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세계화 '경락' 뚫기 한창
  • 안은주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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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 제3세계 누비며 교두보 마련…미국·유럽 시장 확보가 관건
사단법인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단장 권용주)이 보건복지부의 후원을 받아 11월4일부터 4일간 스리랑카 콜롬보와 감파하에서 무료 진료 활동을 벌였다. 봉사단 소속 한의사 13명은 무릎 통증·요통·해수천식 환자 등 모두 2천7백53명을 진료했다. 의료 봉사에 참가했던 한의사 이시섭씨(국립의료원·한방과)는 스리랑카인들의 질병은 커리와 육식 중심의 고칼로리 식단과 고온다습한 기온에 의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고 분석했다.

수년간 말을 제대로 못해 결혼도 못하고 지내던 40대 남자는 이번에 한방 치료를 받은 후 말문이 트였고, 천식으로 인해 숙면하지 못했던 한 할아버지는 몇 년 만에 단잠을 잤다며 고마워했다. 콜롬보에 사는 아랄링(72)씨는 “어깨뼈와 등뼈가 아파서 며칠 동안 침을 맞았는데, 통증이 한결 줄었다. 계속 치료받으면 싹 나을 수 있겠는데…”하며 진료 기간이 짧은 것을 아쉬워했다.

며칠 치료한 것만으로도 질병이 호전되자 환자들은 한의학의 효능을 실감하는 눈치였다. 진료 기간 내내 한의사들은 환자들로부터 “언제 또 오나요?” “이 약은 어떻게 구입할 수 있죠?”라는 질문을 받았다. 봉사 활동이 끝난 날 한의사 이상호씨(경희의료원·한방재활의학과)는 조금만 더 치료하면 씻은 듯이 나을 수 있는 환자가 많았다며 아쉬워했다.
봉사 활동이 끝난 다음 날인 11월 8일 스리랑카 아유르베다 전통의학연구소에서는 봉사단 소속 한의사와 스리랑카 전통 의학자들이 모여 한-스리랑카 전통 의학에 대한 세미나를 갖고, 양국간 전통 의학 교류 방안을 모색했다. 이 날 세미나를 지켜 본 스리랑카 전통의학부 루파싱헤 부장은 “스리랑카에는 약초를 이용한 약물 위주의 치료법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다. 이는 한약의 원리와 비슷하다. 양국이 교류해 전통 의학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치료 효과를 체험한 스리랑카 환자들뿐 아니라 의료 봉사 활동을 지켜본 스리랑카 정부도 한의학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신영일 교수(동신대·한의학)가 말한 대로 해외 한방 의료 봉사 활동은 한의학 세계화의 교두보이다. 한방 봉사단은 1993년 네팔 해외 봉사를 시작으로 하여 에티오피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아프리카·아시아 26개 지역에서 인술을 펼쳤다. 이들의 활동이 계기가 되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는 한의학 병원이 설립되었다. 정부 파견 의사 1명과 국제 협력 한의사 2명을 파견한 우즈베키스탄 병원에는 환자가 줄을 이어 앞으로 2년 후 진료까지 예약된 상태이다. 몽골에는 한방병원이 현재 건립되고 있어 내년에 국제 협력 한의사가 파견될 예정이며, 에티오피아에서는 병원을 지을 부지를 마련해 놓은 상태이다.

신교수는 “문화 차이로 인해 침술과 같은 의료 행위를 거부하는 나라나 환자가 있다. 하지만 의료 봉사를 통해 한의학의 우수성을 확인한 뒤에는 한의학과 한약을 쉽게 받아들인다”라고 말했다. 스리랑카에서도 진료 첫날 침 맞는 것을 두려워해 약만 요구하던 환자들이, 침술 치료를 받은 다른 환자의 증세가 호전되자 재진 때에는 침술 치료를 받겠다고 나섰다.

중국 중의학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전통 의학은 동양뿐 아니라 유럽·미국 등지에서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 11월20일 월간 <한방과 건강>이 주최한 한의학 국제 세미나에 참석했던 중의사 수전군(장춘중의학원 원장)씨에 따르면, 중국의 침구술은 이미 1백40여 나라에서 응용되고 있으며, 약재는 1백30여 나라로 수출된다.
또 침구술은 물론, 식물 약재 응용과 동양 의학 의사의 활동이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합법적인 지위를 얻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50여 개의 동양 의학 대학이 있으며, 43개 주에서 동양 의학을 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의 3분의 2가 침을 맞은 경험이나 한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고, 미국에서 소비되는 동양 의학 치료 비용은 1억 달러를 웃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에서 침을 중심으로 한 동양 의학의 자연 요법을 선호하는 추세이다.

또 전세계 약초 시장 규모는 해마다 10%씩 커지고 있다. 동남아 각국의 전통 의약이 양의학과 쌍벽을 이루며 발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북미·서유럽 시장 진출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랍은 전통 의약 지식을 이용해 새로운 약품을 개발해 시장을 확대함으로써 더욱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스리랑카에서도 전통의학부를 주축으로 전통 의학 치료에 쓰이는 약초 2천여 종을 대단위로 재배해 상품화할 계획이다.

한의학 국제 세미나에 참석했던 미국 사우스베일러 대학 박준환 총장은 “한의학·중의학 등 동양 의학은 아직 세계 의학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 적기이다. 전통 의학을 적극 보급하는 나라가 세계 의약 시장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대체 의학 시장을 점령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을 재빨리 인식한 몇몇 선진국은 동양 의학 연구를 정책적으로 지원한다. 중국은 이미 중의학을 국가 제일의 전략 산업으로 삼아 양의학과 함께 집중 육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 침구사 제도를 신설해, 침구사 자격 취득 수익으로 연간 5억∼1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1994년 미국 정부는 3천만 달러를 동양 의학을 포함한 대체 의학 연구기금으로 책정했다. 사우스베일러 대학은 한의학의 체질 이론과 퍼지 수학을 이용한 치료 방법 연구에 돌입했고, 에이즈와 암에 대한 한의학 이론과 임상 치료 연구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에 비해 한국은 아직 한의학을 세계로 진출시킬 채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한의학계의 평가이다. 한방해외의료봉사단 권용주 단장(권씨한의원장)은 “한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것은 물론 국립한방병원조차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한의학의 세계화를 이룰 수 있겠냐”라고 반문했다. 한의학 육성을 위한 제도를 하루빨리 마련하고, 한의학 기초 임상연구 자료 및 한약재·한방 제재 계량화 연구를 병행해 세계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의학 수출의 첨병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방 해외 의료 봉사 활동을 국가가 적극 지원하고, 봉사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수출 교두보로 다져야 할 것이라고 권단장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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