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현실 뒤에 숨은 것들
  • 이명호 (가톨릭대 강의전임 교수·<여성과 사회> 편집 ()
  • 승인 2004.10.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매매 반대자들이 성매매 척결을 주장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인권 유린 위에 세워진 거대한 유곽이라는 현실 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성매매를 문제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문제화하는 것이다.”
 
‘성매매의 천국’ 대한민국에 파란이 일고 있다. 지난 9월23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성매매특별법과 함께 그동안 법적으로 금지되긴 했지만 공공연하게 이루어져오던 성매매에 강력한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파란은 이 제동이 불러일으킨 사후 파장이다.

이런 파란은 특별법 시행 이전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다. 법을 고지한 직후부터, 성매매 반대자들을 뭉뚱그려 ‘도덕률로 중무장한 관념적 페미니스트’라고 몰아붙이면서 성매매의 현실을 인정하라는 근엄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성매매를 처벌할 경우 불법적 음성화만 확산되고, 성산업이 금지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 경제가 타격을 입게 된다는 논조의 글들도 신문 지상을 장식하고 나섰다.

특별법 시행 시점부터는 이런 목소리에 한층 무게가 실리면서 ‘여성운동가와 성매매 여성’의 대립이라는 왜곡된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한 일간지 만평은 이 법 시행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비유하고 있는데, 여기서 성매매 여성들을 ‘악의 축’으로 몰아 공격하는 것은 여성운동가들이다. 성매매 여성들을 구출(?)하려는 ‘오빠들’ 중에는 이 법을 국가보안법보다 더한 악법이라고 규정하는 축도 있다.

‘자발적’ 성매매도 결국은 ‘강제화’로 귀착

여성과 여성을 대립시키는 이런 왜곡된 전선은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 보장’과 ‘공창제 실시’를 주장하는 집회를 열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당사자 여성들이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자 언론은 보란 듯이 이를 대서특필하면서 당위만 앞세운 법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런 기사와 함께 성매매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유포되었다.

벌써 잊었는가? 2000년 군산의 한 성매매 업소 화재 사건 때 20대 ‘매춘’ 여성 5명이 불에 타죽었다. 그들이 불길에 타죽은 것은 쇠창살에 갇혀 탈출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쇠창살에 갇힌다는 것은 ‘감금’이지 ‘자발적 의사’에 의한 자기 유폐가 아니다. 철저히 인권을 유린당했던 그들의 처지가 예외적인 경우인가. 자발적 선택에 따른 성매매 행위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이 되는 전형적인 경로는 10대 가출, 빈곤, 생계 수단 결여 등이며, 이 경로는 더러 ‘자발’의 형태로 시작된다고 해도 결국은 ‘강제화’로 귀착한다.

성매매 반대자들은 도덕적 청결주의의 관점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더러운 여자라고 보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악의 축으로 몰지도 않는다. 반대자들이 성매매 척결을 주장하는 이유는 성매매가 여성의 성에 대한 폭력이자 인권 유린이며, 우리 사회가 인권 유린 위에 세워진 거대한 유곽이라는 현실 인식 때문이다. ‘더러움/깨끗함’이라는 구도는 여성주의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남성들은 한편으로는 성매매 여성들을 ‘타락한 여성’이라고 지탄하면서도 그들의 몸을 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주의자들을 욕하기 위해 성매매 여성들 편에 서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의식 속에 성매매 여성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없다. 그들은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가부장적 성별 분업 구조의 노동 시장이 가난한 여성들을 ‘매춘’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큰 현실적 원인이라는 사실을 보지 않는다. 먹이사슬로 얽힌 비인간적인 성산업 구조를 유지해야만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성매매의 현실에는 한국 사회의 이중적 성규범, 기업의 남성 중심적 접대 문화, 환락 문화, ‘빈곤의 여성화’와 인권 유린, 폭력의 악순환, 국민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성산업의 세계적 확산 등등의 문제가 얽혀 있다. 성매매를 문제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문제화하는 것이다. 이 지난하고 아득한 싸움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