리랑> 필름을 발견하더라도 ‘일제 시대에 수탈해간 전리품’이니까 돌려 달라는 한국측에는 절대로 돌려줄 수 없다. <아리랑> 필름이 발견되면 즉각 불태워 버리겠다”라는 극언을 퍼부었다.

그러나 재일 동포 사학자 신기수씨에 따르면, 한 가닥 희망은 있다. 신씨는 “아베 씨가 현재 <아리랑> 필름을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은 50 대 50이나, 그가 3년 후에 완성되는 NHK 영상자료원에 소장 필름을 기부하겠다고 밝혔으므로 그때는 필름 존재 여부가 가려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리랑> 필름에 관한 특집 기사를 다룬 적이 있는 <마이니치 신분(每日新聞)> 스즈키 다쿠마(鈴木琢磨) 기자도 “아베 씨가 <아리랑> 필름을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희박할 수도 있으며, 설사 소장하고 있더라도 그를 쓸데없이 자극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리랑> 필름을 둘러싼 오보와 소문이 난무하는 것은 공명심 경쟁도 큰 원인이다. 그러나 지나친 공명심 경쟁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게 된다는 것을 관계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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