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범죄'' 앞에 우리는 무죄인가
  • <시사저널> 취재1부장 직무대행 ()
  • 승인 1998.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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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아마추어 범죄자만이 아니다. 힘센 사람만이, 능력 있는 사람만이, 내 가족만이 살아 남아야 한다는 식으로 치닫는 사회 전체가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지난 주말 가족과 단란한 저녁 식사를 끝내고 텔레비전 9시 뉴스를 시청한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커다란 슬픔과 충격을 느꼈을 것이다. 열한 살 난 양정규군이 실종된 지 한달 만에,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실낱 같은 희망을 저버리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빅 뉴스인 북한 핵 의혹을 물리치고 뉴스 첫머리를 장식했다.

정규군의 시체가 발굴되는 동안 정규군 어머니는 온몸으로 통곡했다. 자식을 둔 시청자라면 누구나 다 키운 자식을 잃은 그의 몸부림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표현 방식만 다를 뿐, 아버지라고 예외일 것인가. 미국 남북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셰난도〉에서 아들을 남부군 병사에게 잃은 아버지(제임스 스튜어트)는 그 어린 병사에게 이렇게 절규하지 않았던가. “나는 너를 죽이지 않겠다. 반드시 오래 살아서 꼭 내 나이만큼 되어서 정이 들 대로 든 다 자란 자식이 네 앞에서 죽어 가는 걸 보기를 원한다. 그때 지금의 내 심경을 느끼기를 원한다.” 이것이 생때같은 자식을 졸지에 잃은 부모의, 걸러지지 않은 솔직한 심경일 것이다.

지금 한국은 전시(戰時)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노약자들이 자주 범죄에 희생되고 있다. 범죄 전문가들에 따르면, 노약자 대상 범죄가 이처럼 자주 일어나는 데에는 ‘IMF’라는 시대적 배경도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경제난으로 말미암아 범죄 사회에 새로 진입한 ‘아마추어 범죄자’들이 늘고 있고, 이런 아마추어 범죄자가 노리는 대상은 대부분 범행하기 쉬운 노약자와 부녀자라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로서 경쟁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소외 인간들이 또 다른 약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정규군 유괴 사건의 용의자도 단순 폭력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갓 출소해 노숙자로 떠돌던 풋내기 전과자일 뿐이다. 문제는 아마추어 범죄자라고 해서 그 범행 결과가 반드시 아마추어성으로 끝나지 않으며, ‘선무당이 사람 잡듯이’ 끔찍한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목청 높여 개탄만 하기에는 왠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는 노약자를 사회의 최종 희생물로 삼는 IMF적 상황으로부터 완전 무죄임을 과연 입증할 수 있을 것인가.
일부 부유층의 천민 자본가적 행동 양식

물론 우리는 형법상 완벽하게 무죄다. 우리는 주범도, 공범도, 배후 조종자도 아니므로. 하지만 생명과 금품을 빼앗는 것이 형법상 범죄라면,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사회적 범죄다. 범죄의 의미를 이처럼 사회적 측면으로까지 확장한다면, 또 그 적용을 간접적인 행위에까지 확대한다면, 우리 누구도 그런 혐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IMF 이후 노약자에 대한 사회적 범죄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 모두가 그런 범죄에 직·간접으로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과 어린이들을 수용하는 집단 시설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 한 해 새 식구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가계가 파탄 났다, 부부가 헤어져 돌볼 사람이 없다, 집안이 어려워져 더 모실 형편이 안된다 등등 갖가지 이유로 집단 시설에 버려지는 노인과 어린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들 복지 시설 관계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식구가 점점 늘어나는데도 후원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노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이처럼 아마추어 범죄자만이 아니다. 힘센 사람만이, 능력 있는 사람만이, 내 가족만이 살아 남아야 한다는 식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 전체가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한국 사회의 일부 부유층은 IMF 상황에서 오히려 소득이 더 늘어났는데도 소외 계층을 돕는 활동에는 지극히 게으른, 천민 자본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 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노약자를 막무가내로 떠밀어내는 식의 사회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형편이 어려울수록 더 어려운 사람들, 혼자서는 생존하기 힘든 사람들을 돌보는 사회야말로 성숙한 사회이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이며,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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