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하고 강렬한 ‘익스트림 스포츠’ 의 세계
  • 박은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4.02.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험과 위험의 극한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
눈사태보다 빠른 속도로 스키를 타고, 빌딩 숲 사이를 스파이더맨처럼 종횡무진 날아다니는가 하면,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은 채 휙휙 난다 싶게 묘기를 부리는 이들. 광고와 영화 속에서 숱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저 별난 자들의 이름은 스턴트맨이 아니다. 엑스게이머다. 혹은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과학과 정보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육체보다 정신과 이성이 더 존귀한 대접을 받게 된 지금, 테크놀로지의 최정점인 이 순간, 아이러니컬하게도 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원시적으로 육체를 느끼고자 하는 이가 늘고 있다. 그들의 아이콘 가운데 하나가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이다.

국내 엑스게이머 3백만명 넘어

익스트림 스포츠. 한마디로 극한의 스포츠이자 한계의 스포츠이다. ‘죽어도 좋아’를 외치며 위험과 모험을 즐기는 스포츠이다. 스케이트 보드와 롤러스케이트 등 청소년의 명랑하고, 건전한 놀이에서 진화한 이 레포츠가 엑스게임(X-game)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 ESPN이 동명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부터였다.

직각에 가까운 암벽을 바닥을 기어가듯 오르고,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유영하며, 바람보다 빠르게 눈길을 질주한다. 이 스포츠는 그 화려함으로 인해 돋보이기 좋아하는 젊은이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하다. 엑스게임은 그 자극적인 위험으로 권태에 지친 생활인들을 매혹시키며, 몰입과 몰아의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자각으로 유약한 우리들에게 ‘사이렌의 노래’를 속삭인다. 무아지경과 극한의 고통을 견뎌낸 감동은 오르가슴보다 더하고, 마약보다 중독성이 세다.

익스트림 스포츠의 또 다른 미덕은 다양한 변종의 가능성이다. 보드를 갖가지 방식으로 변형하면 속도감을 늘린 스네이크 보드나 자유자재의 방향감을 자랑하는 플로우 랩이 생겨난다. 심심한 자전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산악 자전거를 타고 전율을 느끼는 식이다.

국내에도 이미 3백만 명 이상의 엑스게임 마니아가 있다고 추산되는데, 엑스게이머는 종목을 변경하며 사계를 보낸다. 1년 내내 극한 스포츠를 즐긴다. 봄에는 험한 계곡에서 래프팅을 하고, 걷기도 힘든 산길을 마운틴 보드를 타고 내려온다. 여름에는 당연히 호수와 바다로 달려간다. 수상 스키와 웨이크 보드로 구릿빛 몸을 만들고 나면, 가을바람이 스카이 서핑이나 번지점프로 내몰고, 겨울에는 빙벽과 스키장 때문에 안달나는 식이다. 골절과 타박상의 흔적, 늘어난 인대, 단단하다 못해 굳은 살이 박힌 육체는 잊지 못할 쾌감의 순간에 대한 추억이자 훈장이다.

홍대 앞 클럽을 전전하면서 춤은 육체의 시라고 노래하며 질펀한 춤판을 벌이던 소설가 하재봉은 이제 진정한 육체의 시는 익스트림 스포츠라며 개종을 고백한 바 있다.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를 기웃거리는 40, 50대도 많아졌다.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이제 대중화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마치 남과 다른 삶을 위해 온 국민이 로또를 사는 것처럼.
익스트림 전문 의류업체들이 속속 문을 열고, 각종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도 100여 개에 달한다. 엑스게임만을 다룬 영화도 많다. 현란한 스카이 다이빙·오토바이 점핑·스노 보드 기술이 보는 이를 어지럽게 하는 <트리플X>,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실제 프로 보더들이 연출해낸 <익스트림 OPS>, 빌딩과 빌딩 사이에서 타잔처럼 고공 점프를 감행하고, 가스 배관을 잡고 건물을 기어오르는 신종 엑스게임인 야마카시를 선보이는 뤽 베송의 <야마카시>가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체에서 마케팅 수단으로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린 한 엑스게임 챔피언십은 한국의 LG전자가 주최했는데, 닌텐도·타이맥스·네슬레·델타 항공·도요타 자동차 등 세계적인 기업의 광고전이 치열했다. 1주일 동안 열린 대회에 8만 관중이 몰려들었고 미국 14개 텔레비전 채널이 중계했으며, 전세계 1백80여 나라에 방영되었다. 이제 극한 쾌감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엑스게임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 한 가지. 오는 5월에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2004 서울 익스트림 게임즈 월드컵’이 열린다. 한국·중국·일본은 물론 전세계 15개국 천여 명의 선수와 임원이 모이게 될 이 대회는, 국제적인 단위로는 처음 열리는 것이다. 인라인 스케이트·스케이트 보드 등 이미 고전이 된 종목들과 모터 트라이얼·스네이크 보드 등 보기 힘들었던 종목들이 두루 선보이게 될 이 대회를 통해 생활 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익스트림 스포츠 세계연맹 창립이라는 대의까지 이룬다는 대회 조직위원회의 야심에 찬 계획이 요원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