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뒷골목의 난장 한판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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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따로, 홍보 따로. 영화 <귀여워>(연출 김수현)는 여배우 가슴 만지기 게임으로 구설에 오르더니 최근 ‘성매매특별법 이후 남성들의 고민을 반영했다’는 홍보 문구까지 동원했다. 이 작품을 ‘한 여자에게 껄떡대는 네 부자 이야기’로만 본다면 과히 동떨어진 홍보 전략이 아니겠지만, 제작진의 속뜻은 그보다 훨씬 더 의뭉스러워 보인다.

신인 감독 김수현이 장선우 감독과 10년 동안 호흡을 맞추어 왔다는 것을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화 <귀여워>는 ‘예술가란 무당’이라는, 장감독의 지론을 이어받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설정은, 축제 혹은 굿의 난장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배경은 청계천 공사 때문에 철거가 한창인 서울 황학동이다. 왕년에 이름깨나 날린 점쟁이 장수로(장선우)와 그의 두 아들은, 철거 통지에 따라 주민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을씨년스런 아파트에서 기거하고 있다. 장수로는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점을 보겠다며 찾아오는 여성들을 ‘몸으로’ 상담해주면서 살아간다.

함께 사는 배 다른 두 아들은 성격이 딴판이다. 퀵 서비스맨인 첫째 후까시(김석훈)는 내숭으로 똘똘 뭉친 진지남이고, 견인차 기사인 둘째 아들 개코(선 우)는 까질 대로 까졌다. 개코는 아버지 장수로를 위해 알던 여자 순이(예지원)를 집에 데려온다. 둘째 아들은 이미 순이와 각별한 사이인데 그 여자를 아버지에게 ‘대령’한 것이다. 첫째 아들은 멋도 모른 채 순이를 꼬실 요량으로 애를 쓴다.

한편 ‘철거 깡패’였던 셋째 뭐시기(정재영)는 출소한 뒤에도 배운 도둑질을 다시 시작한다. 철거민을 겁주어 내쫓으라는데, 그 일감이 하필 장수로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비우는 일이다. 그 덕분에 생부 장수로를 찾게 되고, 순이와도 덩달아 꼬이게 된다.

장수로가 젊었을 때 흩뿌려놓은 씨들이 꾸역꾸역 그의 곁에 모여들면서 가족으로 구성되었지만, 상식적인 가족 관계가 통용되지 않는다. 무늬만 가족이기에 ‘네 부자가 한 여자에게 침을 흘린다’는 설정은 별스런 충격 효과도 전복성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기묘한 결합

그 포장지를 걷어내고 나면 <귀여워>는 비로소 제 색깔을 드러낸다.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기묘하게 결합해 놓은 것이다. ‘영화의 첫 모습은 (중국 6세대 감독) 지아장커의 <소무>와 비슷했다’는 김수현 감독의 자평대로 영화 <귀여워>에는 도시의 뒷골목, 특히 가진 것 없는 사내들의 삶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네 남자의 프로포즈를 받는 여자 순이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판타지성의 정점이다. 순진한 듯 발칙하고, 까질 대로 까졌으나 푸근한 순이의 캐릭터는, 과거 1970년대 글줄깨나 읽는 남성들이 거리의 마리아쯤으로 신격화하곤 했던 ‘창녀’ 이미지의 재림으로 보인다. 막히는 도로에서 뻥튀기를 파는 등 일정한 직업이 없는 그녀는, 자리싸움을 할 때는 나이 든 여자의 머리 끄덩이를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데, 웬일인지 세상, 특히 남성들의 욕망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관대하다. 영화 제목 ‘귀여워’는, 그녀가 실실 웃는 표정으로 바깥 세상에 날리는 멘트로 보인다.

날라리 영화로 포장은 했지만, 정작 관념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 이 영화에 젊은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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