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임의분업도 고려해야 한다"
  • 권은중 기자 (jungk@sisapress.com)
  • 승인 2000.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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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의사이기 전에 운동권이었다. 1981년 인천과 성남 지역에서 노동자로 위장 취업을 했고 국보법 위반 혐의로 ‘빵’ 생활도 했다. 의사가 된 것은 입학한 지 14년 만인 1991년이었다. 그런 경력을 가진 신상진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 위원장이 지난 몇달 동안 의사들을 지휘해 왔다. 그는 ‘국사범’으로 몰렸고 그를 잡기 위한 전담 체포조가 꾸려지기도 했다. 서울지검 형사부가 아닌 공안부가 그를 쫓는데도 그는 신출귀몰하며 2차 폐업을 지휘했다. 지난 9월 서울 신촌에서 검거되었다가 10월11일 보석으로 풀려난 그를 만났다.


의쟁투의 핵심이자 강경파인 당신을 정부가 보석한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나는 언론에 의해 과장되었다. 난 강경파가 아니다. 의약 분업이 잘못되었다는 의사들의 의견을 따랐을 뿐이다. 정부나 사법 당국이 나와 집행부를 잡아넣으면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판단 착오다. 보석될 확률은 반반으로 생각했다.


무슨 혐의로 수배된 것인가?

의료법·공정거래법 위반과 업무방해 세 가지다. 1차 폐업을 철회할 때 정부는 사법 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놓고 날 수배했다. 결국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셈이다.


보석 중인데 의쟁투 위원장 업무를 보는가?

수배되고 구속된 지 약 100일이 되었다. 의료계가 맞고 있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내부 의견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 정부와의 협상에서 한 가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 아직 업무를 보지는 않는다.


왜 이런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하는가?

의사들 99%가 거부하는 의약 분업안을 강행 추진한 정부의 잘못이다. 정부와 언론은 의사들을 의료계에 만연한 비리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정부는 무조건 몰아붙이면 된다고 판단해 의사들을 구속하고 면허정지로 위협했다. 정부의 안일한 상황 판단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해결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도 정부다. 의사들이 요구하는 약사법 개정, 의료보험 재정 지원, 의료계 명예 회복 등을 조속히 해줘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장기발전계획 따위를 내밀며 협상에 나서고 있어 의견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협상 상대로 보건복지부만 나서고 있는데 의료보험 수가나 의보재정 국고 보조는 재정경제부가 결정할 사안 아닌가. 정부는 결국 시간만 끌고 있는 셈이어서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대통령이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국민이 가장 피해를 보지 않았나?

맨 처음부터 폐업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작년부터 여러 차례 집회를 하고 휴진을 했다.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대화도 했고 자체 세미나도 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계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는 국민에게 고통과 불편을 주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국민은 이런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부도 잘못했고 의사도 잘못했다는 양비론에 빠져 있다. 단지 의사들은 폐업을 했기 때문에 여론몰이에 의해 매도되고 있다.

정부의 잘못을 성토하는 그도 맨처음부터 의약 분업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난해 5월10일 의·약·정 합의로 의약 분업이 실시된다고 할 때 필요하면 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일단 정부가 시행한 다음 보완해 가면 되지 않을까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랬던 신위원장의 생각이 바뀐 것은 올해 3월 성남시의사회장에 추대되면서부터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약값의 거품이 빠진 뒤로 재정난에 빠진 의사를 만나면서 의약 분업이 의사에게 희생을 강요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의 운동권 기질이 발동했고 의쟁투 위원장에 추대되기까지 이르렀다. 그는 의약 분업이 제대로 되어 의쟁투가 해체되면 제2의 고향인 성남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정말 국민이 궁금한 것은 의사들이 의약 분업을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다.

지난 5월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선진국형 의약 분업을 하겠다면 찬성하겠다는 사람이 70%가 넘었다. 만약 왜곡된 형태로 실시한다면 폐업 투쟁을 하겠다는 응답이 80%가 넘었다. 현 정부안에는 92%가 반대했다. 우리들은 제대로 된 의약 분업을 하자는 것이다.


의료계가 1차 폐업 때 요구하던 임의 조제를 명시한 약사법 39조 2항은 개정되지 않았는가?

낱알 혼합 판매를 할 수 있는 조항이 삭제되었으니까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데, 이 조항 시행은 5개월이나 유예되었다. 또 포장 단위를 변경해 낱알 판매가 가능하므로 법조항을 삭제한 의미가 없어졌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럼 어떤 대안을 생각하고 있는가?

의약 분업은 필요하다. 약의 오·남용을 막고, 약사와 의사의 직능이 구분되어야 한다. 일본에서 하는 선택 분업은 약의 조제를 환자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국민이 불편하지 않다는 점이 시대의 정신에 맞는다. 임의 분업도 하기 나름이다. 병원에서 약을 조제하는 것도 약의 오·남용을 막을 수 있고 유통 구조를 고칠 수 있다. 임의 분업으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병원으로 가려는 사람에게 비용을 더 부담시키고 약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식으로 분쟁을 줄일 수 있다.


임의 분업은 의약 분업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가?

정부가 하는 왜곡된 의약 분업도 원칙에 어긋난 것이 아닌가? 정부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 현실에 맞는 의약 분업을 할 필요가 있다.


의사들이 자신들의 논리에만 매몰되어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결국 진료권이나 의권도 국민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의사들 주장이 일방적이라는 근거가 무엇인가? 의사가 공급 과잉으로 넘쳐나고 의사들이 개업해서 망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의사가 병·의원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운영비를 요구하는 것이 잘못되었는가? 집단 이기주의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정부와 언론은 의사의 공공성을 강조하는데, 의사가 그동안 국가 지원을 받아온 건 아니지 않는가.


희망연대나 인의협과 같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희망연대가 전국적으로 회원을 몇명이나 두고 있는가. 우리는 7만 의사 회원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움직이고 있다. 의사협회의 모든 결정은 투표로 이루어진다. 언론은 인의협 같은 소수의 목소리를 마치 시대의 양심인 것처럼 부각하고 있다.

보석된 후 초등학생인 두 딸과 함께 바람이라도 쐬고 오려고 했던 그의 ‘구치소 구상’은 깨진 지 오래다. 그에게는 인터뷰 내내 말끝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전화가 폭주했다. 이런 활동이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잘못된 의약 분업을 반대하다 생긴 일이기 때문에 무죄 판결을 확신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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