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품고 내주는 ‘바다의 자궁’ 탐사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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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글·사진 <갯벌을 가다>
꼭성매매특별법 탓만은 아니지만 세월이 참 많이 살벌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무심한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다. 예컨대 ‘작부’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미당 서정주처럼 동백꽃 다 져버린 고창 선운사 입구 주막의 쉬어터진 막걸리가 생각난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짙디 짙은 퇴폐와 영락의 냄새를 맡을 뿐이란다. 어감이 안좋다는 것이다.

 
갯벌도 마찬가지다. 육지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그 질펀한 생활사의 현장은 스산하면서도 활기차다. 갯벌에서는, 작부들 웃음소리에 하루벌이 뱃삯을 ‘호기롭게’ 날리는가 하면, 어촌계에서 공동 재배한 굴값을 놓고 ‘쩨쩨하게’ 애면글면하기도 한다. 그래설까, 해질녘 황량한 갯가에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본 적 있는 이라면 그 ‘생활과 감성의 묘한 불일치’에 괜히 기분이 오락가락해질 수밖에 없다.

<갯벌을 가다>(김 준 지음, 한얼미디어 펴념)는 한반도 서남해안 갯마을 사람들이 ‘물때에 맞춰 사는’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모든 것을 보듬어 키워내고, 다시 모든 것을 고스란히 내어주는 모성 같은 갯벌’에 안겨 사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갯내음처럼 짭짜름하게 배어 있는 이 책을 읽노라면, 갯벌이 생명을 길러내는 ‘바다의 자궁’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전라도 함평의 돌머리 갯벌에서 일하는 어머니들을 ‘전사’라고 표현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대표적이다.

‘손에는 면장갑을 끼고 그 위에 얇은 고무장갑을 끼고 또 그 위에 작업용 장갑을 낀다. 석화를 씻을 때 사용할 그릇을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나타난 여자들의 모습은 한바탕 전쟁을 치를 전사들의 모습이다. 쇠스랑을 어깨에 메고 나타나 갯지렁이를 파는 여자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영락없는 전사다.’
그런가 하면 전라도 무안 달머리마을 갯벌에는 ‘연봉 5천만원짜리’ 숭어 낚시꾼도 있다. 그가 말하는 ‘4계절 생선 맛’이 썩 재미있다. ‘꽃이 축제를 벌이는 초봄에는 값싸고 맛좋은 숭어, 봄볕이 내리쪼이는 4월에 들어서면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감성돔, 돈이 없는 사람들은 쭈꾸미가 좋아. 그늘이 그리운 7월에는 병어 맛이 잠깐 들고 여름철에는 민어와 농어 그리고 오도리가 좋지. 8월에는 눈이 큰 보리숭어, 가을에는 참숭어와 전어와 낙지, 겨울에서 봄까지는 다시 숭어를 먹으면 돼.’

갯마을 사람들의 희로애락 생활사 담아

 
그렇다고 이 책이 도시 사람들의 식도락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다. 낙지나 바지락, 굴, 꼬막, 짱뚱어 같은 갯벌의 특산물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갯벌에서 부대끼며 사는 갯마을 사람들의 생활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들에게는 시계가 없는 대신 시간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삶의 지혜가 정해준 시간에 따라 산다. ‘한겨울에도 석화를 까기 위해 언 몸을 모닥불로 녹인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숭어잡이에 나서고, 여름철에는 한증막 같은 갯벌에 들어가 바지락을 파고 가리맛을 뽑는다. 가을철에는 집 나간 며느리도 그리워한다는 전어와 세발낙지 잡이에 나선다. 그들이 쓰는 말이나 먹을거리는 육지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갯벌 하면 떠오르는 섣부른 낭만을 적당하게 충족시켜 주면서, ‘불도저와 포크레인이 굉음을 내기 시작한’ 현장의 치열함도 놓치지 않고 전해준다는 점에서 가볍지만 진중한 읽을거리다. 시화호나 새만금을 이야기할 때는 처연하기조차 하다. ‘평생 김을 뜯고 바지락을 캐고 석화를 까던 어부들은 농민이 되고 노동자가 되었다. 도시는 몇푼 안되는 그들의 보상금마저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하지만 갯벌은 돌아온 그들을 말 없이 다시 받아주었다’. 섬과 바닷가 생활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저자(목포대 교수)가 직접 찍은 사진들도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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